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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0.09.15

60년 동안 날마다 조금씩 나아간다는 것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0.09.15 10:37 조회 1,36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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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년 동안 날마다 조금씩 나아간다는 것 삼례 일진사 세탁소 이낙교 , 장인순 부부 20 세기 들어 사람들의 삶을 바꾼 가장 중요한 발명으로 인터넷을 꼽는 사람도 있고 인공지능을 꼽는 사람도 있지만 세탁기의 발명을 그중 으뜸으로 꼽는 사람들도 있다 .

그 이유는 세탁기야 말로 전 세계의 여성들을 날마다의 빨래노동으로부터 해방시켰고 그 시간에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고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 옷을 수선하고 다림질하고 깨끗하게 빨아서 입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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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옷을 수선하고 다림질하고 세탁하는 그 고단하고 지난한 일을 60 년 동안이나 이어오고 계신 삼례 일진사 세탁소의 이낙교 (79 세 ), 장인순 (80 세 ) 부부에게서 오래된 세탁소와 그 만큼이나 애틋한 순애보 이야기를 들었다 .

세탁소 안의 풍경 재봉틀 옆에서 포즈를 취하는 이낙교 씨 어려웠던 시절 배운 세탁기술 이낙교씨의 고향은 소양 명덕리다 . 어린 시절 6.25 전쟁을 겪었고 그 당시 시골마을의 풍경이 그랬듯 밤에는 산에 숨어 있던 빨치산들이 마을로 내려왔고 낮에는 군인들이 돌아다녔던 시절이었다 .

그러던 어느 날 이낙교씨의 아버지와 마을 남자분이 빨치산들에게 잡혀 산으로 끌려갔다가 어렵게 아버지만 살아 돌아오신 사건이 있었다 . 불안해서 계속 마을에서 살 수 없었다고 한다 . 이낙교씨가 11 살 무렵 온 가족이 삼례로 이주했던 이유다 .

삼례에서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친구 분이 하시던 세탁소에서 세탁 일을 배우게 되었다 . 돈을 벌기 위해 2 년 정도 세탁일을 배우던 그 시절은 열여덟 살 소년에게 혹독하던 시절이었다 . “ 제일 힘들었던 때는 처음에 일 배우러 갔을 때 아침에 눈 뜨면 빨래야 . 하루 종일 .

2 년 간 빨래를 빨았어 . 세탁소 마당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가 겨울에도 손 호호 불어가면서 손빨래를 한 거지 . 얼마나 가난하게 살았는지 , 그래도 일 배우는 곳에서 밥이라도 얻어먹으니까 기분은 좋더라고 .” 스무 살에는 ‘ 일진사 ’ 라는 멋진 간판을 걸고 자신의 세탁소를 운영하게 되었다 .

전기 , 기계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이낙교씨가 설명하는 그 당시 세탁소 풍경은 막노동의 현장이었다 . 비좁은 가게에서 연탄화덕에 연탄불을 피워서 연탄가스를 마셔가며 일을 했다 . 선풍기도 없는 더운 여름날의 세탁소 풍경을 잠시 생각해 본다 .

“ 연탄불 피워서 거기에다 무쇠 다리미 올려서 너무 뜨거우면 옷이 눌러 붙으니까 물에 식혀서 다리미질을 했지 . 그때는 물분무기도 없었어 . 그러니까 입에 물 머금고 뿜어가면서 다리미질을 했지 . 어깨쭉지가 이렇게 올라갔었어 . 다리미 하나 무게가 일킬로 오백이 나갔어 .

그 놈 두 개를 들고 올렸다 내렸다 , 연탄불에 달구니까 자루도 뜨겁지 . 손에 지문이 싹 닳아져버렸어 .” 80 년대 초반에 전기다리미가 등장하면서 고된 일도 조금은 수월해졌고 삼례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던 일진사 세탁소는 1982 년부터 현재 이곳에 터를 잡았다 .

세탁소 천장에는 주인을 기다리는 세탁된 옷들이 빼곡하게 걸려 있다 . 벽 한 쪽에 걸려 있는 가격표에는 정장 , 콤비 , 자켓 , 코트 , 브라우스 , 와이셔츠 , 잠바 등 품목에 따라 세탁비가 책정되어 있고 소매기장 , 허리 , 바지기장 , 작크를 수선하는 비용도 매겨져 있다 .

