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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마을축제를 가다2014-08-08

진안 마을축제를 가다

진한 흙냄새 그리고 시골인심 모락모락

 

진안 마을축제를 가다

 

마을은 더불어사는 공동체다. 마을축제 역시 꾸며내 화려하지는 않지만 사람냄새가 나는 잔치마당이다. 이웃 진안에서는 올해로 7회째 마을축제가 열려 즐거움을 주고 있다. 완두콩이 그 풍경을 들여다봤다.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 개실마을 노거수 아래에서 주민이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있다.

 

유세차 2014년 8월2일 개실마을의 수호신님께 감히 밝혀 아뢰옵니다. 작년 한해에도 아무른 사고 없이 잘 지켜주시어 감사히 받들고 올 한해에도 각종 질병을 퇴치하고 마을의 안녕을 빌며 무탈 하여 주시기를 기원 합니다. 우리마을에 거주하고, 찾아오는 모든이 에게 만복을 내려 만사 형통하고 재수대통 하기를 기원하며 천재지변의 화를 면하게 하고 백 가지 곡식의 알이 다닥 다닥 달려 풍년이 들기를 기원하며 변변하지 못하오나 감주와 제수를 마련하여 신님께 올리오니 불쌍히 여겨 흠향하시고 공평무사순일 길이길이 오래하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고개숙여 엎드려 비옵니다 상 향.

 

진안군 진안읍 정곡리 개실마을 노거수 아래 정성을 들인 제물이 차려지고 마을 위원장인 강신팔씨가 잔을 올린다. 대부분 70대가 넘어 보이는 30여명의 주민들이 연이어 잔을 올리고 환한 얼굴로 덕담을 주고 받으며 기원은 이어진다. 어른들의 축원에는 자신들을 위한 복 보다 대처로 나간 자식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바람이 더 컸으리라. 저마다 소지를 태우며 오늘의 기원을 하늘로 보낸다.

 

마을 앞 모정에는 할머니 대여섯 분이 모여 부침개 부치기에 여념이 없다. 비오는 날의 부침개. 전주에서 왔다던 한 새댁은 지글 거리는 프라이팬을 보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차오른다. 할머니가 뜨거워진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초록빛 나는 부추를 나란히 올려놓은 다음 그 위에 반죽을 부어가며 노릇하게 굽는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들고 요리조리 돌리더니 번쩍 들어 올리자 부침개가 저절로 확 뒤집힌다. 

 

 “와! 할머니, 완전 묘기에요!” “그려. 기냥 뒤집는 것보다 요래 뒤집으면 재미나잖여. 흐흐.”
 “그런데 부추를 반죽에 섞어서 개지 않고 프라이팬에 바로 넣고 그 위에 반죽을 넣네요?”
 “그려야 퍼릇퍼릇허니 보기가 좋지. 눈에 맛이 들믄 입맛도 저절로 도는 겨.”

 

새댁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침을 삼킨다.

 

“이리 앉어. 정구지(부추) 지짐은 뜨끈할 때 먹어야 지맛이 나는구먼.”

 

할머니들이 엉덩이를 조금씩 움직여 앉을 자리를 마련했다.

 

“지짐하고 짠지는 칼로 쓸어 먹으면 맛이 없어. 이래 손으로 쭉쭉 찢어 먹어야지. 흐흐흐.”

 

할머니는 뜨거운 부침개를 맨손으로 쭉쭉 찢어서 입에 넣어 줬다. 이후 물풍선 던지기, 긴줄넘기 등 마을사람들과 외지인들이 축제를 함께 즐기며 어우러졌다.

 

진안읍 대성마을 정자 앞에서 국수잔치가 열렸다. 주민과 체험객들이 자연스럽게 들어간 국수를 먹고 있다.

 

올해로 7회를 맞는 진안군마을축제가 7월30일부터 8월4일까지 진행됐다. 진안군 마을축제는 진안만의 색깔을 담아 마을을 주제로 마을에서 열리는 전국 유일의 여름축제다. 고향 농촌마을에서 진한 흙냄새와 농촌사람들의 인정을 느낄 수 있었다. 진안은 2001년 용담댐이 만들어지고, 68개 마을이 물에 잠기는 아픔을 겪었다. 또 농산물개방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였다. 결국 마을 안팎에선 ‘주민이 주도하는 상향식의 농촌개발’, ‘풀뿌리 마을 살리기 활동’을 시범적으로 도입하게 됐다. 이후에도 주민들의 교육과 훈련과정을 중시하며 ‘더디가도 제대로 가는 길’을 지향하며 차근차근 10년을 걸어왔다.

 

사소한 옛날 물건 하나를 복원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 하물며 마을의 전통적인 축제를 복원, 재현한다는 일은 주민들의 힘으로는 결코 쉽지 않았다. 진안군 등 행정이 결합하고, 민간단체가 지원하는 형식으로 농한기 한여름에 20~30여개 마을이 협력해 큰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올해 진안 마을 축제의 소주제는 ‘모정에서 피어나는 마을이야기’다. 모정은 전라북도 농촌의 대표적인 상징물로 마을을 지키는 초소에서부터 예절과 어른공경을 배우는 곳, 휴식처, 토론의 장 등의 역할을 했던 마을 장소다. 

