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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구시장, 그 골목의 사람들2014-08-08

삼례 구시장, 그 골목의 사람들

우리 살던 것처럼 살아보라면 못산다고 다 도망갈 걸

 

삼례 구시장, 그 골목의 사람들

 

삼례는 전라북도 북부와 남부를 가르는 만경강 여울목이 어우러지는 곳인데 삼례 토박이 어르신이 해주시는 강도구렁 이야기가 재미지다. 강도구렁은 현재 별산마을 북쪽, 완주보건소가 있는 골짜기를 말하는데 과거에 한양으로 가는 길목이었다고 한다. 한양으로 시험 보러 가는 선비들이 많이 지나다녔는데 이곳에 강도들이 숨어 있다가 돈을 뺏었다 하여 강도구렁이라 불렀다 한다.

 

 

교통의 요충지인 연유로 무수히 많은 일들이 발생했고 1920년대에는 호남선의 철도개통과 함께 일제의 호남미 반출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삼례 장터는 각종 산물이 활발히 거래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어 김제, 익산, 충남, 정읍, 완주의 특산물과 농산물이 집산하는 이름 난 장터였다. 늘 사람으로 붐비던 시장은 1970년대 현재의 삼례버스터미널 앞 도로로 시장 일부가 이전하면서 그 곳을 신시장이라 부르고 원래 있던 이곳을  구시장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오래전 재래시장의 모습이 그렇듯 크고 작은 골목들로 이우어져 어물전, 채소과일 전, 젓갈, 잡곡, 소금 전, 개고기 골목(닭, 오리, 염소, 개 등을 파는 가축시장)이 있었고 그 골목마다 시장특유의 냄새와 사람들로 북적였다. 시장 현대화 사업의 일환으로 오래전 시장의 모습이 사라지고 많은 것이 빠르게 흐르고 있다.

 

 

우리신발가게 유복순 할머니

 

유복순(74) 할머니 신발가게 앞에는 작은 평상이 있다. 네다섯 사람 올라가면 꽉 차는 그 평상에서는 매일같이 10원내기 화투판이 벌어진다. 어르신들의 화투판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얼굴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친목도모의 장이다. 화투친구들은 할머니가 장사를 시작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니 거의 50년 지기 친구들이다. 10원이 오가며 맺어진 끈끈한 우정이다. 할머니 신발가게 선반에는 10원짜리 동전만 모아놓은 깡통이 여러 개다.

 

“옛날 시장통에 살 때, 같이 살던 동네 사람들이랑 신발가게 단골손님들이 10원짜리 화투친구들이지. 이것도 서로 할라고 여기저기서 오는데 아무나 안 껴줘. 마음이 맞아야 같이 화투도 치고 친구도 하지. 올해 들어 나랑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둘이나 저 세상으로 갔어. 그냥 옛날 친구들이랑 이렇게 화투 치면서 서로 살아있나 얼굴 도장 찍고 그러는 거지 뭐 별 것 있나.”

 

 

알아서 잘 큰 아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장사 잘 되던 그때가 그리워

 

1970년대 삼례버스터미널 앞 쪽으로 신시장이 형성되면서 원래 있던 이 곳 구시장 사람들도 점차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곳 주변으로 판자집이 많아 판자골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실제로 삼례 구시장의 구조물은 나무기둥과 나무벽면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전의 그 모습이 남아있다.

 

“옛날에는 이 근처가 미나리꽝이랑 방죽이 있었다고 하데, 이 앞에 길도 없었어. 근데 시장이 생기면서 어쩌다 보니까 여기가 중앙로가 된거여. 완주에서는 시장하면 여기 삼례 시장이 제일 컸지. 그때는 진짜 이 골목이 장사가 너무 잘 돼서 사람들이 부러워했어. 바글바글 했어. 날마다 날이 새면 사람들이 오곤 했지.”

 

“큰 딸이 지금 50살인데 그 딸이 8~9살 때였으니까 아마 1970년 쯤 그때 장사 진짜 잘 되었지. 장날이면 둘이서 봐도 바쁘고 밥도 못 먹고 일했었지. 그 시절에 셋방살이 살면서 아기들 낳아 키우면서 장사를 했는데 젖먹일 시간도 없어서 하루 종일 포대기에 업고 일을 했지. 애들을 업고 있으면 배가 고픈디 배고프단 소리를 안혀. 그리고 아무리 양말을 많이 신겨서 업고 있어도 바둥바둥하가다 포대기 밖으로 발이 나오니까 얼어가지고 퉁퉁 부어 있지. 따뜻한 데다 눕혀노면 발이 빨개. 얼었다가 녹으니까. 신경 못쓰면서 키웠는데도 모난 구석 없이 다 알아서 잘 컸어. 그래도 장사 잘되던 시절이 좋았지. 그 시절에 번 돈으로 아이들 공부 가르치고 먹이고 키웠으니께.”

 

 

그 세월을 어떻게 살았을까

 

할머니의 신발가게 맞은편 골목에는 옛날 할머니 가족이 살던 빈집이 그대로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을 낳고 키우며 장사를 하셨다고 한다. 삼례시장의 상인들은 대부분 이곳 판자촌에서 거주하며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시장 안에서 살림도 했으니 밤이 되면 불이 환하게 밝혀졌고 골목골목마다 뛰어노는 아이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의 점포가 문을 닫고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도 한 두명씩 떠났다.

 

“그 시절에는 고무신을 15일만 신으면 밑바닥이 닳아서 헤졌어. 특히 머스마들은  막 뛰어놀잖아. 그니까 고무신이 위만 성성하고 바닥은 다 닳아 없지. 옛날에는 아기신도 팔았는데 지금은 안 팔아. 요즘은 아기 보기 힘든 세상이여.”

 

복순 할머니는 이곳에서 50년 가까이 장사하면서 어느 덧 이 시장 골목에서는 맞은 편 방앗간 어르신 다음으로 고참어르신이 되었다.

 

 

“우리들 살아온거 누구한테 말도 못혀. 창피해. 집도 없어 떠돌며 살았으니까. 그래도 나는 셋방살이는 했어도 밥은 안 굶어서 잘 살았다고 생각해. 이 설움 저 설움 별 설움이 다 있지만 배고픈 설움이 제일 커. 지금 사람들한테 우리 살아왔던 것처럼 살아보라고 하면 못산다고 도망갈걸.”

 

잔꾀 부리지 않고 젊고 건강한 몸뚱이 하나 믿고 살았고 그렇게 늙어가는 사람들. 매일 아침에 나와 사람이 오든 안 오든 가게를 지키고 해가 지면 함석문을 닫고 집으로 향하는 유복순 할머니의 작은 체구가 참으로 견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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