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너머 위봉마을] 역사와 전설이 오늘의 삶이 되는 공간 봉은 상상의 동물이다 . 예로부터 암컷인 황과 함께 왕을 상징했는데 그 전통은 우리나라 대통령 휘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 소양면 위봉마을은 봉이 둥지를 튼 형세 위에 있다 .
송광사 벚꽃 길을 지나 위봉재를 넘거나 대아호수 드라이브 길을 달려 위봉터널을 통과하면 바로 위봉마을 . 역사와 전설이 오늘의 삶이 되는 곳이다 . 편백나무 향 가득한 봉의 둥지 마을을 찾은 날 아침 , 한 차례 소나기가 쏟아졌다 .
위봉산성은 그 잔해로 촉촉했고 비에 씻긴 잎들이 일대 녹음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었다 . 1407 년 ( 태종 7) 에 축성해 1675 년 ( 순종 1) 에 중수했다는 위봉산성은 오늘날 서문만이 홀로남아 우리 앞에 서 있다 .
위봉마을은 이 산성과 함께 시작되었다는데 노역에 동원되거나 성으로 징집되었을 조상의 고단함이 그 후손에게 복으로 돌아온 것일까 산성이 품은 마을은 전체적으로 아늑했고 주민들도 순후해 낯선 이를 배척하지 않았다 . 위봉재에서 출발하는 편백숲길은 마을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시작되었다 .
이 산책길은 도솔봉과 장대봉 사이를 3 부 능선 높이로 가로지른다 . 길은 평탄하고 완만했다 . 기분 탓인지 몰라도 물을 흠뻑 머금은 편백나무가 평소보다 더 활동적으로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것 같았다 . 대체로 조용한 가운데 간간히 경운기소리가 들려왔다 .
산 중턱을 완만히 돌아 숲길을 빠져나오면 위봉마을이 조성하고 있는 체험센터와 주차장이 나온다 . 그 주차장과 맞닿은 곳에 허영수 (78)- 김천연 (74) 어르신 부부의 밭이 있다 . 부부는 이날 콩을 심고 있었다 . 남편이 로터리 치며 나아가면 아내는 따라가면서 콩을 심었다 .
호미로 파고 콩을 심고 묻는 그 일련의 반복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 이날은 흙밖에 안 보였지만 조만간 파릇파릇 싹이 이곳에 돋아날 것이다 . 정류장에서 만난 이경옥 (79) 어르신은 갓 뜯은 상추가 가득 든 비닐봉지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
“ 방금 상추를 뜯었는데 너무 많아서 전주 모래내시장에 주고 가려고 . 갖다 주면 없는 사람 먹어서 좋고 나는 줘서 좋고 . 다 좋지 . 좀 줄까 ?” 봉동 사는 어르신은 일주일에 두세 번 이 마을에 있는 딸의 집에 들려 텃밭을 가꾸고 있다 . “ 딸이 작가야 . 드라마작가 .
근데 저기 한옥 보이지 ? 거기 올라가서 보면 이 마을 풍경이 좋아 . 아주 멋있어 .” 한옥 마당에 서자 정말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 한옥 주인 신명숙씨는 지인으로부터 솔잎효소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 마루에 앉아 그 비법을 함께 배웠다 .
물과 설탕 , 깨끗이 씻은 솔잎을 같은 비율로 섞어 봉한 후 그늘에서 일정기간 발효시키면 솔잎효소가 된다 . 이때 설탕 알갱이를 완전히 물에 녹인 뒤에 솔잎을 넣어야 제대로 된 효소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 솔잎이 설탕물에 잠기도록 눌러놓는 것도 중요하고 .
이말례 (80) 어르신은 밭에 앉아 풀을 뽑고 계셨다 . 작은 발에는 어여쁜 분홍색 털신 . 눈이 오면 자꾸 미끄러져 지난겨울 전주 모래내시장에서 직접 산 신발이다 . “ 밭일은 점심때까지만 할라고 . 그때는 아들이 오니까 . ( 아들 ) 힘드니까 나 혼자 해야지 .
여기 풀 뽑고 콩을 바로 심어야 영글어 . 시방은 마을 사람들 다 죽고 떠났어 . 돈 벌려고 버섯도 키웠어 . 나무에다 구멍 뚫어서 약 넣으면 버섯이 크거든 .” 행궁터 등 발 닿는 모든 곳이 문화재 40 여 가구가 사는 위봉마을은 마을 전역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
위봉산성 , 위봉사 , 행궁터 , 봉수대 등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 또한 거북바위 등 곳곳에 이야기가 숨어있다 . 위봉산성은 유사시 전주 경기전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피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됐다 .
오늘날 터만 남은 행궁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데 행궁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아가 머무는 궁궐을 말하고 왕의 초상화는 왕과 동급이다 . 현재 행궁터에서는 복원을 염두에 둔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위봉산성 위봉사 둘레에 있는 소원탑.
축조당시 위봉산성은 길이가 16km 에 이르고 동 · 서 · 북 3 곳에 문을 갖춘 장대한 규모였다는데 지금은 서문인 홍예문과 일부 성곽만 남아있다 . 산성 북문자리 근처에 위봉폭포가 있다 . 폭포는 위봉산성 , 위봉사와 함께 완주 9 경에 속하는 절경 .
송광사 벚꽃길과 대아수목원 , 대아호수가 같이 9 경에 속하니 밖에서 마을에 들자면 완주에서 가장 빼어나다는 경치 두 곳을 거치는 셈이다 . 데크가 조성돼 폭포 앞까지 가서 구경할 수 있다는데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 그래도 2 단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가슴속을 시원하게 했다 .
더위 속에 동네 이곳저곳 기웃대는 객이 안 돼 보였는가 손녀와 놀던 이달묵 (61) 씨가 깍둑썰어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수박을 내오셨다 . 군주가 나라를 잘 다스려 태평성대가 이루어지면 하늘은 이를 인정하는 어떤 징표를 내리는데 이를 상서라 한단다 .
그 상서 중 으뜸이 봉황이라니 그 둥지에 깃든 위봉마을이 살기 좋은 곳임을 짧은 시간임에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건 비단 환경만이 아니라 마을사람들의 마음 씀씀이에서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었다 . 수박이 참 시원하고 달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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