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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어르신의 작고 깊은 만물박물관2015-01-11

이상철 어르신의 작고 깊은 만물박물관

“뭘 찾소? 여긴 이 할배의 작고 깊은 만물상이요”

 

이상철 어르신의 작고 깊은 만물박물관

 

“직접 찾지 말고 내 헌티 물어봐”
 종류 가격 위치까지 머릿속에 입력

 25년전 농악 배운 뒤
 마을행사나 시장 돌며 축원 올려줘
 산신풀이 지신살풀이
 아직도 외우는 축원문만 30여가지

“요샌 사주팔자 궁합도 봐주는데
 그게 실은 내 저승길 공덕 쌓는거여”

 

고산 파출소 옆에는 세상에 있는 갖가지 모든 것을 파는 가게가 있다. 가게 문을 열면 삼면으로 쌓여있는 갖가지 물건들에 압도되어 섣불리 들어갈 수 없다. 물건을 찾을 생각은 일찌감치 포기해야 한다. 당황하지 않고 가게 입구에 앉아 있는 주인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끝.

 

마치 수문장처럼 가게 입구를 지키고 계시는 이상철(88) 어르신. 만물가게의 주인장이다.
이 가게에서 물건을 찾아서 살 생각은 일찌감치 버려야 한다. 입구에 앉아계신 어르신에게 필요한 물건을 말하면 망설임 없이 어딘가에 있다고 가리킨다. 그럼 어르신이 가리킨 곳으로 따님이 가서 물건을 가져오고, 따님이 물건을 가져오는 동안 어르신은 막힘없이 물건의 가격을 말한다. 이 모습은 마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탁구팀, 혹은 배드민턴 팀, 여하튼 환상의 복식조 같다. 25년 전부터 함께 가게를 운영하셨다고 하니 한 치의 오차 없는 이 부녀의 호흡이 세월에서 쌓인 거로구나 싶다.

 

 

작고 깊은 할아버지의 박물관

 

“처음부터 이렇게 만물 갖가지 것들을 팔지는 않았어. 연장에서 시작했지. 니빠, 몽키(스패너), 도라이바, 뺀찌, 연장 종류도 많지. 그런 것들 팔면서 종류나 가격이 머릿속에 입력이 되었지.  연장 장사하다가 안경도 팔고 시계도 팔고 노래 테이프도 팔고 그렇게 쌓이고 쌓이니까 머리  속에 입력이 돼서 다 알지. 처음부터 여기 있는 거 다 팔았으면 그걸 어떻게 다 외워.”

 

고산장날이면 가게 안에 있던 갖가지 물건들이 바깥구경을 하는 날이다. 가게 앞 길가에 늘어져 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이태리타올부터 족집게, 냄비뚜껑 손잡이, 귀이개, 꽃무늬 스카프, 책력, 꿈해몽 책 등. 탱크와 비행기만 빼고 다 있는 만물상회다. 켜켜이 세월이 쌓아 놓은 어르신의 가게는 두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는 작은 가게다. 작은 가게에 꽉 들어찬 물건들을 구경하다보면 어르신의 인생박물관을 구경하는 것 같다.

 

 

흥이 좋아 시작한 농악

 

가게에 눈이 잘 가는 곳에 사진 액자가 하나 걸려 있다. 당산나무 아래에 걸립패들이 모여 있고 그 한 가운데 이상철 어르신이 꽹과리를 들고 축원을 올리고 있는 사진. 사진 설명을 부탁드렸다.

 

“안남마을 앞 고목나무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제 올리러 갔지. 13년 다녔지. 아침 8시에 나가서 마지막에 달집태우기까지 하면 밤 10시 넘어서 와. 하루 종일 동네 돌고 마을회관 양로당을 돌면서 축원 올리는 거지. 내가 염불을 잘 했어. 지신살풀이 산신풀이 30가지 이상 배운 사람이야. 축원문이 한 두가지간 디. 그거 다 배울 라면 골치 아파. 젊은 시절 어르신들 쫓아다니면서 알려달라고 했지. 요즘 사람들은 그런 거 하나 몰라서 큰 일이야.”

