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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로 바람 가르던 소년 오토바이에 삶을 맡기다2014-06-03

오토바이로 바람 가르던 소년 오토바이에 삶을 맡기다

오토바이로 바람 가르던 소년 오토바이에 삶을 맡기다

 

고산오토바이 양광현씨

 

고산에는 오토바이 수리점이 세 군데 있다. 자동차가 많아졌다고 하지만 시골에서는 아직도 오토바이가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자전거 수리부터 시작한 50년 경력의 태성 오토바이, 고산 출신 오성 오토바이, 그리고 오토바이 수리기술 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고 자부하는 고산 오토바이까지. 읍내의 미용실이 여자들의 사랑방으로 대표적인 곳이라면 오토바이 수리점은 남자들의 사랑방으로 대표되는 곳 아닐까. 오다가며 슬쩍 볼 때마다 오토바이 수리점 앞에는 아저씨,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토바이 수리점이 가장 한가하다는 겨울의 어느 날, 어딘가 아파보이는 오토바이들이 가장 많이 줄 서있는 고산 오토바이 수리점을 찾아가 보았다. 여전히 아저씨 서넛이 주머니에 손 넣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오토바이는 나의 애인이자 애마

오토바이를 타 본 자만이 오토바이의 매력을 알 것이다. 한때 젊은이들의 표상이었던 영화 ‘비트’의 정우성을 떠올려 보자.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그 녀석이 오롯이 집중했던 것은 오토바이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바람에 몸을 맡기며 도로를 질주하던 정우성. 소싯적에 정우성 따라한다고 오토바이 타고 개폼 잡던 남자 분들 꽤 있을거다. 오토바이 수리 경력 24년차 양광현(48)씨 역시 중학교 때 오토바이를 타면서 그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중학교 때 처음 오토바이를 타봤지요. 형이 타던 오토바이. 지금도 노는 애들이 오토바이 좀 타면서 놀잖아요. 근데 나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담배도 안 피고, 여자도 안 만나봤거든요. 시계추처럼 학교 집 왔다갔다 순진한 애였는데 형이 타는 오토바이는 너무 타고 싶은 거야. 오토바이를 한 번 타보면 그 매력은 말도 못해요. 그래서 그걸 몰래 타 보려고 별 짓을 다했지. 중2 겨울방학 때인가, 형이 마당에 세워놓은 오토바이를 타려고 들킬까봐 옷도 못 갈아입고 잠자던 옷 그대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조심조심 동네 어귀까지 끌고 나가서 오토바이를 탔지요. 그 새벽에. 그러다 눈길에 미끄러져 또랑에도 많이 빠졌죠.”

 

요즘은 취미생활로 오토바이 타기를 즐기는 이들이 많아졌다 하지만 이 곳 완주에서 오토바이를 이용하시는 분들은 생계형으로 타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가끔 단지 오토바이가 좋아서 기술을 배우고 싶어 찾아오는 고등학생이 있다고 한다.

 

“오토바이 못 타서 안달 내는 애들이 있거든요. 그런 애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오토바이에 대한 매력을 맛보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때는 오토바이 타는 게 얼마나 좋았나 몰라. 재밌잖아요. 스피드도 있고 스릴도 있고. 자동차도 빠르긴 하지만 오토바이하고 다른 맛이지. 바람을 맞으며 몸으로 속도감을 느끼는 것. 그렇게 달리다 보면 다른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바람소리하고 엔진 배기음 소리만 들리지. 그 소리 때문에 타지요. 그것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는 거죠.”

 

 

형님의 영향으로 시작된 오토바이 수리일

양광현씨가 오토바이 수리일을 시작한 것은 네살 위 형님의 영향이 컸다. 형의 오토바이를 몰래 타며 시작된 오토바이에 대한 탐닉은 수리기술을 익히며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으로 발전되었다.

 

“친 형이 오토바이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봐왔죠. 1990년 3월에 형이 다니던 대림자동차에 들어가서 지금으로 말하면 인턴생활부터 했죠. 오토바이 생산 전 과정을 보고 공부하고 광주 사업소에도 몇 개월 있었고. 다른 수리센터에 꼬마기사로 들어가서 오토바이 청소부터 시작 한 거지. 그렇게 한 십년 남의 집 일하고 2000년도에 고산에 와서 내 가게 냈지. 내 고향은 삼례 와리이고 집사람 고향이 여기거든.”

 

양광현씨가 오토바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던 1990년도만 해도 호황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하향길에 들어서 오토바이 수리점 운영만으로는 생활이 힘들다고 하신다.

 

"요즘도 오토바이 기술 배운다고 오는 고등학생들이 있어요. 그러면 안받아줘요. 일단 부모님한테 허락받고 오라고 하고 돌려보내고 다시 생각해 보고 오라고 하죠. 정말 배우고자 하는 애들은 또 부모가 전화가 오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럼 허락하지 말라고 하지. 다른 길 찾으라고. 오토바이가 이제 하향길이에요. 후학양성하면 나도 보람되고 좋지. 그런데 어린 아이들이 오토바이에 입문하게 하는 게 앞길을 막는 일 아닌가 생각해요. 모르겠어. 내 생각은 그래요.”

 

처음 고산에 와서 수리점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오토바이 타는 젊은 층이 많았다고 한다. 대부분 도시로 떠나고, 이동수단으로 타더라도 오토바이보다는 자동차가 많아졌다고 한다. 양광현씨는 무엇보다도 커가는 자녀들의 교육비 때문에 고민이 많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나무 심는 일을 해오셨다고 한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서 나무일 보고 아침 8시에 끝내고 9시에 다시 오토바이 수리점 문을 열고 있다.

 

“한때는 나무시장이 돈이 좀 된다고 해서 그걸 시작했지. 나무 팔아서 아이들 교육비 대려고. 나무 심으면서 이 한 줄 팔아서 1학년 치, 이 줄 팔아서 2학년 치 대야지. 그 생각하면서 나무를 심었지요. 그때만 해도 행복했지. 그런데 얼마안가 나무 시장이 위축되면서 그것도 잘 안됐어.”

 

현재는 화산, 고산 일대에 콩 농사와 돼지감자 농사를 병행하며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 큰 딸이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고 한다. 양광현씨는 다른 소원 없다고 한다. 큰 애의 사춘기가 무난하게 잘 넘어가서 가족이 서로 화합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냐고 소년처럼 웃는다. 한때는 오토바이를 타며 바람소리를 듣던 소년이 이제는 큰딸의 사춘기를 걱정하며 가정을 지키는 가장이 되었다.

 

오다가다 그의 오토바이 수리점에 들러 보시라. 소년처럼 웃는 그가 달달한 커피한 잔 타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자며 붙잡을 것이다.

 

/글·사진=장미경 기자

 

고산에 있는 오토바이 수리점

▸태성오토바이 063-263-4171(고산 신협 옆)
▸오성오토바이 063-262-0330(형제 기름집 골목)
▸고산오토바이 063-261-0653 (고산 성당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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