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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나이 칠십에 맹자와 씨름하다2014-08-26

천하장사, 나이 칠십에 맹자와 씨름하다

천하장사, 나이 칠십에 맹자와 씨름하다

 

봉동씨름판 호령한 임병용씨의 인생다모작

 

 내 형제들 모두 씨름판에서
 황소 한 마리씩은 땄지
 키 190하던 놈과 겨룬 승부 생생
 200근 짜리 상 돼지로 마을잔치

 고교-대학때 씨름선수-코치하다
 군대 가서도 선수로 명성 자자

 현역 은퇴후 대아댐 관리로 30년
 지금은 팔각정 휴게소서
 산닭백숙 파는 늦깍이 학생

 고산향교 찾아 5년째 한문공부 
 “딱 10년 원없이 공부해볼라고”

 

미처 몰라봤다.
그저 대아댐 팔각정 휴게소에서 산닭을 키우며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는 어르신일거라는 짐작만 했다. 하지만 이분이 봉동씨름판의 전설 임병용 장사였다니! 집으로 돌아와 자료를 찾아보니 임병용 어르신에 대한 수식어가 여러 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술씨름의 달인’ ‘6마리 황소 따낸 천하장사’ ‘민속씨름판의 산 역사’ ‘씨름판 호령하던 천하장사’

 

그러나 젊은 시절 씨름선수였다고 하기에는 왠지 체격이 왜소하다. 의례히 이만기, 강호동같은 덩치를 떠올리지 않는가.

 

“내가 키는 160cm이어도 젊었을 때는 몸무게가 80kg이 넘었어. 몸이 어찌나 단단한지 바늘로 찔러도 안들어가게 생겼드랴. 어렸을 때부터 허벅지가 하도 짱짱해서 동네 어르신들이 한번 만져본다고 많이들 찾아 왔어. 지금은 당뇨가 와서 살이 많이 빠져서 씨름했던 사람처럼 안보이지.”

 

천하장사 임병용

 

봉동에서 힘자랑 말라는 말은 귀에 박히도록 들었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생강이 봉동사람들  힘의 근원이 되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봉동 성덕리 간리마을에서 태어난 임병용 어르신(74세). 씨름해서 황소 안 따 본 형제가 없을 정도라 하니 단순히 생강의 힘인지, 남자도 들기 어렵다던 들독을 번쩍 들어 올렸다던 외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가족력인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전주농고와 원광대학교를 거쳐 씨름대표선수 겸 코치로 활동했고 춘천으로 군복무를 가서는 강원도 대표 씨름선수로 활동을 했다. 씨름으로 전국팔도 안 가본 곳이 없고 숱하게 많은 경기를 했다. 지금까지도 생각나는 명승부의 한 장면을 생생하게 설명해주신다.

임병용씨가 대아댐 팔각정 휴게소 앞마당에서 맹자를 읽고 있다.

 

“씨름을 하다보면 한 가지 기술만 연마해서는 안돼. 다양한 선수들을 만나니까…. 사람마다 쓰는 기술이 다 다르잖아. 머릿속에서 판단해서 상대방이 기술 들어오면 그것을 뒤엎을 수 있는 기술을 쓰는 거지. 그렇게 하나하나 연마하다보면 기술이 다양해져. 대학교 1학년 때 이리(익산)에서 동대회를 하는데 함열에 있는 조머시기랑 붙게 됐지. 내 키가 160이고 그 친구는 190인데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는 싸움이것어. 내가 원채 작으니까 지 가지랑이 사이로 나를 딱 넣더라고. 그래서 다리사이로 쏙 빠져서 그 다리를 잡고 넘어트렸더니 장대가 쓰러지듯이 넘어지더라고. 그때 이겨서 돼지 200근짜리 큰 것, 상으로 받아서 동네잔치하면서 참 맛있게 구워 먹었네.”