 

먹고 사는 게 버거워 취미같은 것은 사치였던 시절. 이상철 어르신은 농악이 마음에 맞았다고 한다. 장구 북 징 꽹과리만 있으면 흥 넘치게 놀 수 있으니 말이다. 25년 전 고산 와서 장사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농악을 배웠다고 한다. 정월대보름 뿐 아니라 완주군의 마을행사나 전주 중앙시장 일대를 돌면서 농악을 치고 축원을 올렸다고 한다.

 

“축원 올리는 것도 다 순서가 있는 법이여. 대문 들어가기 전에 ‘문 여시오 문 여시오 수문장군 문 여시오 만인인간 들어가고 만복이 둥실둥실 떠들어 갑니다.’ 깨개갱갱 개갱갱 한 바탕 노는 거지. 그 집을 축원해주러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들어가. 주인이 없어도. 그렇게 해야 해. 대문 들어가면 먼저 샘으로 가. 샘을 뺑뺑 돌아. 한 삼십 명이 한 바탕 놀다가 딱 그쳐. 샘 고사를 들지. 사람 먹는 물이니까 샘물이 중요했거든. 샘 앞에서 축원을 올려. ‘물주십쇼 물주십쇼 동해물도 땡기고 서해물도 땡기고 출렁출렁 넘치시오 뚫어라 뚫어라 물구녁을 뚫어라.’ 깨개갱갱 개갱갱 해가 질 때까지 마을 집집마다 돌면서 흥을 돋구고 축복을 불러 오는 거지.”

 

고산면에 얽힌 재밌는 이야기도 있다.

 

“20년 전인가. 양로당에서 노인네들이 찾아왔어. 그 당시에 읍내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었거든. 제를 지내야 잠잠해 지겠다 싶었던 거지. 그래서 고산 양로당에서 3년 동안 정월 초하룻날 산신제를 지냈지. 산신상, 지신상 두 상 차리고 떡시루 삼과삼채 차려서 3년 동안 지극 정성으로 제를 지냈지. 그 당시에 수백 명이 와서 고사지내는 걸 같이 봤지. 근데 신기하게 그 뒤로는 살인사건이 안 나. 고산이 참 살기 좋아졌어. 일기 변화로 피해보는 것도 없고 말이여.”

 

 

사는 동안 착하게 살면서 가는 길 닦는 거여

 

천자문, 사자성어, 논어, 공자, 맹자 말씀으로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알아가던 청년시절에서 세상 갖가지 물건들을 모아 놓은 만물상회에서 중년시절, 흥이 좋아 시작한 농악에서 사람의 마음을 달래고 힘을 복돋아 씩씩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게 축원을 올리는 일까지. 노년이 돼서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사주팔자 궁합 등을 봐주신다고 한다.

 

“복비? 그런 것 받으면 공이 안되는 거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좋게 살면 되는 것 아니 것어. 생전에 나쁜 짓 하면 다 알아. 죽는 다고 끝나는 게 아니야. 하늘이 알고 땅이 알아. 살아서만 재판 받는게 아니야. 살아서 재판 못 받은 사람은 저승 가서 심판받고 재판 받아야지. 그래야 마땅하지. 나는 가는 길 닦는 중이야. 저승 가는 길을 닦는 것 뿐이야.”

 

묵은해가 지났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많은 결심과 계획들이 여전히 생기발랄하게 지켜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왠지 벌써 지쳐서 귀찮아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만물공구에 가서 복비삼아 물건 하나 사들고 이상철 어르신에게 조심히 여쭤 봐도 좋겠다.

 

“여기가 소문으로만 듣던 사주팔자 봐주는 만물가게 인가요?”

 

/글•사진=장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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