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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21.05.17

눈기러기로 평지마을

오순도순 열세 가구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1.05.17 09:34 조회 3,20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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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렁더울렁 사는 재미가 있네 첫순이나 후순이나 맛은 똑같아 비봉면 평지마을을 찾아가는 내내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 눈기러기로 ’ 라는 명칭에 관심이 갔다 . 지번에서 도로명으로 주소체계가 바뀐 뒤 종종 사연이 궁금한 이름을 만날 때가 있다 . 눈기러기로라는 이름은 어떻게 붙은 것일까 . “ 그러게 .

왜 눈기러기론지 우리도 궁금해 . 누가 이렇게 지었는가 모르겠어 . 고산서 넘어오는 재 있지 ? 거길 우리 어렸을 때부터 능지리재라고 그랬어 . 근거 있는 이야기는 아닌데 산 형태가 기러기가 누워있는 모양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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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지리가 눈기러기로 바뀐 게 아닌가 싶은데 .” 다음 지도를 찾아보면 눈기어재골이라는 지명이 보이는데 이와 연관된 지명이 아닐까 싶었다 . 앞서 몇 명의 마을 분에게 물어보았지만 아는 이가 없던 터여서 박병일 (76) 이장의 말씀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 평지마을은 밀양박씨 집성촌이었다 .

지금은 타성이 더 많다 . 주민 수는 13 가구 25 명 . 박병일 이장은 “1980 년대 초만 해도 가구 수가 스물다섯이었는데 지금은 사람 숫자가 스물다섯 ” 이라며 웃었다 . 변한 건 사람 숫자만이 아니다 . 당시만 해도 산밑은 다 논이었다 . “1980 년대까지는 쌀 위주로 농사를 지었거든 .

그러던 게 수박 등의 돈 되는 원예작물로 바뀌더니 지금은 하지감자나 고추같이 농사짓기 쉬운 걸로 바뀌었지 . 우리 같은 사람들이 나이 먹으니 원예작물도 힘들어 .” 근래엔 그마저도 못하게 생겼으니 노는 땅이 많았다 . 그 자리를 태양광 패널이 차지했다 .

김순덕 (76) 어르신은 인근 밭에서 딴 두릅을 종이상자에 담고 계셨다 . 요새 어르신의 두릅은 고산시장에서 4kg 한 상자에 6 만 원에 거래된다 . 첫순은 서리 맞아 죽고 지금 것은 후순이다 . “ 산에서 옮겨 심은 두릅나무야 . 먹으려고 밭둑에다 심었는데 많이 자라서 팔고 있지 .

첫순 첫순 하는데 말만 그렇지 . 첫순이나 후순이나 연한 놈은 맛이 똑같아 .” 서울살이를 접고 53년만인 지난 2010년 귀향한 박태근-유유복녀 부부가 뒷뜰에서 막 캐온 쑥을 다듬고 있다. 산 쪽으로 완만한 오르막을 가다 보면 박태근 (90) ․ 유유복녀 (82) 부부의 집이 있다 .

이곳은 언덕배기에 있다 보니 어디에 눈을 둬도 푸릇푸릇한 풍경이 펼쳐진다 . 부부는 근방에서 캐온 쑥을 다듬고 있었다 . 향긋한 쑥으로 쑥떡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나눠줄 생각이다 . “ 우리 집 뒤뜰에 있던 쑥인데 이건 약도 안 뿌린 거라 깨끗하고 몸에 좋아요 .

우린 마당에도 밭에도 약을 절대 안 써요 . 맑은 공기에서 살려고 시골 온 건데 약 냄새 맡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 평지마을이 고향인 태근 어르신은 서울살이를 접고 53 년 만인 지난 2010 년 귀향했다 . “ 사람은 태어난 땅에 묻혀야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

그것도 그렇고 옛날에 여기 산을 사놔서 돌아올 곳이 있으니까 다시 온 거예요 .” 김성수 씨는 공무원으로 정년을 마친 뒤 이곳으로 귀촌했다 . 그의 집 앞 텃밭에는 꽃이며 블루베리 , 사과나무 , 양파 같은 가지각색의 작물이 자라고 있다 . 그는 잡초를 뽑고 있었다 .