 

십여년 전 60세 이상 어르신들이 참여하는 씨름대회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씨름대회는 참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맨날 1등만 하다가 2등인가 3등을 한거야. 그때 내가 어떤 실수를 했냐면 한 눈을 팔았지. 상대방 샅바를 잡고 집중을 해야하는데 어깨너머로 누런 황소가 보이는 거야. 1등하면 받는 황소 말이야. 예전에 씨름할 때는 사심 없이 다 내려놓고 그 순간만 집중했는데 그때는 그 황소가 자꾸 눈에 어른거리데. 생각이 흔들리니까 지고 말았지. 그 뒤로는 씨름 안해.”

 

대아댐 관리인으로 30여년 세월 보내

 

임병용 어르신은 1970년대에 현역 씨름선수 은퇴를 하고 전북농조에 취직하여 수문 관리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전북농조는 저주지 물을 관리하여 농지에 물을 대주는 일을 하는 곳으로 후에는 수리조합이라 불렀고 현재는 농어촌공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옛날에는 논에 물대는 참 중요한 일이었지. 나는 수리조합에서 물 관리를 주로 했지. 시골에서는 농사할 때 물이 필수잖아. 처음 근무했던 곳은 봉동 전북농조(수리조합관리소)에서 일했었지. 옛날에는 봉동에서 대아댐을 관리했었어. 지금은 대아댐에서 다 관리하지만. 봉동에서 직원들이 5명 정도 있었지. 아침에 출근해서 동네별로 민원점검하고 어디 물 안 들어온다는 곳 있으면 현장 가서 수로 점검하고. 여기서 댐 문 열어주고 끝나는게 아니야. 수로가 여기저기 다 뻗어 있잖아. 말단까지 물이 다 닿을 수 있도록 부락별로 돌아다니며 점검을 하는 것이 임무지. 30년 넘도록 이일을 했고 여기 대아댐 근무를 마지막으로 퇴직을 했지.”

 

2000년도에 퇴직을 하지고 지금까지도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다. 이제는 대아댐에서 큰 수문만 작동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바쁜 철은 여름 장마철이다. 며칠 전 장마 시작을 알리는 비가 밤새 내렸을 때 임병용 어르신은 새벽까지 수량을 점검하며 비상근무를 하셨다고 한다. 휴게소에 들르는 등산객이나 관광객들은 대아저수지의 절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사시는 할아버지를 부러워한다고 한다. 허나 30년 넘는 세월을 질리도록 물을 바라보며 살았는데 무슨 감회가 있겠냐 하신다. 그저 일터와 가까워서 좋고, 산닭 키우며 백숙 몇 그릇 팔 수 있어서 좋고, 마을과 떨어져 있지만 좋은 경치보기위해 손님들이 찾아와 주니까 좋을 따름이라고 한다.

 

 

천하장사 맹자와 놀다

 

한창 때 체력만 못하지만 어르신은 매일 아침 대아댐 근처 산을 타며 운동을 하신다. 그리고 매일 빼놓지 않고 들르시는 곳이 있다. 고산 향교 충효관. 그곳에서 매일 한문공부를 해온지도 벌써 5년째다. 5년 전 공부를 시작하며 더도 덜도 말고 딱 10년만 열심히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하신다. 어린 시절에 씨름을 시작해 운동만 하느라 책을 읽지 못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고 하신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모여 맹자집주를 강독하고 있다.

 

“늙어서도 공부에 대한 열망이 사라지지 않더라고 그래서 딱 10년 원 없이 공부하려고 마음먹었지. 논어, 맹자, 다 성인들이 한 말들을 모아서 쓴 책이잖아. 성인들이 한 말이니까 다 좋지. 공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말들이 생활 속에 들어오더라니까.”

 

젊은 시절 작은 체구로 상대를 쓰러트리던 순간의 몰입과 힘이 어르신의 눈동자 속에, 굽은 손가락 마디에, 저린 무릎 속에 훈장처럼 여전히 남아있다.

 

/글·사진=장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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