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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4시의 삼례호프집 ‘산내들’2014-07-27

오후 4시의 삼례호프집 ‘산내들’

추억의 레코드판 … 마음을 챙겨주는 호프집

 

오후 4시의 삼례호프집 ‘산내들’

 

몇 년 전 ‘심야식당’이라는 일본의 드라마가 잔잔한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에서는 저녁의 도시모습을 보여주며 쓸쓸한 휘파람소리가 퍼진다. 그리고 어느 선술집의 주방, 음식을 만드는 남자가 등장하며 그의 낮고 무심한 독백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하루가 끝나고 사람들이 귀가를 서두를 무렵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메뉴는 술과 돼지고기된장국 정식뿐. 나머지는 마음대로 주문하면, 가능하면 만든다는 게 나의 영업방침이다. 영업시간은 밤 12시부터 아침 7시경까지. 사람들은 ‘심야식당’이라고 부른다. 손님이 오냐고? 그게 꽤 많이 와.”

 

상처받고 지친 이들이 선술집에 들러 무뚝뚝한 주인장이 해주는 음식을 먹고 위안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드라마속의 환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로나 위안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에서 어쩌다 마시는 물, 나무 그늘, 간간히 들리는 사람들의 응원소리. 힘들어서 그땐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런 작은 조각들이 덩어리가 되어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한 요즘 유난히 술을 자주 마시게 된다.

 

삼례여중 근처 뜬금없는 곳에 있는 호프집. 오래된 LP판으로 추억의 음악들을 들려준다기에 그곳을 찾았다.

 

자동차 정비공에서 호프집 사장님으로

 

한가한 오후에 찾아갔을 때 함경표(54세)씨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바쁘게 사느라 자신을 되돌아 볼 시간조차 없었는데 4년 전 호프집을 시작하고 나서는 자유로운 낮 시간이 생겨 좋다고 한다. 자동차 정비일을 10년 넘게 하면서 몸이 많이 상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바로 군대에서 했지요. 집안 사정이 녹녹치 않아 바로 군대를 갔지요. 하사관으로 들어가서 5년 후에 전역하고 자동차 정비일을 배웠지요. 근데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면서 기술도 빨리 변하니까 사람이 못 따라가요. 그 일을 오래 하다보니까 몸이 여기 저기 아파요. 정신과 육체를 다 쓰는 거니까. 물론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아픈 사람을 돌보고 치료하는 의사처럼 함씨는 차를 고치는 자동차 의사로 바쁘게 살아왔다.

 

“한창 일했을 때는 성격이 극과 극이었죠. 중간이 없었어요. 먹고 사는 것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되면 사람이 또 나태해지게 되요. 발전성이 없지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일을 접은 거지요. 그걸 그만 두고 호프집을 시작하고 나니 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게 되는 거죠. 자신을 들여다봐야 해요. 자신을 파악하고 욕심을 버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의 어지러운 마음을 달래줘야 할 때, 달래주는 사람의 마음은 가볍고 명료해야 할 것이다. 함씨는 호프집 문 열기 전의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마음을 비워내는 시간이라 생각하며 알뜰하게 보내고 있었다.

 

마음을 챙겨주는 곳

 

전북에 가맥, 막걸리집 같은 술집문화가 있듯이 통영, 진주 등 남쪽 술집에는 ‘다찌’문화가 있다. 술을 시키면 안주는 주인이 내어주는 대로 먹는 식인데 그러다보면 주인장이랑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되고 단골이 되면 좋은 안주를 챙겨주기도 한다. 요즘 생긴 술집에 비하면 참 정겨운 술집문화다. 삼례의 뜬금없는 곳에 있는 함씨의 호프집에도 단골손님이 꽤 있다고 한다.

 

“손님들이 편하다고 찾아와요. 손님으로 접대하는 것 보다는 그냥 편히 쉬다가라고 하니까. 음악도 듣고 생맥주도 마시고. 안주 안 시켜도 눈치안주고 그저 편안하게. 다찌라는 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거지만 그게 다 마음을 챙겨주는 것이거든요. 손님 중에 어떤 사람은, 한참 밝은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은 얼굴이 어두워져서 올 때가 있어요.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침울하게 오래 있어요. 일행이 같이 와서 있어도 고민거리가 해결이 안되는 거예요. 그게 어디 하루아침에 해결 되겠습니까. 그럼 다가가서 내가 한잔 더 하시라고 하지요. 생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분명 아픈 곳이 드러나죠. 저는 그것을 해결 해줄 수는 없어요. 다만 용기를 줄 수는 있겠지요. 사람마다 다 다르지만 모든 답은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데 다만 스스로가 그것을 설득 할 줄 모르는 거죠. 저는 문 닫고도 2시 3시 날 샐 때까지 이야기 들어주지요. 아직은 지치지 않아요.”

 

그렇게 자주오던 단골손님이 술을 끊게 돼서 술집에 자주 오지 않아도 좋다고 한다. 함씨는 술집은 슬픔이나 아픔을 걸러내는 필터일 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와서 그것들을 걸러내고 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여전히 술이 필요한 이들이 너무 많다.

 

그는 인생 모토처럼 늘 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마음이 나쁜 기억에 의해 불구가 되지 않아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처음 들은 음악의 느낌을 잊지 못해 LP판 수집

 

단지 술을 마시기 위해 찾는 이 뿐 아니라 음악을 듣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들도 있다. 가게 한 쪽 벽면을 LP판과 거대한 스피커 2개가 차지하고 있다. 84년부터 LP판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서울 황학동에서 사 모으기도 했고 요즘은 가게 단골손님들이 집에 쌓여 있던 LP를 갖다 주기도 한다. 함씨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LP판을 들었던 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제 고향이 완주 소양 신교리에요. 중학교 때 막 전기가 들어왔던 시골이었지요. 반 친구하고 붙어 다녔는데, 부잣집 아들이었어요. 기와집이었고 꽤 넓은 마당과 마루가 있었던 기억이 나요. 그 친구가 공부는 못했는데 노래를 잘했지요. 팝송을 잘 불렀어요.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레코드플레이어하고 LP판 몇 장이 있더라구요. 처음 들었던 음반이 아바, 비틀즈였지요. 그때 그 기억이 생생해요. 대단하더라구요. 아바의 치키치타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다른 세상에 온 것 같고. 사람들은 처음 맛있게 먹어본 음식은 잊지 못하듯이 저 역시 처음 들었던 음악의 느낌을 잊지 못해요.”

 

오후 4시 호프집이 문 열기 전까지. 그는 호프집 한 쪽에 앉아 책을 읽거나 부부가 함께 산이나 들로 나물을 캐러 돌아다니거나 가만히 앉아 생각을 비우는 연습을 하고 있을 거다. 그것 또한 누군가를 위로하기 이전에 자신에 대한 위로가 아닐까. 인터뷰를 끝낼 무렵 4시가 넘은 시간. 일끝내고 돌아온 듯 상기된 사람 두어 명이 들어와 생맥주를 주문한다. 쌉싸름하면서 시원하고 달고 단 하루의 마감. 나 역시 한잔 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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