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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고산면 ‘서봉리(西峰里)’ 2015-02-03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고산면 ‘서봉리(西峰里)’

원서봉하면 ‘탄건바위[탄금바위]’와 ‘원산’이야기가 앞을 선다. 고산지역에서 오래된 능성 구씨(삼기), 고령 김씨(어우), 밀양 박씨(평지)는 이 마을에 살던 조을정(趙乙鼎) 병사의 외손들이다. 최 대령은 젊은이에게 인기 있었고, 최득엽 전라북도 전 교육국장은 한 고장 교원과 학생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좀 위에 매달린 관동[소남동, 주남동]은 선조 때 임천수(任千壽)가 정착해 진주임씨 입향조가 되었으며, 그 아들 윤성(尹聖)은 거창현감을 지냈다.

해방 후 정낙원은 대아저수지에서 뱃놀이 중 넘치는 물살에 휩쓸려 배 채 댐 아래로 떨어졌으나 구사일생 기적적으로 살아나 ‘인명은 재천 아무나 죽는 게 아니라’는 화제를 남겼다. 유부남은 마을 1호 전주고등학교 학생으로 힘이 장사 시선을 끌고 다녔다. 고개 너머 정씨 종중 묘역에는 비록 도굴은 당했지만 정교하고 아름다운 석실 고분이 있다.

소농마을의 한자 표기는 ‘소룡리(巢龍里)’이나 지금은 쉬운 발음 ‘소농’이라 쓴다. 동구 앞 느티나무가 일품이며 곁에 정자까지 세워 풍치를 더해 준다. 이 지역 대부분은 능성구씨, 안동김씨, 제주고씨 종산이라 묘와 재실이 많다. 관리인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세 받으며 험한 일을 많이 했다. 여기 묻힌 우교당 구치용은 고산 최고학자로 시문이 뛰어났으며 나라에서 ‘징사(徵士)’라 했다. 김자완은 성종의 이모부이다. 고인충 묘는 가장 오래 되었다. 밀양 박씨 세정(世貞)묘의 문인석이 크고 정교하다.

소룡교회는 1905년 마로덕 선교사가 세웠다. 당시 재실이 많고 구석이 져 최고의 적지였다. 고산 6개면 최초 신교육기관을 부설했었다. 이리하여 김규동 정승진은 신흥학교를 졸업했고 고산지역 신교육 제1세대이다. 비교적 논이 많다. 홍술해 할아버지 비석은 규모가 크며 특이하다. 여기에 빌면 애를 낳았고 매끄러운 비면에 비친 꿩이 저와 싸워 죽었으며 빗돌을 배로 목천포를 거쳐 실어왔고 땅바닥에 천을 깔아 운송했다는 전설이 있다. 근래 군청에서 골프장을 만들려다 반대민원에 부딪쳐 심한 갈등을 빚었다. 그 후유증으로 인사 조치를 당한 공무원이 있었고, 종중재판 등 꼬인 일이 연이어 많았다. 추진사업은 유보상태이나 언제 재론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소룡(농)골 ‘관암’ 골짝에는 가재가 있고 좋은 환경 가을철엔 감 밤 먹을 것이 풍족하다. ‘벌통메’ 그 몇 집은 사라졌으나 가까이에 고산고등학교가 들어서자 수많은 학생과 ‘벌[蜂:봉]통(桶)메’를 연관시켜 딱 맞는 풍수 자리라며 한 마디씩 했다.
뒷산을 ‘탑동’이라 하는데 옛날 절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모두 능성구씨 종산이다.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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