오래된 미싱 옆에는 그 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가위와 가지각색의 실들이 놓여 있다 . 한참 일 많을 때는 오전에 와이셔츠 이삼십 장을 빨아서 다리기도 했다는 이낙교씨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던 부인 장인순씨는 남편의 굽은 어깨를 보는 것이 속상하다고 한다 .

“60 년을 이 세탁소 일만 한 사람을 곁에서 봤으니까 마음이 아파 . 이 사람 일하는 노력에 비해 받는 돈이 너무 적어 . 큰돈을 못 벌지 . 이 주변에도 세탁소가 많았지만 큰 돈 못 버니까 오래하는 곳이 없지 . 어쩌다 보니 이 사람만 이렇게 오래도록 하고 있는 거야 .

평생을 여기다 바쳐 버린 거야 . 지금도 못 하게 해 . 고만 합시다 . 편하게 살아요 .

넘의 것 꼬장물 빼 준만큼 돈이 안 나와 .” 왼쪽 세일러복을 입고 있는 소녀가 장인순 씨다 멋쟁이 장인순 씨의 젊은 시절 사진 결혼하고 어렵게 태어난 아들과 함게 해변에서 찍은 가족사진 삼례에서 알아주는 로맨스 세탁소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했던 건 두 분의 연애 이야기였다 .

부부는 1961 년 , 그러니까 60 년 전에 처음 만났다 . 그때 이낙교씨는 스무 살 장인순씨는 스물한 살이었다 . 장인순씨는 일진사세탁소 근처 미용실에서 미용일을 배우고 있었다 . 소문난 멋쟁이였던 터라 후레아 치마를 들고 가서 다림질을 맡긴 적이 있어 서로 안면이 있던 터였다 .

동네 언니의 소개로 화산봉에서 ( 현재의 우석대 정문 앞 나지막한 산 ) 처음 만난 것이다 . 그 당시 동네 젊은이들 만남의 장소였다는 화산봉에서 그저 앉아있었는데 달빛에 봤던 이낙교씨의 모습이 아주 그럴싸했다는 장인순씨의 말을 듣고 내가 괜시리 들뜨기도 했다 .

하지만 가난한 청년과 삼례에서 100 마지기 농사를 짓던 부농 고명딸의 만남이 순탄하기는 어려웠다 .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고 기차에 태워 강원도로 보내려는 오빠들의 작전이 성공하기 직전에 달리는 기차 안으로 이낙교씨가 뛰어 들어와 장인순씨를 껴안고 신발 한 짝을 벗어두고 뛰쳐나간 이야기 , 그 길로 무서워서 집에 못 들어가고 삼례 영신학교 ( 지금의 삼례중앙초 ) 근처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이야기 , 어려울 때 친정집에 찾아갔다가 문 밖에서 쫓겨난 이야기 등등 두 분의 사랑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레퍼토리로 가득했다 .

양쪽 집안 어른들의 반대와 숱한 훼방에도 불구하고 둘은 10 년 동안 만남을 이어갔고 결국 댓돌 위에 할머니만 서 계신 채로 쓸쓸한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 양쪽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식을 올렸으니 어려운 시련들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

세탁소 일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수완 좋은 장인순씨는 밤새 기차를 타고 서울 남대문 , 동대문 시장에서 의류소매를 해서 초등학교나 우체국 ,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방문판매를 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

이낙교씨가 묵묵히 한 길을 걷는 사람이었다면 장인순씨는 영리한 책략가이자 어려움을 직시하고 돌파하는 용감한 사람이었다 . 문득 일진사 세탁소라는 가게 이름의 내력이 궁금했다 .

장인순 씨는 성경책 안에 남편의 청년시절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화산봉에서 달빛에 비췄던 이낙교 씨의 근사한 모습이 이랬을까 “ 우리 가까운 친구들이 있는데 낙교가 세탁소를 차리는데 우리가 이름을 지워주자 , 그래 . 그 놈들이 일진사라고 이름을 지어왔어 .

그게 뭔 뜻인고 하니 한 길로 나간다는 말이야 . 달리 생각하면 매일매일 발전한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고 .

그 친구들이 지어준 이름을 지금까지 쓰고 있는 거야 .” 가게 이름처럼 60 년 동안 한 길로 매일 매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면서 살아온 두 분의 삶과 사랑이야기가 일진사 세탁소 곳곳에 담겨있다 .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다 . 세탁소가 가장 바쁘다는 환절기다 .

다른 집에서는 못 지운 때를 자신이 말끔하게 지워서 손님한테 드릴 때 보람을 느낀다는 이들 부부의 세탁소는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60년 동안 날마다 조금씩 나아간다는 것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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