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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2.09.26

시랑골 지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2.09.26 12:04 조회 97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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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리 송학마을 백순자와 친구들 지금은 고산자연휴양림이 들어서서 이 골짜기 이름이 시랑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

예전에 동상면 사람들이 시랑골과 단지동 사이의 허기재를 넘어서 고산장을 다녔던 이 유서 깊은 골짜기 안에는 아흔아홉 개의 작은 골짜기들이 저마다의 이름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 술메기 하는 날 ( 호미씻이날이라고도 한다 .

아들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신명나게 춤을 추는 백순자 할머니 (2)
아들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신명나게 춤을 추는 백순자 할머니 (2)

음력 7 월 즈음에 날을 잡아 술과 음식을 나누고 하루를 즐기는 농촌 마을의 노는 날이다 ) 시랑골 송학마을에서 백순자 (85 세 ) 할머니를 만났다 . “ 김제 어영리가 고향이여 . 23 살 되던 해 9 월 스무날에 한 살 어린 남자에게 동상면 신월리로 시집왔어 .

우리 영감은 그 이듬해 7 월에 군대에 갔어 . 3 년 6 개월이 있어야 오잖아 . 새각시를 엄청 부려먹었어 . 산꼭대기에 올려 보내서 쇠스랑 하나를 줘 . 땅 파라고 . 나는 우리 친정에서는 귀하게 커서 일은 안 하고 살았거든 . 시집와서 시어머니 따라다니면서 일도 지독하게도 했네 .

보리밭 매고 콩밭 매고 징그랍게 살다가 댐 공사로 마을이 잠기게 되어서 일 년 뒤에 이 동네 송학마을로 이사 온 거야 . 우리 시아버지가 여기 송학마을 본토박이거든 .” 8 남매를 둔 백순자 할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랑골과 함께 했다 .

그곳에서 신었던 코빼기신 이야기 , 나물 뜯고 , 약초 캐고 , 버섯을 따며 살아왔던 모든 이야기들은 시랑골 어느 능선과 골짜기에 담겨 있었고 그곳에서 함께 살았던 이웃들의 기억 속에도 담겨져 있었다 .

마을회관 가장 중요한 위치에 노래방 기계가 있고 어르신 들 보기좋게 큼지막하게 노래 번호표가 붙어 있다 . 술메기날로 다같이 노는 날이건만 틈틈이 소일거리삼아 고무마줄기를 다듬고 있는 마을 할머니들. 코빼기신이라고 알랑가 몰라 “ 코빼기신 알아 ?

고무신인데 왜 코빼기신이냐면 , 그 신을 신고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려면 발이 앞으로 밀리잖아 . 그래서 앞 코 있는 데가 꼭 찢어지네 . 찢어져도 신을 사 주간이 . 그럼 거기를 꼬매서 신는 거야 . 바늘로 꼬매서 신고 또 신어도 얼마 안 있으면 또 찢어져 . 그래서 코빼기신이여 .

나 엄청 고생 많이 하고 살았어 . 그동안 개미처럼 일했어 . 전주역 앞 식당 , 상관면 함바집에서 일하고 농사짓고 빚 있는거 이쪽에 조금 갚고 저쪽에 조금 갚고 이제는 다 갚았어 . 그때 힘들 적에 동네 사람이 암말 않고 돈을 빌려주기도 했어 . 그래도 내가 이 몸 고생해서 돈 다 벌었어 .

우리 시어머니가 93 세에 돌아가셨는데 그때 까지 내가 다 모셨어 . 집에서 동네 사람들 모여 초상 다 치르고 그랬지 .” 아이 둘을 먼저 떠나보내고 할아버지도 일흔셋 되던 해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

옛날에는 무슨 고생을 그렇게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면서도 지금은 마음만은 대통령 부인보다 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 시랑골 안에서 함께 살아온 어르신들은 서로가 어떻게 모진 세월을 살아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

“ 여기 와서 봉게 동네 여자들이 자루 하나 들고 운주 넘어 저기 빼대까지 약초를 엄청 캐러 다니더라고 . 그걸로 자식들 가르친거지 . 창출을 캐면 거기에 백출이 붙어 있어 . 창출은 창출대로 떼어서 팔고 백출은 백출대로 팔고 . 잔대기는 잔대기대로 다듬고 .

이른 봄까지 약초 캐고 4 월 되면 나물 뜯고 비 내리고 나면 고사리 끊고 그게 다 돈이여 . 그리고 모심고 여름이면 밭 매고 여름 지나면 감 따서 소금물에 우려서 장날에 나가 팔고 모두들 그러고 살았어 .” 시랑골대학은 아무나 못 들어가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 자랑을 많이 했다 .

