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소식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공동체 소식

> 이달 완두콩 > 공동체 소식

[이승철의 완주이야기③] 기이한 게 많은 고산 ‘삼기리(三奇里)’2014-11-10

[이승철의 완주이야기③] 기이한 게 많은 고산 ‘삼기리(三奇里)’

삼기리는 세종대왕 때 고산현감 최득지가 ‘삼기정’을 세운데서 유래하며, 1935년까지 삼기면이 있어 사연 깊은 얘기가 많다.

 

봉림(鳳林)은 옛 이름이다. 고지도에 ‘봉림교(鳳林橋:신작로 내며 삼기교)’가 나오고, 옛날 봉림사(鳳林寺)가 있었기에 지금도 ‘봉림’이 존재한다. 군산시 발산초등학교 뒤뜰의 석등·석탑은 일본인 지주가 헐값에 사간 문화재이다. 또한 전북대학교 박물관의 석불(목이 없음) 역시 1960년  대 여기 절터에서 나온 유물이다. 윗삼기정과 새터 사이가 ‘봉림’이며 조선시대 삼기원(三奇院)과 역(驛)이 있었다.

 

△봉림재는 평택임씨 재실이며 담밖에 세천비와 효자 정려가 있고, 종산 많은 묘마다 일련번호 돌 말뚝을 세워 관리가 이채롭다.

 

△봉서재(鳳捿齋)는 낙안오씨 행건 재실로 근래 개축하여 넓고 높다. 곁에는 오희첨(吳熙瞻)효자각이 있다. 척지(陟之)는 세종대왕께서 ‘귤껍질 잔에 따라주신 술을 마시고 호를 귤배(橘盃)’라 했으며 이 일이 워낙 감사하여 오랫동안 ‘손을 씻지 않았다’는 일화가 있다.

 

 

△종암 염수재(念修齋)는 오장의 재각이다.

 

△기린리 ‘조새보’ 옆 좋은 터 송씨 재실 역시 큰돈 들여 잘 지은 건물이다.

 

△능성구씨 구영(具瑩:1584∼1663) 선생은 회인현감을 지냈고 후진들이 백현 출생지에 사당을 세워 봄마다 제사한다. 거기 ‘정안당(靜安堂)’ 현판 세 글자는 송우암 글씨이며 옮겨 오기 전 고산초등학교가 개교했던 강당이다. 여러 사회단체는 이런 시설을 활용하면 일석이조 양편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상삼기 애향수 뿌리가 다리처럼 도랑 위에 걸쳐있어 희한하다. 기린리 입구 붉은 소나무는 곧게 자라 아름다우나 혹시 사라질까 걱정이다. 주변에는 고인돌(?)도 있어 예사롭지 않은 땅이다. 여기 묘는 6·25전쟁 중 몰락한 집안의 산소이다. 종암 임상규(48)는 안전행정부 인사에 따라 부이사관(3급)에 승진하여 1~2년 뒤면 고위공무원급에 들 수 있다는 기대 속에 여러 장의 축하 펼침막이 고산읍내에 걸렸었다. 아버지 임칠성씨는 5녀 1남 번듯한 아들을 두어 갑자기 유명(?) 인사가 됐다.

 

1970년대까지 삼거리(현재는 5거리)에는 방앗간, 이발소, 자전거포, 음식점, 쌀가게, 점방, 술집이 있어 푸짐했었으니 소양면 화심 지금 순두부촌처럼 값싼 음식점을  열면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다. 일정시대 구마모토[熊本] 선생이 2년제 ‘간이학교’를 세워 나이 많은 농촌 청장년을 가르쳤는데 해방 후 여기서 삼기초등학교가 열렸고 그 후 폐교 됐지만 졸업생 중에는 박사와 장군이 있다. 지금 이 시설을 잘 활용 중이다. 17번 국도변 5거리가 번성하고 이웃 농업기술센터가 집 나와 놀 곳 되기를 바란다. 삶의 밑동이 농업이기에 희망의 길을 열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이루어지기 바란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두억마을 과거시험 체험
다음글
[나도 기자다] 늦가을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