“ 열심히 하면 좀 깔끔할 텐데 맨 풀이야 . 두더지 때문에 못 살겠어 . 두더지가 너무 많아 . 땅을 다 뒤집어서 뿌리 있는 것들은 다 죽어버려 .” 두더지 약도 놔봤지만 큰 효과는 못 봤다 . 문단속 안 해도 걱정 안 해요 지형이 꼭 수선화를 닮은 모양이라 수선리라 불린다 .

수선화의 다양한 꽃말 중에는 존경이라는 말도 있다고 하니 이름이 더 예쁘게 다가왔다 . 수선리 평지마을은 이름처럼 굴곡이 적어 마냥 걸어 다니기에 좋았다 .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순덕 어르신을 다시 만났다 . 어르신은 밭둑에서 머위를 뜯고 있었다 .

“ 여기 사람들은 머우라 하고 도시 사람들은 머위라 하지 . 내다 팔려는데 조금 모자라서 더 땄어 .” 어르신의 밭에는 완두콩과 하지감자가 자라고 있다 . 땅콩 모종도 준비해놓았는데 서리 맞을까 무서워 못 심고 있다 . 어르신은 비봉 능암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 .

스물네 살에 시집왔으니 벌써 50 년이 넘었다 . 부군인 국연호 (81) 어르신은 앞 동네인 송수마을이 고향이다 . 이래저래 두 분 다 비봉 토박이다 . 어디선가 벌떼 소리가 들렸다 . 주위를 둘러보니 아니나 다를까 언덕 위에 양봉장이 있었다 .

박솔근 (72) 씨는 이곳이 고향인데 전주에서 오가며 지내고 있다 . “ 봄에서 가을 동안 양봉을 하는데 오늘은 꿀이 잘 되고 있나 한 번 보러 온 거야 . 지금처럼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는 봄에는 채밀해야 해서 가장 바쁘고 여름에는 쉽싸리꽃 ( 택란 ) 을 따러 강원도에 가 .

그렇게 해서 모은 꿀을 조합에 납품하거나 소매하지 .” 양봉 규모가 200 여 통에 달했다 . 평지마을 이장 박병일 씨 상추밭에서 이웃들과 함께 작업으로 분주하다. 마을 초입 하우스는 마을 이장 박병일 , 안은순 (71) 부부의 상추밭이다 .

아직 여름이 아닌데도 열기로 뜨끈뜨끈한 하우스 안에서 주민 여럿이 앉아 상추를 따고 있었다 . 이병학 (77) 어르신도 그중 한 분이었다 . 어르신은 옆 동네 부수마을 주민인데 젊었을 적에 도시에서 원단을 파는 일을 했다 .

지금은 자녀를 시집보내고 아내와 함께 한적한 저수지 앞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 “ 일손이 부족한 것 같아 자주 도우러 와 . 이렇게 종종 돕고 가족과 나눠 먹을 싱싱한 상추를 얻어가지 .

도시에 있을 때는 생각도 못 했는데 시골에 와 살다 보니 이렇게 서로 돕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네 .” 함께 상추를 따던 장석순 (68) 씨는 “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 여기로 이사 온 지 5 년 정도 됐는데 공기 좋고 이웃들도 다정해서 자리 잡을 생각 ” 이라고 말했다 .

귀농한 최동활 씨가 본인의 밭을 소개하고 있다. 2 년 전 군산에서 이사 온 최동활 (58) 씨는 마당을 살펴보고 있었다 . 그는 아흔아홉 살 장모님과 아내와 같이 살고 있다 . “ 군산에서 왔어요 . 이 마을은 옛날부터 봐왔던 곳이에요 . 동서네 가족이 먼저 와서 정착했고 저는 그 뒤에 왔어요 .

가족들이랑 모여 살려고요 .” 그는 동서랑 합쳐 1,000 평가량의 밭을 가꾸고 있는데 2 년간 상추 , 생강 등을 조금씩 키워 어디 팔진 않고 가족들이 나눠 먹었다 . 요새는 옥수수 심어놓고 돌보는 중이다 . “ 도시보다는 여기가 나아요 .

주민들 성품이 좋아서 문단속하는 집이 없을 정도예요 .” 그는 이웃들과 어울렁더울렁 사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

현장 사진

오순도순 열세 가구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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