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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③] 화산면 ‘화월리(花月里)’ 2014-10-06

[이승철의 완주이야기③] 화산면 ‘화월리(花月里)’

화월(花月)? 아! 기생 이름 같다. 기생 이름이면 어떠냐? 이름 좋으면 그만이지. ‘꽃과 달’ 여성 같아 아름답다. ‘꽃피는 달밤’ ‘달 아래 예쁜 꽃’ 어찌 해석해도 좋다. 마을 뒷산이 ‘화산(花山)’ 이 화산 이름을 ‘같은 음 글자’로 바꿔 ‘화산(華山)’이 된지 올해가 100년이다. 화월리의 ‘한우물[大井:대정]’은 큰 샘 좋은 물이란 뜻이다. 이웃에 작은 샘골, 큰 샘골이 있어 수원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아들었다.

 

광해군(1608∼1623)때 청송심씨[沈大厚:심대후]가 대정에 들어와 심덕부 후손으로 양반 대접받으며 오늘에 이른다. 최치룡(崔致龍)이 남원에서 이 골로 이사해 오늘의 전주최씨 입향조이다. 진주강씨 강지영(姜志永:1804년생)은 함양에서 서당리에 이거해 번창하면서 후손들이 꾸민 묘역이 특이하다. 귀룡목 물이 양편으로 흐르고 잿등에 신작로가 나면서 일정시대 주재소가 들어섰다. 남은 한 그루의 벚나무가 기념물인데 금년 가을 사라졌다. 정자동 앞 겨울철 진땅은 서울까지 소문이 나 ‘아내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질퍽한 수렁길이 있었다.

 

그러나 들판 주변 땅바닥 욕심내는 사람이 많았다. 물이 서쪽에서 동편으로 흘러 ‘수태극 동류수(水太極 東流水)’ 화평(花坪) 대명당이란 소문이 널리 나자 새터 잡아 집을 짓고 ‘신화평(新花坪)’이라했다. 영동군 학산 사람 전정표, 상표, 경표, 병표 4형제는 1921년 이 곳에 자리 잡고 지신제를 올렸다. <화평신기지신제축문:花坪新基 地神祭祝文>이 전경표《三修齋隨得錄:三修齋隨得錄》에 있다. “…노소화락(老少和樂/노소가 함께 즐기고), 아손길창(兒孫吉昌/자손이 번창하며), 五穀登稔(五穀登稔/오곡이 풍년들어), 육축구식(六畜俱息/짐승 잘 번식하라)…”손 모아 빈대로 잘 되어 소가 많다. 임원규 면장, 전우봉 부면장이 나왔다. 들어선 운동장에 남녀노소 어울리지 않을 수 없으니 축문대로 됐다. 물론 아픈 이야기도 있다. 1907년 11월 15일 이 벌판에서 의병과 일본군이 싸워 왜병 29인을 사살했고 우리 의군 역시 21인이 전사했다. 새로 닦은 운동장 좋은 자리에 유적비를 세워야 사람 값 체면이 선다.

 

화월리민이 성심껏 돌볼 시설은 ‘작은샘골 공동체’이다. 자기 한 몸 추스리기도 어려운데 여러 사람을 돌보는 김삼수 목사는 지상에서나 천국에서 복을 꼭 받아야 한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어려운 사람 돌보는 데 ‘니 일, 내 일 하고’ 빼앗아간 사실이 안타까운데 그럴수록 우리 고장 복지 시설을 지켜 줘야 한다. “꽃피는 춘삼월 여럿이 모여 노래하고 춤추자” “달 밝은 밤 이슥할 때까지 마을을 돌며 즐기자” 꿈은 이루어진다. 아랫마을 나복동에서 박성일 첫 군수가 나와 경사인데 솔문 세우고 풍악소리 울렸더냐?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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