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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경의 삶의풍경 · 2021.10.13

산 아저씨의 풀들을 위한 연가(戀歌)

삶과 사람, 일상과 계절을 천천히 기록하는 장미경의 연재를 모았습니다.

등록 2021.10.13 16:09 조회 1,1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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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저씨의 풀들을 위한 연가 ( 戀歌 ) 삼례 사는 류승철씨 이야기 때로는 불문율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 야생화 탐사자들에게는 장소를 묻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고 한다 . 묻는 이에게 답을 안 하자니 야박하다 할 것이고 , 답을 하자니 자생지가 훼손될 염려가 있으니 아예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

산 아저씨 류승철씨 (62 세 ) 는 스스로 불문율의 경계를 넘나들며 설악산에서 기생꽃을 찾아 헤맨 이야기를 들려주고 귀한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묻지 않는 법이라고 말했다 . “ 기생꽃이라는 꽃이 있어요 . 꽃 이름도 신기한데 사진으로 본 꽃이 참 예뻤어요 .

IMG 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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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디 있는지 장소를 물어봐도 안 알려 주는 거는 거예요 . 야생화 찍는 사진작가들 사이에서는 불문율이 있는데 꽃이 있는 장소를 물어보지도 알려주지도 않아요 . 그걸 알려주는 걸 되게 싫어해요 . 누가 장소를 알려줬다고 소문나면 그 사람은 거기서 매장되는 거예요 .

서로 묻지 않는 게 일종의 불문율이죠 . 귀한 건 묻지 않는 법이죠 . 근데 하도 꿈에 나타나고 아른거리길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어요 . 마지못해 알려준 게 설악산 안산에 가 보래 . 근데 안산 어디쯤이요 라고는 차마 못 물어보겠더라고요 . 새벽에 출발해서 무작정 갔어요 .

가기 전에 도감도 찾아보고 생태조건도 공부해서 갔지요 . 가서 세 시간 만에 그 꽃을 찾았어요 . 꽃이 손톱만큼 아주 작은데 되게 고고해요 . 높은 데 펴서 그런지 .” 표본 하나 당 여러방향,각도에서 촬영을 하면 하루에 700장 가량의 사진을 찍는다.

한 여름에는 하우스 안 온도가 너무 높아 윗 옷을 입을 수 없었다고 한다. 산아저씨 류승철씨는 스스로를 잡놈이라고 표현했지만 , 꽃과 풀 , 나무 , 숲에 대해서는 누구를 붙여놔도 이야기 상대를 할 수 있는 전문가라고 자부했다 .

신문사와 영어학원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지만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몸과 마음이 시들어버린 그에게 아내는 꽃다지라는 야생화 모임을 소개해주었다 . 21 년 전의 일이다 . 그것은 그에게 새로운 세계 , 다른 삶으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 되었다 .

야생화를 찾아 산을 헤매던 5 년 동안 곯았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했다 .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숲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 “ 나는 잡놈이에요 . 대금도 불고 사진도 찍고 숲 해설도 합니다 . 하하 .

그래도 꽃 이야기를 하면 삼일 밤을 새우고 이야기해도 끝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 식물 분야는 어떤 전문가를 붙여놔도 말 상대를 할 수 있으니까 이쪽 분야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지요 . 사업 망하기 전까지는 식물에 관심도 없었어요 . 어렸을 때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지만 흔한 나물 이름도 몰랐어요 .

사업이 망하고 실의에 빠졌을 때 우리 집사람이 꽃다지라는 모임을 소개해줬죠 . 처음에는 멍하니 그냥 따라만 다녔는데 재미있더라고요 . 그렇게 겨울이 되고 한두 달 꽃 공부하면서 봄이 왔지요 . 내 통장 탈탈 털어서 150 만원 가지고 소니 707 카메라를 샀어요 .

낮에는 돌아다니면서 사진 찍고 저녁에는 꽃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죠 .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치유가 됐어요 .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요 . 그때 꽃을 보면서 놀랐어요 . 아 ! 세상이 이렇게 예쁘다고 ?

설마 이런 것도 이름이 있을까 하는 작은 풀들도 다 이름이 있고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 우리나라 밭에서 흔하게 자라는 잡초 표본이 있는 하우스. 꽃을 만나면서 류승철씨의 인생에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 .

아직 다 가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평생을 다녀도 다 못 다닐 꽃의 길 , 풀의 길 , 숲의 길들 말이다 . 그 길들을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며 끝없이 새롭고 예쁜 식물들을 만났다 .

그것들을 발견하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기록으로 남겨두며 얼마 전에는 < 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 > 라는 책을 펴냈다 . 전북대학교 이종민 교수는 이 책에 대해 “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헤아리는 ,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식물 ” 이야기라고 평했다 .

