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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 한결 같은 야채장수, 굳세어라 금순아2014-05-26

36년 한결 같은 야채장수, 굳세어라 금순아

36년 한결 같은 야채장수, 굳세어라 금순아

 

고산미소시장 삼성상회 서금순씨
 
 
나의 엄마는 예순 하나 말띠다. 평생 일을 하셨고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신다. 오히려 집에서 쉬면 몸이 아프다고 한다. 쉬는 날에도 집에 있지 않고 초원을 달리는 말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신다. 말띠 여자들은 쉼 없이 돌아다니며 일을 많이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있다. 속설이겠지만 내가 만나 본 몇몇의 말띠여성들은 언제나 많은 일을 하고 지친 기색 없이 활발했다.
 
고산시장에 삼성상회 사장님은 볼 때마다 무언가를 하고 계셨다.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볕 좋은 시장 광장에 곡식을 널어 말리고 야채들을 갈무리한다. 하루의 시간을 틈 없이 쓰고 계셨다. 아니나 다를까… 삼성상회 사장님 서금순 아짐은 예순 하나 말띠였다.
 
 
자식 여의지 못한 부모마음을 어찌 알아
 
“화산이 고향이야. 23살에 고산으로 시집왔지. 시집와서는 고산 읍내에서 잡화점을 했었지. 근데 잘 안됐어. 그 이야기는 그냥 그럭저럭 넘어가요. 그 얘기 할 것 없어. 굽이굽이 고생한 이야기 할 필요가 뭐가 있겠어~ 시집이나 가세요. 나 인터뷰 하지 말고….”
 
인터뷰 하다가 돌연 나에게 화살이 돌아왔다. 갑자기 들어온 선제공격에 나의 엄마는 자식들 결혼에 관해서는 서두르지 않는다는, 다소 어색한 변명으로 무마하려 했으나 봐주지 않고 바로 틈새 공격을 하신다.
 
“앞에서는 그렇게 말해도 뒤에서는 그게 아닐 걸. 안 간다고 하니까 억지로 못 밀어서 그렇지. 아가씨 엄마 마음은 어떨 거 같아요. 내가 인터뷰해야 겠네. 나도 큰 아들이 장가 안가고 있어서 얼마나 앓았다고. 겉으로는 속상한 티 안냈지만 부모 마음이 어디 그러가니… 속이 썩지.”
 
 
기분 좋을 땐 엄마,
삐졌을 땐 시어머니,
화났을 땐 할머니
 
서금순 아짐은 삼형제를 두었다. 첫째아들만 장가를 안가고 있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한다. 올 추석에 베트남 며느리 보홍 다호(20)씨가 새 식구가 되면서 서금순 아짐은 마음이 한 결 편해졌다고 한다. 나이차이가 많아서 걱정도 했지만 예쁘게 잘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신다.
 
“내가 아들만 셋이고 살가운 딸이 없잖아. 지금 딸 같이 살잖아. 딸 키운다 생각하고 같이 살아야지. 어디 가도 달고 가고 그래. 우리 다호 성격이 좋아. 나긋나긋하고 잘 웃고. 어리니까 삐지기도 잘하고 풀리기도 잘해. 삐지면 내가 손가락으로 웃는 모양을 만들어 주면 삐졌다가도 금방 웃어. 다호는 지 기분 좋을 때는 나를 엄마라고 부르고 조금 언짢을 때는 시어머니, 기분 나쁜 때는 할머니라고 부른다니까. 내가 혼내기도 잘하지만 며느리 기분 풀어주는 것도 잘해. 나하고 며느리하고 싸우는 것은 아들보고 나서지 말라고 해. 괜히 중간에서 나서면 오해가 생기고 하잖아. 그래도 내가 울린 일은 없었어. 얼마나 멀리서 왔는데 내가 울리겠어. 근데 친정 생각나서 가끔 울더라고. 며느리에게 예쁜 악세사리 선물 해주고 싶어. 다호 예쁘잖아~. 그러니까 잘 어울리겠지.”
 
베트남에서 시집온 며느리 때문인지 서금순 아짐은 베트남 호박씨를 구해 와서 텃밭에 심었다고 한다.
“이것이 베트남 호박인데 꼭 물외같이 생겼어. 우리 집 마당에 텃밭에 처음 키웠는데 잘 컸어. 장아찌를 담아 볼려고,, 나나스끼 담아 먹듯이 담아봐야지. 쌀겨하고 치자 물에 개어서 담아 보려고. 실패할 폭 잡드라도 말이야.”
 
 
우시장이 있을 땐 사람 어깨에 부딪혀 못 다닐 정도였지
 
구 시장이 철거되면서 몇몇 상인들은 새로 생긴 고산시장으로 가게를 이전하여 여전히 장사를 하고 있다. 서금순 아짐도 36년 전에 구 고산시장에서 야채가게(삼성상회)를 시작해 올 9월에 고산 남봉리에 이전한 새 터에 자리를 잡으셨다. 때 마침 김칫거리를 사러 온 손님은 36년 지기 단골손님이다. 가게가 이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손님들이 여전히 찾아온다고 한다.
 
“36년 전인가 부터 구 시장에서 장사 시작 했었지. 1970년대 중반에 우시장이 있을 때는 고산시장도 번창했었지. 지금 중앙교회 옆에 공터자리가 우시장 자리여. 그때는 고산에 완주 5개면이 다 모였지. 사람이 얼마나 많았냐면 어깨가 부딪혀서 못 다닐 정도로 많았어.”
 
서금순 아짐은 예전 고산 시장 이야기를 하다가 돼지머리 비빔밥 할매 이야기를 하신다.
 
“그때 시장에서 장사할 때 참 맛나게 먹었지. 우리 애들이 그때 돼지머리 비빔밥을 못 잊어. 그 할매가 욕도 참 잘했어. 투가리에 김치, 돼지고기 볶은 것, 콩나무, 고추장, 기름 넣고 손을 내두르면 밥이 뚝딱 비벼져서 나와. 투가리 던져주면서 많이 쳐 먹으라고 욕하고 그랬지. 그 할매가 이제는 80살이 넘었으니까 늙어서 장사를 못하지. 요즘도 일주일에 두 번은 지나가다가 우리 가게에 들러. 그 할매가 자기는 못 챙겨먹고 넘 챙겨주느라 병났어.  우리 애들이 그 욕이 그립다잖아.”
 
 
성을 세 개 쌓아서 아들 주려고 삼성상회 간판 걸었지
 
“성을 세 개 쌓으려고 삼성상회라고 이름 지었지. 아들이 세 명이니까 하나 앞에 하나씩 줄려고 이름을 그렇게 지었는데 못 했지. 하나가 뭐야, 반 개도 못줬지.”
 
호탕하게 웃으시며 멋쩍으셨는지 그래도 한 3년 열심히 벌어서 현대차를 인수하겠다고 큰 소리를 친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하는 거라며.
 
“부지런한 사람들이 하루라도 놀면 아픈 뵙이여. 나는 아파도 장사 안 멈춰.”
 
굳센 서금순 아짐은 오늘도 분명 앉은뱅이 의자에 않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며 채소들을 갈무리 하고 계실 거다.
 
/글·사진=장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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