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획특집 · 2021.05.11

눈기러기로 평지마을

김송회 어르신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21.05.11 15:59 조회 3,183 댓글 0
목록으로 돌아가기

스물 두살에 이곳으로 시집 온 김송회 할머니가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다. 할머니 머리맡 수학책엔 글씨가 빼곡 전쟁 나 못한 공부 문제집 풀며 독학 거리에는 분홍빛 겹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 평지마을 버스 정류장을 지나 마을회관 뒤편으로 향했다 .

김송회 (80) 어르신은 집 마당에서 잡초를 정리하고 계셨다 . “ 집에만 있음 심심하니까 풀 좀 매고 있었어 . 시골서 살면서 고생 안 한 사람이 있간 . 애들 갈치고 밥 맥일라면 다 똑같았지 .”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어르신의 첫 마디였다 .

IMG 6066
IMG 6066

어르신은 스물둘 나이에 화산에서 이곳으로 시집오고 가정을 꾸렸다 . 당시엔 벼농사뿐만 아니라 담배 , 삼베 , 아마씨 농사도 지었고 마을에서 가까운 고산장으로 나가 물건을 팔았다 . “ 닭이 알을 열 개 낳으면 그게 한 줄 되거든 . 그만큼만 낳아도 짚수세미에다 묶어가지고 애기 업고서 팔러 나갔어 .

그땐 차도 없으니까 걸어 다녔는데 힘들었지 참 .” 어르신이 시장에 팔만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짐 싸매고 나섰던 건 아이들 학비 때문이었다 . 딸 하나 , 아들 다섯을 키우면서 고등학교를 모두 전주로 보냈다 . 농사를 하다 가도 때 되면 반찬 만들고 빨래도 하고 쉴 틈이 없던 때였다 .

“ 남편은 이장 일 보느라 여기저기 교육 다니고 회의 다니느라 바빴고 새마을 때문에 정신없었어 . 난 토요일만 되면 잠을 못 잤어 . 애들 갖다 주려고 김치 담가서 6 시 버스 타고 갔는데 한 번은 길을 몰라서 종점까지 간 적도 있어 .

그래도 내가 못 배웠으니까 애들은 고등학교까지는 갈칠라고 한 거야 .” 고생스러워도 아이들 교육을 포기하지 못했던 건 과거의 기억 때문이다 . 할머니는 삼기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2 학년 1 학기쯤 한국전쟁이 났다 . 그의 남편은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를 다니다가 그만둬야 했다 .

“ 그때 인공 만나 가지고 한글만 떼고 구구단을 외우다 말았어 . 우리 남편은 학교 다니고 싶어서 여기서 완주중학교까지 걸어 다녔는데 수업료가 없어서 끝까지 못 다녔대 . 그래서 우리 애들은 끝까지 갈치고 싶었던 거야 .

애들도 우리 고생한 줄 다 알고서 자기들이 사글세도 알아서 해결했고 부모한테 잘 해 .” 오래전 일이지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싶었던 송회 어르신 . 몇 년 전부터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나눠준 국어나 수학 문제집으로 꾸준히 독학 중이다 .

어르신이 꺼내온 문제집 여섯 권에는 글자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 “ 잠 안 오면 침대에서도 조금씩 써 보고 있어 . 근데 선생님이 따로 없어서 모르는 게 많은데도 그냥 혼자서 하고 있어 . 수학 같은 건 누가 좀 알려주면 좋겠어 .” 할머니는 아쉬운 듯 문제집을 만지작거렸다 .

그래도 지도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문제를 풀어낸 걸 무척 뿌듯해하셨다 . “ 열심히 안 하면 책도 주다가 말텐데 난 열심히 하니까 벌써 책이 이만큼 있는 거야 . 모르는 건 그냥 넘어가고 아는 것만이라도 풀고 있어 .” 요즘 할머니의 일상은 이렇다 .

낮에는 잠깐씩 풀 매고 초저녁엔 아랫집 이웃이랑 강변에 산책을 나간다 . 요새 티브이는 잘 안 보고 자기 전에 노래를 듣는 편이다 . “10 년 전에 유방암 치료해서 오른쪽 팔이 탱탱 부었어 . 돌아가신 아저씨는 12 년간 병상에 누워있었는데 그때도 고생 많이 했지 .

요새 소화도 안 되고 다리도 아프고 몸이 내 맘대로 잘 안 돼 . 그래도 애들이 속도 안 썩이고 걱정 없으니까 이제 좀 살만해졌어 .”

현장 사진

김송회 어르신 사진 1

첨부자료

댓글 0

댓글은 로그인 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