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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억마을 삼거리점빵 2014-10-06

두억마을 삼거리점빵

아, 거기… 길과 사람사이 이름도 없이 80년

 

두억마을 삼거리점빵

 

용진면 두억마을 앞에는 작은 삼거리가 있다. 진안과 소양, 전주와 용진, 봉동을 연결하던 작은 길들이 만나는 삼거리. 지금은 큰 도로가 생겨 한산한 시골길 같아 보이지만 이 작은 삼거리가 예전에는 ‘한양삼거리’라 불리었다고 한다.

 

“옛날에 한양으로 과거급제 보러 갈 때 다 이 길로 지나갔다네. 경상도 사람들도. 내 고향이 군산 서수인데 우리 친정아버지가 그러데. 옛날에 사람들이 이 길로 소를 몰고 서수까지 왔디야. 그러니까 옛날부터 여기가 주막거리였던 거야. 오다가다 밥 먹고 자고 가고 새벽에 또 출발하는 거지. 삼거리에 지금 남아있는 곳은 여기 뿐이지.”

 

소달구지 하나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거친 길들이 만나는 곳에 나그네들이 쉴 수 있는 주막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유일한 주막. 예전에는 상호도 없었다고 한다. 3대째 내려오는 주인장 십여년 전에 이 가게를 맡게 되면서 두억마을 동네 사람들과 의논하여 삼거리 점빵이라는 작은 간판을 걸게 되었다.

 

오롯이 두 다리로 걸어 이동하던 나그네들은 이제 자동차를 타고 두세 시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다. 그 길에 여전히 남아있는 주막, 지금은 삼거리 점빵이라 부르는 이곳에 어떤 사람들이 오가는 것일까.

 

마을주민들이 삼거리점빵 3대 주모 김종선씨(왼쪽)가 만든 닭발볶음을 막걸리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두래기점빵에 들러 파방주 한 잔 하고 갈라요

 

저녁 즈음 용감하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일찍 시작되었을 술자리를 파하려는 어르신 서넛분이 앉아있었다. 두억마을 이장님부터 이웃마을 신봉리 사람이 모여 얼큰하게 한잔씩 하신 모양이다. 실가리(시래기국), 생채, 깍두기, 호박무침이 올라와 있는 술상에는 빈 소주병 4개가 모든 임무를 마친 일꾼처럼 개운하게 놓여 있다.

 

“파방주를 여기서 먹고 갔지. 다 놀고 막판에 한 잔씩하고 헤어질 때 마시는 술을 파방주라고 했어. 여그는 손님 있을 때까지 영업했었지. 옛날에 한창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닐 때는 밤새도록 하더라고. 문 여닫는 개념이 없어. 자고 있다가도 손님 문 두드리면 일어나서 술상내고 그랬지.”

 

모든 술자리를 파(破)할 때 마신다 하여 ‘파 반주’라고 했고 그것을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다보니 파방주가 된 것 같다. 생소한 말이지만 정감 있는 말이다.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해는 지고 이장님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두래기에 들러 한 잔하고 있는데 오려면 오고 말라면 말라는 얼큰한 농담을 주고받는다. ‘두래기’라는 또 다른 생소한 말에 대해 물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자네 어디사는가? 그러면 요즘사람들은 두억마을 산다고 하잖아. 그러면 그 양반들은 못 알아들어. 근데 두래기에 삽니다 하면 아~ 거기 사는구나 하고 알아듣지. 여기도 삼거리 점빵이라고 써 있지만 이 근처 사는 사람들은 그냥 두래기, 두래기 점빵이라고 불러. 옛날에 두루두루 사람들이 걸쳐간다고 해서 두래기라고 했디야.”

 

두래기점빵에 들러 파방주를 마시던 그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3대 주모를 배출한 80년 역사의 주막집

 

가게 뒤편에 집 한 채가 있다. 현재 주인장이 사는 곳이냐고 물으니 동서내외가 사는 곳이라고 한다. 때마침 뭐가 이렇게 재밌어서 시끌시끌하냐며 동서분이 나와 보신다. 알고 보니 삼거리 점빵의 2대 주모였다. 그 옛날이야기를 안 들어 볼 수 없다.

 

“원래 우리 시어머니가 하시던 거였지. 시어머니 밑에서 10년은 가게일 배우고 돌아가시고 내 한 것은 32년 했어. 시집오기 전 40년 전부터 장사를 시작하셨다고 하니까 이 가게가 햇수로는 80년이 넘어. 내가 하다가 신랑 몸이 편찮으셔서 지금은 우리 형님이 받아서 하고 있지.”

 

현재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3대 주모인 김종선(63세) 아짐도 말을 거든다.

 

“지금은 이렇게 상이랑 의자가 있지만 그땐 뭣도 없었고 초가집에서 했었지…. 별 볼일 없는 점빵에 손님이 참 많이도 왔어. 하룻저녁에 100명 넘게 오갔지. 그냥 바닥에 멍석 깔아놓고 먹었어. 그 전에 돼지고기를 걸어놓고 그때그때 썰어서 구워먹었거든. 여기가 하루에 돼지 두 마리씩 잡았어. 소양 전주 등에서 넘어오는 나그네들이 먹고 가고 그랬으니까. 지금처럼 후라이팬이 있었간디. 숯으로 불 피워서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이나 납작한 돌 올려서 고기랑 소금만 내어주면 참 맛나게도 먹고 갔지.”

 

그 당시에는 밀주단속이 심해서 땅에 항아리를 묻어놓고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말술로 배달시켜 부어놓고 팔았다고 한다. 막대기 바가지로 퍼서 팔았는데 큰 항아리 가득한 막걸리가 하룻밤 지나기도 전에 동이 나서 막걸리를 하루살이라고 장난삼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3대 주모 김종선 아짐의 손맛 때문에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메뉴판 같은 것 없다. 단골손님이나 동네 사람들 술 한 잔 하러 오면 있는 재료들로 대충 만들어서 접시에 내놓는 것 같지만 그게 참 맛나단 말이다.

 

 

별 볼 것 없는 시골 점빵에 별 볼일 많다

 

두억마을 이장님 김춘식(59세)씨는 하루에 세 네 번은 이곳에 꼭 들른다.

 

“여기가 동네 선술집이고 사랑방이죠. 밥 먹고 살살 나와서 일이야기도 하고 일없으면 술 한 잔하고. 이곳에 오면 많은 일이 이루어 져요. 마을소식이나 정보도 얻고, 또 내일 일을 해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해, 그럼 여기에 사람이 많이 오가니까 일꾼들 소개시켜주고 마치 인력사무소같이 말이죠. 그리고 여기서 접대도 많이 해요. 손님 오면 마을 회관 앞에 삼거리 점빵으로 오라고 하지.”

 

큰 도로에 밀려 뒷길이 되어 버린 시골길. 차로 빠르게 지나가기만 하면 풍경은 그저 뭉개져 보일 뿐이다. 시간이 멈춘 듯 한 시골의 점빵이지만 그 안에서 무수한 사람들의 우주가 만나고 헤어졌다. 지금도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이면 하루를 열심히 살고 한 생애를 바지런히 살아낸 연륜 있는 우주들이 파방주 한 잔 걸치러 모일 것이다.

 

글 사진=장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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