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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2019.10.14

가을날에 옥포마을

김두연·이동례 노부부

마을과 사람, 계절과 공동체의 시간을 깊이 있게 기록하는 완두콩의 기획 기사 모음입니다.

등록 2019.10.14 15:16 조회 3,4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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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서 자라 부부의 인연을 맺은 김두연 이동례 부부. 새로 지은 집 앞에서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애들 갈칠려고 물고기 머리이고 장터마다 팔러 다녔어" 한 동네서 자라 중매로 결혼 자식 먼저 보낸 상처에 “ 다시 태어나면 시집 안 갈래 ” 비가 내리는 중에도 이동례 할머니는 마당에서 된장에 넣을 콩을 삶고 있다. 이동례 (83) 할머니는 마당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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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단지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솥 안을 바가지로 휘젓는다 . 허연 김 속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 “ 콩 삶고 있어 . 된장이 어찌나 짠지 거기에 섞어서 같이 치댈라고 . 한참을 끓여야해 .” 우산이라도 쓰시지 , 하니 “ 비 오는데 어쩌라고 .

그냥 맞아도 돼 ” 라며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저 멀리 치워버리신다 . 할머니 집은 지금 공사 중이다 . 지난 4 월부터 집 공사를 시작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 30 여 년간 살던 슬레이트집을 철거하고 벽돌로 된 깔끔하고 단단한 집을 짓고 있다 . 자식들이 이제는 편하게 사시라며 시작한 공사다 .

“ 어제도 서울 사는 아들이 밤늦게까지 집 짓는 거 하다 올라갔어 . 여기가 우리 밭이 있던 곳인데 밭을 없애고 집을 지은거야 . 앞에는 잔디를 심는대 . 몰러 . 놀이터를 만들 건지 뭘 만들 건지 . 나는 잘 몰러 .” 남편 김두연 (87) 할아버지와 동례 할머니는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

마을 토박이인 두연 할아버지와 7 세에 삼례에서 이 마을로 이사 온 동례 할머니는 친오빠의 중매로 결혼 했다 . “ 스물한 살에 결혼해서 6 남매를 낳았어 . 저수지서 물고기도 잡고 농사도 짓고 일 겁나했지 . 또래 아낙들이 있었어도 일 하느라 놀지도 못했어 .

애들 갈칠라고 잡은 물고기 머리에 이고 봉동이며 삼례며 고산장이며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다녔네 .” 어린 자식들은 학교를 가려면 세 개도 더 되는 산을 넘어 다녔다 . 자갈도 아닌 바위가 있는 험한 길이었다 . “ 학교 다니는 애들이 줄을 서서 그 산을 넘어 다녔어 . 진짜 욕봤어 학교 다니느라 .

딸이 학교 가면서 얼마나 울었나 몰라 . 힘들다고 .” 두연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신다 . 하지만 기억력이 좋아 옛날이야기를 물으니 눈을 반짝이며 말씀하신다 . 과거 할아버지는 어부였고 농부였다 . “ 내가 이 마을서 태어난 토박이야 .

경천저수지가 1953 년에 준공됐는데 내가 1933 년생이거든 . 저수지가 없을 적에는 참 큰 마을이었대 . 마을에 들판이 좋았는데 그게 다 저수지가 됐지 . 이쪽은 집도 없는 골짜기였어 . 애들 갈칠라고 일을 많이 했더니 무릎이 안 좋아 .” 부부는 지난 2 년여 전 큰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

기쁜 일이 있어도 맛있는 걸 먹어도 큰 아들이 떠오른다 . 아물지 않는 상처 .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동례씨는 비가 내리는 창밖을 말없이 바라본다 . “ 자식 한명을 얼마 전에 저세상으로 보냈어 . 암으로 . 점점 마르더니 밥이 안 맛나대 . 그러다가 수술도 못하고 죽었어 .

아픈 걸 부모한테도 안 알리고 그랬더라고 . 실은 이 집을 지으니 더 속상해 . 큰 아들이 더 생각나 . 그 놈은 이제 가고 없으니까 .” 할머니께 물었다 . 과거로 돌아가면 뭘 가장 하고 싶으냐고 . “ 내가 어릴 때로 돌아가면 다시는 시집 안 갈 거야 .

혼자 살다 죽고 싶어 .” 그럼 자식들 못 보시는데요 ? “ 그럼 자식이 죽는 건 안 볼 거 아냐 .”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 나무를 땐 솥에서는 아직 콩이 익어가고 있다 . ‘6 시간은 푹 익혀야 퐁등퐁등 해진다 ’ 며 할머니가 건넨 콩이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다 .

가을비를 맞으며 삶아지고 있는 콩을 동례 할머니와 먹으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 “ 나는 이제 하고 싶은 게 없어 . 아프지 않고 죽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네 . 그나저나 오늘은 비가 솔찬히 오네 .”

현장 사진

김두연·이동례 노부부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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