 

정봉기 진안군마을축제 조직위원장은 “모정은 옛날 농사일을 하다가 쉬거나 참을 먹거나 모여서 마을 대소사를 나누는 공간 이었다”며 “무더운 여름 모정에 주민, 도시민들 모두 모여 쉼을 누리고 마을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풍성한 축제를 바라는 마음으로 올해 축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우와~ 국수그릇에 반절이 버섯이네”

 

대성마을 정자 앞에서 한바탕 국수 잔치가 펼쳐졌다. 그냥 국수가 아니다. 멸치육수에 표고, 목이 등 온갖 버섯이 듬뿍 올라있는 버섯 국수다. 버섯은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이 ‘신들의 음식’으로, 중국인들은 ‘불로장수의 영약’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상큼한 표고 향기가 퍼지며 보글보글 끓는다. 커다란 솥은 온통 버섯 잔치다. 표고버섯과 함께 새송이버섯, 양송이, 팽이버섯에다 다양한 채소가 가득하다. 표고 맛이 걸쭉하게 우러난 국물을 ‘후루룩~’ 한 입 맛보는 순간, “아! 바로 이 맛이야!”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버섯 향이 온몸에 퍼지는 듯 한 느낌이 좋다.

 

마을주민과 축제 참가한 체험객들이 한 데 어우러져 쫄깃한 목이버섯과 표고버섯 숙회를 나누는 모습은 오직 대성마을에서만 맛 볼 수 있는 호사다.

 

 

이날은 쑥개떡을 만드는 체험부스도 인기였다. 미리 만들어둔 쑥개떡 반죽이 테이블에 마련됐고 테이블당 8∼9명의 참가자들이 조를 이뤄 본격적으로 떡을 빚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최 측에서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당초 쑥개떡 만들기 체험 행사는 30분 동안 진행될 예정이었는데 대부분 20∼30년차 이상의 베테랑 주부들이다 보니 불과 10여 분 만에 준비된 반죽이 동이 난 것이다.

 

행사 담당자는 “역시 주부들이라 그런지 떡을 너무 잘 빚는다”며 “다음에는 반죽을 더 많이 준비할 테니 꼭 다시 와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쑥개떡을 만들면서 유독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주부 정옥엽(61) 씨는 “우리 세대 사람들에게 쑥개떡은 ‘향수의 떡’”이라며 “배고프던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많이 해주셨는데 그때 생각이 난다”고 했다.

 

 

한쪽에서는 돌탑쌓기 대회가 열렸다. 1등 상품은 무려 감자, 옥수수 한박스. 아이들이 힘을 합쳐 하나씩 큰 돌 위에 작은 돌을 얹어 놓는다. 부모가 아이들에게 “돌을 올려 놓으면서 소원을 빌어 보라”고 말을 보탠다. 아이들은 속으로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크리스마스날 멋진 선물을 받게 해 달라고 빌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뒤 멀리 보이는 마이산의 80여개 탑사에는 못 미치지만 크고 작은 돌탑들이 옹기종이 모였다. 간절한 소원을 담아, 켜켜이 쌓아 올려진 각양각색의 돌탑들은 바라보는 것만으로 정성스런 마음이 깊숙이 파고든다.

 

익산에서 왔다는 안지현(37)씨는 “그동안 여름 휴가는 바다나 계곡이었는데 이렇게 농촌마을에 와서 맛있는 음식도 먹고, 재미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며 “다음에는 주변사람들과 같이 와서 빠가사리 낚시도 하고, 어죽을 끓여 막걸리 한잔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성마을은 올해 처음으로 마을축제에 참가했다. 마을 안길 담장엔 정겨운 민속벽화도 그려져 있다. 소박하지만 뭔가 따사로움이 배어 있다. 왠지 모를 안도감과 친근함에 젖는다. 마음이 느려지는 느낌이다. 마주치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친근하다.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인사를 받은 한 할머니도 한마디만 물어보면 몇 마디는 풀어줄 것 같은 관심 가득한 표정이다.

 

골목을 지나 7분쯤 걷자 듬직한 느티나무 수십여 그루가 서 있다. 마을숲이다. 그 아래엔 모정과 주민들이 만든 옹달샘이 자리하고 있다. 두툼한 파전에 막걸리 한 사발 걸치면 딱 좋을 경치다.

 

바로 옆으로 마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도 있다. 기와지붕에 벽은 흙으로 올렸다. 옛 생활관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디딜방앗간, 오른쪽에 정지가 있다. 정지는 부엌을 가리키는 방언이다. 옛 시골 할아버지댁에 한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봤을 절구, 도리깨, 키, 맷돌, 지게 등 사라져가는 농기구를 구경할 수도 있다. 묘하게 주변풍경과 조화를 이룬다.

 

대성마을은 70%에 가까운 72명이 65세 이상 노인이다. 이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내고 진안군 ‘그린빌리지사업’ 공모에 참여해 재료비 정도의 사업비를 지원받았다. 나머지는 모두 주민들 몫이었다. 주민들이 모여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면서 관리까지 하고 있다.

 

대성마을 곽승남(48) 추진위원장은 “한평생 내 부모 형제가 더불어 살아 가는 이웃분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고향 마을에서 직접 생산한 음식들을 맛 보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축제에 참여하게 됐다”며 “기획에서 음식준비, 체험프로그램 진행까지 마을 주민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책임지면서 마을 자립심과 단결력이 길러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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