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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5.07.31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5.07.31 09:57 조회 5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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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부진 팔뚝과 단단한 손의 이력 -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어디에서든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사람이 있다 . 으스대지 않고 조용히 주변을 살피며 어려움 있는 곳을 향해 주저하지 않고 성큼 다가가는 사람 . 이렇게 자신을 표현한 글을 읽고 있을 유 미 (1962 년 생 ) 씨의 표정이 떠오른다 .

유미 씨
유미 씨

손사래를 치며 ‘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 얼굴을 가리고 수줍게 웃고 있을 모습 . 화산면 죽동마을 초입에 있는 첫 번째 집이 유미씨의 집이다 . 10 년 전 화산면으로 귀촌해 지금의 터에 소박한 집을 지었다 .

도시의 독립적인 공간에서 살던 이들이 터를 잡아 살기에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도 있다 . 온 동네 사람들이 오고 가며 보는 곳 , 담장도 없이 앞마당을 훤히 드러난 집이지만 유미씨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고 한다 .

마당 한쪽에 비와 햇빛을 가릴 수 있는 지붕을 만들고 여러 명이 둘러앉아 쉴 수 있는 긴 테이블과 의자를 놓았다 . 언제든 드나들어 차를 타 마시거나 간단한 음식을 조리해 먹을 수 있는 버너 , 주전자 , 식기들이 놓여져 있는 이 공간을 동네 사람들은 ‘ 쉼터 ’ 라고 부른다 .

이른 새벽에 호미 하나 들고 밭으로 나가 늦은 저녁까지도 호미를 놓지 않는 유미씨를 동네사람들은 ‘ 황소 ’ 라고 부른다 . “ 남편은 여기다 잔디 심고 꽃 심고 좀 꾸미고 싶었는데 나는 잔디는 소용없다 , 땅이 아까워서 뭐라도 하나 더 심으려고 그랬죠 .

땅을 일구고 사는 어린 시절 꿈을 드디어 이루게 된 거잖아요 . 처음 귀촌해서는 밤 12 시까지 밭에 나가 일했어요 . 여기 길가 가로등 불이 환하게 켜지거든요 . 그러니까 양파 같은 거 신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일했죠 .

이장님 부부가 오다가다 보면 황소같이 일한다고 , 당신같은 귀촌인은 처음 본다고 그래요 . 제가 일 욕심이 많아요 .” 노는 것보다 농사를 좋아하던 괴짜 어린이 유미씨는 어머니의 고향인 전북 고창 바닷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

사람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남의 일 돕는다고 탈곡기를 돌리다가 발에 상처가 났는데 치료도 못 해보고 파상풍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스무 살이 되어서야 만난 고모들은 ‘ 지 아비를 똑 닮았다 ’ 는 말을 했다고 한다 .

유미씨는 자신의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를 닮아 농사일을 좋아하고 기꺼이 남을 돕는 사람이 되었다 . “ 제가 시골 일을 엄청 좋아했거든요 . 초등학교 다닐 때도 등교 전에 밭일하고 학교 가면 밭일만 생각이 나더라고요 . 희한하지 . 어른들이 같이 품앗이 하자고 할 정도로 일을 엄청 잘 하고 좋아했어요 .

할머니 따라서 밭에 가서 호미로 풀을 뽑고 고구마 , 콩 농사도 짓고 벼농사도 짓고 . 그게 재미있었고 나름대로 놀이였던 거 같아요 .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게 살았는데 어딘가 모르게 그리움 같은 게 있었죠 . 할아버지가 엄마를 멀리 안 보내시고 한 동네에다가 재혼시켰어요 .

죽동마을 초입 유미씨의 집. 대문없는 집에는 누구나 반기는 쉼터가 있다
죽동마을 초입 유미씨의 집. 대문없는 집에는 누구나 반기는 쉼터가 있다

엄마가 보고 싶었지만 일부러 피해다니고 안 본 거 같아요 .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엄마가 재혼해서 낳은 동생들한테 항상 큰 언니한테 잘해야 된다는 말을 하셨데요 . 엄마 돌아가시기 전에 제가 모시다가 하늘로 보내드렸죠 .

