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산골에 온가족 모여 사니 참말로 좋제~" 4대가 모여 사는 이이례 할머니댁 고 산천 마을의 가장 큰 어르신 이이례 (88) 할머니는 큰 아들 내외와 손주 내외 , 그리고 초등학생인 증손주까지 모두 4 대가 한집에 산다 . 마을의 중심부에 깔끔하게 정돈된 집이 이들의 집이다 .
이 마을에서는 이례 할머니 댁이 가장 많은 농사를 짓고 있기도 하다 . 감 , 나락 , 고추 , 마늘 , 아로니아 , 인삼농사 등 . 17 세에 고산촌으로 시집온 이례 할머니가 이 마을에 사신지가 벌써 70 년 .
그러고 보니 그의 큰아들 김흥덕 (69) 씨도 이 마을에서 산지 내년이면 70 년이 된다 . 그는 고산촌에서 나고 자란 마을 토박이다 . 그 덕에 흥덕씨는 마을의 옛 모습을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명이다 .
“ 여름에는 마을 앞 냇가에서 친구들하고 수영 하고 물고기를 잡던 기억이 나요 . 그땐 또래 친구들이 많았지 .
겨울에는 친구들이랑 모여앉아서 그때 말로 ‘ 뽕 ’( 고스톱 ) 치고 막걸리 내기하고 놀았어요 .( 웃음 )” 23 세에 운주 가척마을에서 이 마을로 시집온 흥덕씨의 부인 이정옥 (66) 씨도 그때 기억이 난다 .
지금처럼 감 깎을 철이 되면 ‘ 놉 ’( 일꾼 ) 을 얻어 사람들과 감자칼로 감을 깎았던 시절이다 . “ 나는 천등산 뒤에서 대둔산 앞으로 시집왔어요 . 큰집 형님이 우리 친정집 쪽에 살아서 중매로 만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철부지 나이에 시집왔어 .
우리 남편은 나랑 세 살 차이 나는데 그때 방위 근무 하고 있을 때였어요 .” 정옥씨는 남편을 ‘ 다정한 사람 ’ 이라고 표현한다 . “ 우리 남편이야 다정하지요 . 여자는 과격한 사람 만나면 안돼 . 나 시집오는 날 그땐 다리가 있었간요 .
징검다리를 건너는데 , 다른 사람한테 업혀서 왔던 기억이 나요 .” 시집 장가가던 그 날 , 서로의 모습이 기억나느냐는 질문에 부부는 미소만 짓는다 . 함께 산지 40 년이 훌쩍 넘었지만 그때의 ‘ 철없던 ’ 시절로 돌아가면 부부는 여전히 수줍다 .
이들 가족이 사는 집은 이례 할머니의 시부모님 때부터 살았던 집터 . 집을 세 번이나 새로 지었다 . “ 왜정 때 불이 나서 새로 짓고 또 새로 짓고 해서 집을 시방 세 번을 지었어 . 난 여기서만 살았어 . 근디 내가 너무 오래 사는 거 같어 .” 이이례 할머니 댁에는 4대가 함께 산다.
요즘에는 감을 따고 말리는 작업으로 온 가족이 바쁘다. 할머니는 한 해가 다르게 작아지신다 . 꼿꼿했던 허리도 언젠가부터 구부러졌고 그래서 아이처럼 더 작아지신다 . 대신 할머니의 그 작던 아이는 어느새 할아버지가 됐다 . 이 가을에도 할머니는 아들과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
“ 우리 아들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영락없는 사람이여 . 성실하고 착하고 . 우리 며느리도 그려 . 잘해 . 서로 금술도 좋고 . 아까도 딸한테 전화 왔는데 올케 ( 정옥씨 ) 한테 잘하랴 . 올케 욕본다고 . 여그저그 혼자 사는 사람이 태반인데 나는 5 명이랑 같이 살어 .
요새 어디 나처럼 사는 사람이 있간 . 가족 같이 사는 사람 나 뿐이여 . 고맙지 . 건강들만혔음 좋것어 . 내 새끼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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