그동안 동네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고 TV 귀하던 시절에 저녁 먹고 모두들 신작로에 모여서 놀았던 이야기며 , 모깃불 피워놓고 마당에 멍석 깔아 놓고 애들도 함께 따라 나와서 부채로 모기 쫓아가며 늦도록 함께 했던 이야기까지 아련한 기억들을 풀어놓으셨다 .

“ 옛날에는 모심을 때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품앗이로 했어 . 밥 때 되면 점심을 리어카에 싣고 이고 지고 와 . 그럼 일하는 집집마다 애들이 있을 거 아녀 . 그 애들이 리어카 뒤로 쭉 따라와 . 논에서 일하는 사람보다 밥 먹는 사람들이 더 많아 .

머웃대랑 새우 넣고 들깨탕 끓이고 , 너물 무치고 , 김치 담그고 , 고기는 조금 넣고 김치찌개 끓여서 먹으면 얼마나 맛있나 몰라 . 우리 동네 사람들 사이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

이 동네 청년이 좋아하는 여자 부모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는데 자네 학교를 어디를 다녔는가 물으니 가방끈은 짧고 그래도 시랑골은 잘 아니까 시랑골 지게 대학 나왔습니다 . 그랬디야 . 이 동네 사람들이 배우진 못했어도 시랑골은 훤하거든 . 우리 동네 사람들은 시랑골 지게대학 졸업한 사람들이여 .

지금은 올라가지 못하지만 , 눈으로 쳐다보고 있으면 그 골짜기 골짜기가 눈에 훤하게 다 생각나 . 내가 헤치고 다녔던 곳이니까 .” 이정자(82) 송학마을 약초군 대장. 오른쪽 백순자 어르신. 송행덕 경로회장님 앞에 둘러앉아 시랑골 골짜기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송학마을 술메기 하는 날은 가을날처럼 화창했다 . 올 한해 힘들었던 농사일을 오늘 하루정도는 미뤄두고 돼지도 한 마리 잡고 , 떡도 하고 김치도 담고 모두들 회관에 모여서 먹고 노래하고 즐겼다 . 송학마을 어르신들의 시랑골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

시랑골 안 골짜기를 훤하게 알고 있는 송행덕 경로당 회장님에게 시랑골 골짜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 허기재 ( 골짜기에서 약초를 캐서 올라가면 얼마나 힘들고 배가 고파 . 허기져서 재를 못 넘어와 .

그래서 허기재라고 그려 )- 뒷재너머 - 조총골 - 괭이밥골 ( 고양이 모양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 송개골 - 지내골 ( 지내가 많이 나와서 )- 외내대골 - 어둔골 - 멍석박골 ( 멍석같은 바위가 있어서 )- 도도도골 ( 인공때 사람들이 피난왔던 곳 )- 막바탱이 ( 여기가 막바지여 .

여기 너머로 가면 소양 위봉폭포가 나와 ) 반대편에는 안석골날 - 안단지재 - 단지재 ( 여기 너머가 동상 수만리로 가는 거야 )- 자빠지기 ( 여기는 가팔라서 자꾸 자빠져 )- 간홍골 - 사목재 - 맨날 - 기차바위 - 호동골 - 승종골 그려 .

옛날에는 시랑골 골짜기에서 고산면 봉동면 사람까지 다 먹고 살았어요 . 애들 놀이터이기도 했지 . 이 동네 사람들 그 골짜기에서 산 사람들도 많고 . 휴향림 지으면서 거기 살던 사람들이 나오게 된 거지 . 골짜기마다 명칭이 있는데 이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 몰라 .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시랑골을 제일 잘 아시거든 . 시랑골 안에 아흔아홉 골짜기야 . 골짝 이름이 다 있어 .” 골짜기 이름도 재미있고 , 이름을 붙인 이유도 절묘해서 배꼽잡고 웃느라 바빴다 . 먹고 살기 위해 새벽부터 산에 올라 약초를 캐고 나물을 뜯던 사람들이 몸으로 기억하는 말이다 .

그 몸의 말이 골짜기마다 이름으로 새겨졌다 . 어려운 한자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몸과 기억으로 만들어진 순수한 입말이다 . 해질녁이 되면 그 골짜기를 담고 있는 산의 능선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

그리고 이제는 평범한 산이 아니라 송학마을 어르신들의 인생이 담긴 능선 너머 골짜기를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다 . / 글·사진= 장미경 (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시랑골 지게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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