아무튼 어린 시절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밭에 나가서 풀었던 거 같아요 .” 타인을 돌보는 삶의 시작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틈틈이 교회 봉사활동을 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23 살에 결혼을 했다 .

원자력발전소에서 근무하던 남편의 직업 특성상 잦은 발령으로 울산 , 울진 , 영광 등 바닷가로 이주하며 살던 유미씨는 좋아하던 농사를 지속할 순 없었지만 그 지역의 교회를 찾아가 봉사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 제 어린 시절이 평범하진 않았잖아요 .

엄마 아빠 없이 외로웠던 시절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 자란 것이 ,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기반이 되었던 것 같아요 . 풍족하게만 자랐더라면 타인을 잘 돌보지 못했을 거 같아요 .” 화산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는 여동생 덕에 화산면이 낯설지는 않았다 .

화산으로 이주한 지 3 년 동안은 집 근처 밭에서 농사를 짓고 마을회관에 모여 어르신들하고만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 어린 시절부터 또래 친구들보다는 어르신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익숙한 유미씨였다 .

“ 마을회관에 놀러 가서 음식 해서 먹고 어른들하고 저녁에 화투도 치고 그렇게 3 년을 지내고 나니 저를 마을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는 느낌이었죠 .” 마을에서 발을 넓혀 교회를 다니며 화산면의 어려운 곳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

화산면 농협에서 주관하는 농가주부모임활동으로 일손이 부족한 농가를 돕기도 하며 지역에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 현재는 완주노인복지센터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로 활동 중이다 .

늘 그렇듯 쉼터에 둘러앉아 간식을 나눠먹는 이웃들 (2)
늘 그렇듯 쉼터에 둘러앉아 간식을 나눠먹는 이웃들 (2)

유미씨는 정해진 업무 외에도 지역의 봉사단체 3040 청년회와 협업하여 요리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의 어르신들을 배려해 직접 조리부터 배달까지 하고 있다 .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던 유미씨는 올해 봄 , 전라북도 도지사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

쑥스러워서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가족들의 조용한 축하만 받았다 . “ 새벽 4 시에 일어나 교회갔다가 5 시에는 밭으로 가요 . 풀 뽑고 열매도 따고 . 여기가 길가여서 어르신들이 보니까 더 열심히 풀 뽑고 가꾸는 거죠 . 제가 죽동마을 노인회에 총무를 맡았거든요 .

그래서 어른신들 살림을 제가 해요 . 그리고 저희가 올해 마을 가꾸는 사업을 하나 따냈어요 . 쟁쟁한 마을이 10 군데 넘게 신청했어요 . 3 개 마을만 선정했는데 우리 마을이 되었어요 . 마을 돌담도 쌓고 장마철 하천 범람위험이 있어서 보수공사도 하고 , 제일 중요한 것은 둘레길 조성이에요 .

우리 마을 앞이 바로 도로여서 어른들이 이 마을 찻길로 계속 다니시는 거예요 . 차가 쌩쌩 달리는데 위험하니까 하천으로 둘레길을 조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 꽃도 심어놓고 걷다가 힘드니까 벤치도 놓고 비가림 시설도 할 거에요 .

가을 쯤 되면 완성이 될 것 같아요 .” 유미씨의 다부진 팔뚝과 단단한 손이 그가 살아온 인생을 말해준다 .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아이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 듯 호미를 들고 땅에서 놀았다 . 그 손으로 흙을 만지고 심고 정직하게 열매를 거둬들였다 .

땅이 허기진 유미씨를 달래주는 벗이었고 단단해진 유미씨는 이제 기꺼이 어르신들의 벗이 되고 싶다고 한다 . / 글·사진=장미경 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유미씨가 농사지은 것들로 푸짐한 간식상이 차려졌다 (2)
유미씨가 농사지은 것들로 푸짐한 간식상이 차려졌다 (2)

현장 사진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사진 1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사진 2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사진 3 화산면 죽동마을 유미 씨 이야기 사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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