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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농기계 정구씨의 기름밥인생2014-12-07

형제농기계 정구씨의 기름밥인생


35년 수리철학 “사람은 배신해도 기계는 배신하지 않는다”

 

형제농기계 정구씨의 기름밥인생

 

12월 1일, 겨울의 첫날, 거짓말처럼 눈이 내리고 날이 추워졌다. 아직 남아 있던 밭고랑의 김장배추들도 늦가을에 심었던 양파와 마늘도 모두 하얀 눈옷으로 갈아입었다. 봉동에서 앞대산 터널을 지나고 남봉 나들목으로 들어서면 같은 겨울이라도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하얗게 눈 덮인 운암산과 안수산 자락 아래 만경강이 감싸고 흐르는 고산면 읍내리 풍경은 몇 해 전 보았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가 보이는 포카라처럼 이국적이다.

 

구 17번 국도를 따라 고산면 소재지로 접어들면 마당 가득히 낡은 농기계 부속품들이 쌓여 있는 ‘형제농기계’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이 바로 정구 사장님의 가게. 열다섯에 농기계 수리 일을 하던 셋째 형을 따라 이곳에 자리 잡은 지도 벌써 35년이 지났다고 한다.

 

“고향은 김제 금구여, 내가 9남매 막둥이로 태어났는데…. 그땐 형편이 어려웠어. 집에 돈도 없고 그래서 먼저 고산에 자리 잡고 계시던 형님 밑에서 기술을 배웠지. 학교도 못 보내고, 머슴살이 보낸다고 생각하고 우리 엄니아버지가 많이 우셨대. 원래는 신토불이 식당 있던 자리에서 수리센터를 시작했어. 열다섯 살부터 10년 정도 형님 밑에서 기술 배우면서 일 했으니까. 벌써 35년이 지났어.”

 

지금은 젊은 혈기대신 노하우로 일하지

 

정구 사장님은 35년이나 이 일을 하셨다고 강조하지만 농촌에서 나이 오십이면 아직 한참 젊을 때다.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겠지만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을 대하면서 복잡한 기계 수리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일단 어디가 고장 났다고 설명하면 못 알아들으시기도 하고 젊은 혈기에 막 들이박을 때도 있었지. 그래서 손님들에게 기술은 좋은데 거칠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 근데 이젠 노하우도 생기고. 이걸 오래 하다보면 기술만 좋아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람 심리파악도 잘해야 해. 그 사이에 나도 반 점쟁이 다 되었어.”

 

정구 사장님이 기술을 배우기 시작할 때만 해도 농기계의 종류는 탈곡기, 경운기, 양수기 세 가지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세상이 많이 변해서 농사도 기계식으로 바뀌고 트렉터, 콤바인, 이앙기, 관리기, 고압분무기, 농약살포기, 비료살포기, 잔디깎기, 예초기, 엔진 톱 등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농기계의 종류가 많아졌다고 한다. 농사철이 끝난 겨울엔 일거리가 없어 힘들지 않은지 여쭤봤다.

 

 

엔진톱 잔고장에 겨울에는 더 바쁘다오

 

“겨울은 한가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요즘은 시골에서 화목보일러를 쓰니까 겨울에 나무 한다고 엔진 톱을 많이 사용하거든. 엔진 톱 잔 고장으로 많이들 찾아오지. 사실 덩치 큰 놈들은 고치기 쉬워, 오히려 엔진 톱 같은 애들이 예민해. 사람으로 치면 아이라고 생각하면 돼. 기계 부품들이 정밀하고 예민해서 고치는 것도 힘들어.”

 

어렸을 적부터 기계를 다루고 기계와 함께 살아 온 정구 사장님은 기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계셨다. 그 중에서도 ‘사람은 배신해도 기계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사람은 거짓말해도 기계는 거짓말 안하거든. 가짜 기름을 넣으면 기계는 고장나지. 근데 사람들은 기계 탓을 해. 안 좋은 기름 넣어 놓고 고장 나는 것을. 엔진 톱의 고장 원인은 대부분 묵은 기름을 사용해서 그래. 아무리 설명해도 믿지를 않아,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하지. 매일 끼니마다 귀찮게 뭐 하러 밥해요. 그냥 가마솥에 한꺼번에 밥해놓고 먹으면 되지. 그럼 기계도 똑같다고 그러지. 쓸 때마다 신선한 기름을 넣어줘야 기계도 좋아한다고.”

 

35년 고산에 살았는데도 외지인 취급

 

고산 사람으로 35년 반평생을 살았어도 정구 사장님은 여전히 스스로를 외지인이라고 생각했다. 외지인이라는 말은 그 말 속에 차가운 울림을 갖고 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니면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도 결국 ‘외지인’이라는 말로 뜻하지 않게 상처를 주게 된다. 대면하고 일상적으로 쓰지 않고 외면하고 내밀한 곳에서 씀으로써 더 깊은 상처와 차이를 만드는 ‘외지인’이라는 말은 사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산에서 인생의 반토막을 살았는데도 아직도 외지인 취급 받을 때가 있어. 내가 여기 와서 터득한 게 하나 있어. 내 치부를 보이지 말자. 아무리 친하게 지내더라도 좀 거리를 두기도 해. 그래서 늘 조심하면서 살았어. 떠나고 싶을 때도 많았지만 이미 이곳에 뿌리를 내렸으니까. 그리고 어딜 가나 마찬가지야. 사람 사는 곳은. 도시는 누가 죽어나가도 모르는데 그래도 시골은 이웃끼리 서로 잘 알고 집에 담도 없어. 마을에서 아이들 신경도 써주고.”

 

농촌 인구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껏 해 오신 이 일을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으신지 궁금했다.

 

“고산에만 농기계 고치는 곳이 다섯 군데여. 그래도 ‘대동농기계’하고 ‘형제농기계’가 가장 오래 되었지. 우리 형제들이 기술 일을 많이 했지. 우리 집안이 기름밥 먹는 사람이 많아. 형님들 영향을 받아서 기술 일을 시작했어. 선진국일수록 엔지니어를 알아주잖아. 장인대접도 해주고, 우리나라는 안 그래. 하찮게 보고. 그래도 이게 천직이라 생각하고 계속하는 거지. 이젠 노하우가 생겨서 쉽게 쉽게 하지. 초짜들은 기계를 다 뜯어봐야 아는데, 우리는 소리만 들어도 알거든. 어디가 고장났는지.”

 

농기계 다루는 일을 한다고 정구 사장님을 거친 중년의 남자라고만 생각하면 오해다. 혹시라도 눈이 펑펑 내리는 어느 한적한 오후에 고산미소시장 카페 아띠 앞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는 귀에 피어싱을 단 중년의 남자를 만난다면 그 분이 바로 형제농기계 정구 사장님일지도 모른다. 반평생 기름밥 인생의 수고를 위해서라도, 지속되어야 할 우리시대의 농사를 위해서라도 ‘형제농기계’ 정구 사장님의 겨울이 더 따듯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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