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소식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공동체 소식

> 이달 완두콩 > 공동체 소식

[이승철의 완주이야기①] 용진면의 ‘여의주’2014-09-03

  • 첨부파일
  •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인구 8만8천에 13개 읍면의 첫 이야기는 용진면(龍進面)에서 시작한다. 용진하면 ‘용(龍)’이 떠오르고 여러 민담(民譚)에서 들었던 인상 때문인지 만목( 萬木) 청산(靑山) 같은 가슴 벅찬 이야기가 넘쳐난다. 한 지붕 안에 한 자[尺] 정도 높은 어른 자리와 그 보다 좀 낮게 설계된 아랫사람 자리로 꾸며진 특이한 모정(茅亭)이 용진면 간중리에 있는데 혹시 어느 날 새로 좋게 짓는답시고 후닥닥 우장창 헐어버릴까 걱정이다. 

 

△아주 추운 어느 날 정씨 노인이 “이 나무를 베려거든 차라리 내 행랑채를 헐어다 때라.”며 한사코 말려 지켜 나온 정자나무가 현재 설경에 있고, 도끼로 이 나무뿌리를  찍었다가 그만 큰 벌을 받은 오 서방네 이야기가 있다.

 

△소양면이 동쪽 저 멀리 있는데 ‘소양교(所陽橋)’가 용진에 있어 이 역시 희한 하지만 내가 소양천이기에 가설자의 마음대로였다.

 

△국무총리 이름은 제대로 몰라도 조선 초기 황희 정승은 잘 알며, 구억리 ‘용진사(龍津祠)’에는 영의정을 지낸 그 아들 황수신과 함께 배향되어 있다.

 

△상운교 옆 우람한 ‘밀양박씨 규정공파 봉서재’ 입구 안내 표지석은 해마다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다. 

 

△조선 건국 초 귀양살이 중 은진에서 죽은 회안대군(이방간)이 금상리(얼마 전까지 용진면)에 묻혀 여러 전설을 남겼으며, 생전에 전주 사람(용진 포함) 더러는 이방간이 언젠가 왕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서 참언(讖言)처럼 이 고장을 『왕(용)이 나올 땅 ‘용진(龍進)’』으로 보았다. 이런 꿈은 이어 갈수록 좋다.

 

△청백리 육대춘(소양 화산사 배향) 묘가 용진면에 있어 자랑거리이며, 상운리 ‘복호혈(伏虎穴)’ 이주(李柱) 산소는 풍수가들의 교육장이다.

 

△17번 국도 건너편 봉동장례식장 옆 둑에 오르면 위에서 뻗어 내린 방천이 만경강물 쪽으로 ‘툭 튀어(≘)’ 나간 부분이 있다. ‘용복리’는 “엎드린 용이 여의주를 몰고 노는 형국(伏龍弄珠形局:복룡농주형국)”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동쪽 산줄기가 용이라면 ‘여의주(?)’는 어딜까? ‘툭 튀어나간 부분’이다. 제방을 쌓을 때 흙더미를 그냥 긁어 올렸다면 사라질 판인데 주민들이 똘똘 뭉쳐 ‘여의주’를 지켜냈고, 후한 인심 소문이 널리 났다. 영구차가 대문 앞을 거쳐 장독대 뒤를 지나는데도 까탈 부리는 사람이 없었다. 상주와 조객들은 이사 올 마을이라 감탄했다. 중국 주석 시진핑의 ‘잡값 인심 표현’은 이 고장 용복리를 지칭하는 듯 해 무척 기뻤다.  

 

△용진 지명에 ‘운(雲:구름)’자와 ‘지(池:못)’자가 많이 들어있음은 좋은 물에서 연유하며 양전에 ‘하이트’ 회사가 자리 잡았음은 양질의 암반수 때문이다.

 

△여러 지방자치단체 중 가장 넉넉한 물의 고장이 완주이다. 만경강 물을 여름 자원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데 주목하는 사람이 아직 없어 그냥 흘러만 간다.

 

△용진 이름과 걸맞은 나무는 바로 ‘용버들’. 면에서 많이 심어 용진의 특이성을 들어냈으면 한다. △녹동 뒷산 참나무 밭에 김정희 글씨가 있어 추사체 연구자가 많이 찾은다.

 

△다만 새마을운동과정에서 ‘개바위’를 없애버렸음은 두고두고 후회할 부끄러운 실수이었다.

 

/이승철(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칼럼니스트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근식씨의 내집 짓기③] 내 집 짓다 10년 늙는단 말 실감
다음글
완주잉여분투기(4) 그림쟁이(?)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