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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 박임순 할머니의 곶감2014-11-03

운주 박임순 할머니의 곶감

할머니의 마음은 감빛처럼 따뜻하여라

 

운주 박임순 할머니의 곶감

 

곶감 농사로 칠남매 다 키우고
40년전 먼저 간 영감님 대신
집과 함께 곱게 늙는 중

인적 뜸한 마을이라
오가는 등산객이 반가운 손님
커피 타주며 이야기동무 삼지

기계로 다 깍아서 파니
손으로 깍은 건 추접스러워 못팔아
제사지내고 손주들 줄라고
지금도 이때가 되면 곶감을 말리지

 

완주의 가을. 작물들을 걷어 들이고 갈무리하느라 모두가 분주하다. 운주는 곶감작업으로 한창이다. 집집마다 처마 밑에 고운 빛깔의 감들이 걸려있다. 작은 호박등을 달아놓은 듯 온 마을이 따뜻한 빛을 머금고 있다. 가을엔 단풍구경도 좋지만 운주 마을 곳곳의 처마 밑 감빛구경도 좋을 듯하다.

 

완주 완창마을에 아직도 손으로 감 껍질을 깎아서 말린다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 갔다. 아랫마을의 돌담 쌓인 고불고불 길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대둔산 절경이 한 눈에 보이는 웃마을에 다다른다. 마을 끝에는 고즈넉한 안심사가 자리 잡고 있다. 안심사 옆 어디쯤이라 했으니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면 찾게 되지.

 

작은 길로 몇 걸음 들어가니 어렵지 않게 그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마치 그 집의 문패처럼 주홍빛 감이 처마 밑에 줄줄이 걸려 있었다.

 

 

적적하긴 해도 함께 늙어간 이 집이 좋아

 

박임순(88세) 할머니의 집 마당에 가을빛이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어김없이 감이 매달려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할머니 집은 작은 섬 같기도 하다.

 

“여긴 사람이 귀혀. 여기 윗마을은 더 귀하지. 젊은 사람들은 벌어먹는다고 나가고 늙은이들만 있지.”

 

박임순 할머니 나이 15살에 논산에서 가마타고 이곳으로 시집와 7남매 낳고, 40년 전에 할아버지 먼저 떠나보내고 여지껏 이 집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우리 아들이 모시고 간다고 했는데 저 안 따라온다고 이 집을 새로 지어 줬지. 아파트에서 못 살겠더라고. 자식들 집 한 번씩 갔다 오면 답답해서 우리 집으로 데려달라고 하지. 인공 때 피신 갔다 왔더니 다 불 지르고 아무것도 없어. 그때 다시 집을 지었고 이 집을 몇 년 전에 아들이 싹 고쳐 줬어. 부엌이랑 뒷간이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얼마나 편혀. 방 따땃하게 하고 앉아 있으면 얼마나 좋아. 나는 그렇게 세상 산 사람이여. 나 여기서 늙어빠졌어. 옛날부터 산 집이니까 이 집이 좋아. 적적하긴 해도 좋아.”

 

할머니의 수돗가, 부엌, 작은 텃밭과 화단, 잡초 없이 질이 잘 난 마당. 집도 사람을 닮아간다고 할머니 닮아 정갈한 집이다. 대둔산과 가까워 가끔 등산객들이 지나다가 할머니 마당에 핀 꽃구경을 하고 간다고 한다.

 

“난 우리 집에 오는 사람들한테는 커피 잘 끓여줘. 주말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와. 사람들이 지나다가 앉았다 가고 하지. 마당에서 꽃 보고 가고. 그런 사람들한테 커피 한잔씩 주고 같이 이야기도 하고 그러지. 나는 커피 잘 안 마시는데 우리 아들이 손님 오면 접대하라고 커피는 안 떨어지게 사다 놓지.”

 

손주들 나눠 줄라고 아직도 감을 말리네

 

여름 휴가철이면 7남매 대가족이 박임순 할머니 댁으로 피서를 온다고 한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까지 복작대며 집 앞 계곡에서 물놀이 하고 마당에서 맛있는 것 해먹고 시끌벅적한 모습이 눈에 선한 듯 이야기를 해주신다. 얼마 전에는 손주들이 와서 집 앞 감나무에서 감을 따주고 갔다고 한다. 그 감을 깎아서 한 달 째 말리고 계시는 중이다.

 

“젊었을 땐 우리 영감 살아서는 곶감장사 했지. 그런 것 안하면 여기서 뭐 먹고 살것어. 그때는 기계가 있었간디. 손으로 감 껍질을 깎았지. 그때는 꾸지뽕 나무 가시에다가 곶감을 달아서 말렸어. 산에 가서 꾸지뽕 나무 가시 베어다가 길게 늘어트려서 거기다가 감 깎아 달아서 잘 말려야지. 시방들은 편하게 혀. 그렇게 말린 곶감을 열 개씩 짚으로 묶으며 그게 한 접이여. 운주 장날 서면 지게에 이고 지고 나가 팔았지. 그러도 손이 부족하니까 우리 애들 학교 갈 때 보따리 하나씩 들려서 새벽부터 나갔지. 장날마다 가족들이 곶감 한 짐씩 이고 지고 나가서 팔았지. 그때 곶감 값이 비싸서 재미 좋았지.”

 

이제는 대간해서(힘들어서) 곶감 장사는 접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오랜 습관처럼 감 껍질을 손으로 깎고 말리는 작업을 하신다.

 

“뭐 저까짓 것 얼마나 된다고 그냥 손으로 깎지. 장사하는 사람들은 기계로 다 깎아서 말리지. 이제는 손으로 깎는 건 추접스러워서 못 팔아. 나는 그냥 손주 줄라고 하는 거지. 비 피해서 걸어두면 가을빛이 알아서 잘 말릴 테고 지가 쪼글쪼글해 지면 먹으면 되는 거여. 그냥 따서 소쿠리에 담아 놓고 애들 와서 하나씩 주어먹으면 금세 없어져. 팔아먹을 라면 못 따지. 우리 식구들 먹고 제사지낼 때 쓰려고 아직까지 감을 말리지.”

 

박임순 할머니는 그저 가을빛이 곶감을 만든다고 하신다. 하지만 저 굽은 손가락과 마당에 들어오는 양지를 따라 감을 이리 저리 옮기고, 밤이 되면 이슬에 젖을까 덮개를 덮는 할머니의 수고로움을 어찌 빼놓을 수 있을까. 가삿말이 생각난다. 바닷가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쓴 가삿말이지만, 바닷가든 산골이든 할머니의 마음은 한결 같다.


 

초겨울 추위도 무시 못 할 만큼 매섭던
나의 어린 바닷가
여름엔 바지락 겨울엔 굴을 따다 채운
가난한 호주머니
시골에 장터 오늘은 일요일 해뜨기 한참도 전
대야를 이고 향하는 할머니의 꿈
 우리 건강한 꿈
빌고 또 비는 할머니의 꿈
우리 건강토록 빌고 또 비는 할머니의 꿈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_ 루시드폴의 ‘할머니의 마음은 바다처럼 넓어라’


/글·사진=장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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