지금은 식물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풀어내는 새로운 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 힘들었을 때 꽃다지 모임을 소개해주고 밤낮없이 꽃을 찾아 헤맬 수 있도록 조용하게 배려해준 아내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 “ 꽃을 만나면서 전국 안 가본 데 없이 다 떠돌아다녔어요 .

화천에 있는 산에 가면 무슨 꽃이 있다고 그래서 찾아갔는데 카메라 들고 배낭 짊어지고 비 오는 날 혼자 산을 돌아다니니까 누가 신고를 한 모양이에요 . 군부대 차가 와서 총 들고 난리가 났어요 . 거기서 뭐 하는 거에요 ! 거기 지뢰밭 표지판 못 봤냐고 ! 몰랐으니까 용감했던 거죠 .

내 사진을 사람들이 예쁘다고 해요 . 보통은 꽃이 작으니까 접사 렌즈만 가지고 다니거든요 . 그렇게 찍으면 꽃만 보여요 . 근데 나는 처음부터 꽃만 보지 않았어요 . 꽃 주변의 풍경을 함께 넣었거든요 . 그래서 사람들이 내 사진을 보면 시원하다고 해요 . 어렵게 찾은 꽃이니까 한참 관찰을 해요 .

꽃의 입장이 되어보는 거죠 . 한 5 년 애를 쓰다 보면 식물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 그때 비로소 보이는 건 그 전에 봐왔던 것들이랑 분명 다른 느낌이지요 . 다른 게 보여요 . 다른 게 보이면 정말 많은 이야기 거리들이 있어요 .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죠 .

그런 이야기들을 동화적으로 써보고 싶어서 다음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 내 별명이 ‘ 산 ’ 인데 산아저씨로 살다가 결국에는 산할아버지가 될 거 아녜요 . 산할아버지로 살다가 세상을 마감할 수 있으면 이건 뭐 알차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삶은 내가 만난 식물들에 대해 글을 쓰며 살아갈 거에요 .” 숲해설 중인 승철 씨. 류승철씨는 최근 풀과 관련된 흥미로운 일을 시작했다 . 농업 분야 스타트업이 연구하고 있는 밭 매는 기계를 개발하는 일에 풀 전문가의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

작물과 잡초를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도록 사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공지능을 학습시키는 일이다 . 지난 7 월부터 비닐하우스에서 수 만장의 잡초사진을 찍었다 . 10 월인데도 하우스 안 온도는 40 도를 웃돈다 . 나의 카메라 렌즈도 급격한 온도 차이에 습기가 가득 차서 촬영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

금세 땀으로 옷이 젖어 탈출하다시피 밖으로 나오면 시원한 블랙베리 식초 한잔을 건네신다 . 직접 키운 블랙베리로 만든 식초 . 이름 하여 초 . 능 . 력 ! 자신의 힘의 원천이라며 틈날 때마다 식초의 효능을 알리는 식초홍보대사이기도 하다 . 2020년 발간한 류승철씨의 책.

꽃과 나무 숲에 대한 그의 깊은 생각이 담긴 책이다. 사실 류승철씨는 구면이다 . 2012 년 세계순례대회가 열렸을 때 나는 영상작가로 아저씨는 사진작가로 , 잠깐 동안이지만 함께 일했던 인연이 있다 .

아저씨는 사진 찍는 틈틈이 다른 궂은일들도 거들었는데 , 낡은 승합차를 몰고 다니며 거친 임도를 달려와 뒤처진 나를 구해주기도 했고 순례객들이 지칠 때쯤 앉아 쉬기 좋은 곳에 미리 가서 주섬주섬 꺼내 든 대금으로 멋진 연주를 들려주곤 했다 .

그렇게 연이 된 아저씨가 < 산 아저씨의 숲 이야기 > 라는 책을 들고 나를 찾아오셨다 . 표지 안쪽에 ‘ 오랜 벗에게 ’ 라는 문구가 저자 사인과 함께 쓰여 있었는데 그 말이 참 다정하고 고마웠다 . 벌써 100 번째 삶의 풍경을 기록하고 있다 .

100 가지의 완주군 사람들과 풍경과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고 행운이다 . 그럴 수 있도록 뒷배가 되어준 완두콩이 새삼 고맙다 . 내가 만난 100 명의 사람들 , 그들을 만나게 해 준 또 다른 100 명의 사람들 모두에게도 감사하다 .

100 번째 인터뷰를 무사히 마칠 수 해 준 나의 오랜 벗 산아저씨 류승철씨에게도 .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현장 사진

산 아저씨의 풀들을 위한 연가(戀歌) 사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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