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6일 오전 9시. 대둔산호텔 뒤 음식점 산산산(山山山)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지난 17일 발대식을 마친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운주지회 강순후 지회장과 지역 사람들이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최후 항전지로 알려진 석두골(798m) 일대를 답사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1895년 2월 18일 동학농민군 지도자급 25명이 이곳 석두골 일대에서 항전하다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강 지회장은 “우리 고장에 있는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를 알리고 그 정신이 후대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답사를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둔산산악구조대원인 이왕영 완주산내들희망캠프 대표가 길잡이를 맡았다. 그의 안내에 따라 일행은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친 뒤 답사에 나섰다. 최후 항전지로 향하는 산길은 가파르고 험난했다. 우거진 조릿대와 크고 작은 바위가 걸음을 방해했다. 동심바위를 지나 조릿대를 헤치며 나아갈수록 숨은 더욱 차올랐다.
1시간쯤 걸어 형제바위 근처까지 올랐다. 기암괴석 병풍이 펼쳐지고 발아래는 수십 미터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이어졌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밧줄에 의지에 큰 바위틈을 오르자 마당 같이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그야말로 천연요새였다. 바로 최후 항전지에 다다른 것.
일행은 정성스레 챙겨온 막걸리와 과일로 간단한 제수를 차리고 위령제를 지냈다. 특별히 강순후 지회장은 100년 넘은 감나무에서 수확해 손으로 직접 깎은 곶감을 가져왔다. 강 지회장은 손바닥 크기의 종이에 적어 온 당시 희생된 2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불렀다.
참석자들은 숨을 삼키며 울컥하는 마음을 감췄다.
짧은 추모의 시간 동안 1894년 엄동설한에 농민군들이 3개월 동안 겪었을 고난을 생각했다. 강 지회장은 “올 때마다 의미가 너무 커서 다 담을 수 없는 현장인 것 같다. 당시 농민군이 처절하게 외세에 맞서고 반봉건 정신을 다시금 되새기는 기회가 된 것 같다”며 “오늘을 계기로 후손들이 동학농민혁명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그 정신을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이날 함께한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이종규 공동대표는 증조부가 동학농민군이었음을 밝힌 뒤 “역사의 현장에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운주지회 명예회장인 홍성희 운주면장도 “운주면 행정 책임자로서 동학농민군 최후 항전지에 와보는 게 도리인 것 같아서 함께 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완주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운주지회는 오는 5월 말 한국게임과학고등학교 학생 및 4H 회원들과의 답사를 계획하고 있다. 지회는 향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건립, 정기 추모제와 동학축제 등을 추진해 대둔산 항전지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설 계획이다.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 동학농민혁명은 1984년 일어난 반제국·반봉건 근대화운동이다. 대둔산 동학농민혁명 최후 항전지 석두골 일대는 1895년 2월 18일 동학농민군 25명이 끝까지 싸우다 죽음을 맞은 곳이다. 이때 동학접주 김석순(金石醇)이 한 살쯤 된 여아를 품에 안고 150m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지난 2015년 12월 전라북도기념물 제131호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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