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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날의 보물상자, 문방구2014-05-21

내 어린 날의 보물상자, 문방구

고산초 앞에 문구점인 교전상회와 동원상회가 나란히 있다. 요즘 피서철을 맞아 상점 앞에 물놀이 용품이 진열돼 있다.
 
내 어린 날의 보물상자, 문방구
 
가끔씩 청장년들 추억 찾아 기웃기웃
장사 그만두려니 가슴에서 천불이 나드라고
 
 
라면과 김치, 치킨과 맥주, 파전과 막걸리, 여름과 공포영화, 참새와 방앗간 등 늘 붙어 다니는 짝꿍 같은 조합들. 언제부터 생긴 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우리들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나를 생각하면 다른 하나가 저절로 연상된다. 물론 시대와 세대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이 세상의 많은 조합 중에 초등학교와 문방구의 조합도 제법 멋진 어울림이 아닐까.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은 학교 앞에서 팔던 풀빵장수가 그리울 테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중년들에게는 학교 앞 문방구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이 가슴 한 편에 남아 있을 것이다. 점차 학교 앞의 작고 허름한 문방구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 학교 앞의 대형 편의점들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기억하고 싶은 추억거리가 될 수 있을까.
 
고산초 앞 교전상회·동원상회
 
고산초등학교 앞에는 교전상회와 동원상회라는 오래된 문방구가 있다. 교전상회는 할아버지가 30여년 넘게 운영하고 있고 동원상회는 3년 전에 장사를 접은 상태다. 현재는 여름 철 피서객들을 상대로 물놀이 용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그것도 예전만 못하다.
 
“내가 여그 고산초등학교 졸업생이여. 나 학교 다닐 때는 점빵같은 것이 있었간이. 풀빵장수나 있었지. 문방구 한지는 한 30년 되었지. 학교 앞에 있다 해서 교전상회라고 간판 걸었지. 요즘은 학생이 없으니까.. 장사가 되덜 안혀. 요즘 부모들이 불량식품 못 먹게 하니까 애들이 사먹으러 오덜 안지.”
 
무뚝뚝한 할아버지와 착잡한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찰나에 통통한 꼬마 녀석이 손에 천 원짜리 하나 쥐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가게 안 구석구석을 살피기 시작한다.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을 들었다 놨다, 조물거리고 고민하더니
 
“딱지는 없어요? 하나에 얼마에요?”
“300원”
“이거 랑요, 이거 주세요. 이건 뭐에요?”
“그거는 드래곤이야. 총처럼 쏘면 안에 있는 것이 쭉 나와.”
 
1000원을 쥐고 온 녀석은 장난감과 군것질거리 등 네 가지를 손에 쥐고 돌아간다.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손주녀석과 놀아 주듯 꼬마 손님을 살갑게 챙긴다.
 

고산초 앞 문구점 교전상회와 동원상회에서 파는 물건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원상회 내외분이 가게 앞 의자에 앉아 비 구경을 하러 나오셨다. 그 분들과 문방구에 대한 옛날이야기를 나눴다.
 
“오다마 사탕(눈깔사탕) 하나 물면 4km를 너끈히 걸어갔지. 옛날에는 점빵에서 돈 내고 사먹들 안했어. 계란 같은 것 하고 바꿔먹었지. 그때는 집집마다 닭을 키우니까 집에 계란이 있었거든. 어느 날은 동네 아줌마가 자기 집에서 계란을 주면서 성냥으로 바꿔오라고 심부름을 시키네. 동네서 한참을 걸어 점빵에 와서 계란을 건냈더니 이것이 깨지지는 않았는데 조그맣게 구멍이 난거야. 근데 계란이 깨졌다고 안 바꿔 주는데 다시 동네로 가자니 멀기도 하고, 또 누가 돈을 꿔주기를 하나. 어린 마음에 어떻게 하나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우리 학교 선생님이 가끔 계란을 하나씩 사먹던 기억이 나드라고. 점빵 앞에 학교가 있었거든. 학교로 가서 선생님한테 계란을 드리고 돈을 달라고 했지. 다행히 선생님이 돈을 주더라고, 그래서 그 돈으로 성냥 사갔지.”
 
동원상회 아줌마가 문방구 장사 접은 것이 못내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옛날이야기를 신나게 하시던 바깥 어른신은 슬쩍 자리를 뜨신다. IMF이전에는 그럭저럭 형편은 좋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고산초등학교도 전교생이 500~600명 정도로 군단위에서는 규모가 큰 학교였다. 등하교 때는 꼬마 손님들로 문방구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문방구에 대한 옛날 이야기를 하시는 동원상회 아줌마.
 
 
“장사 접은 지 한 삼년 되었어요. IMF 터지면서 장사가 안 되더라고. 그리고 경찰서에서는 이것도 불법이다 저것도 불법이다, 전부 불법이라고 벌금 내라고 하지. 100원, 200원 팔아서 뭐가 남간이. 28년 되도록 했는데 장사를 접을 라니까 마음이 안 좋지. 우리 바깥양반은 잘 접었다고 속 시원하다고 하는데 내 마음은 그게 아니지. 그래도 자부심을 가지고 운영했는데 우울증이 생기더라니까. 밤에 잠도 안 오고, 열이 나고 막 소리를 지르고 싶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져서 참 속상하지.”
 
동원상회 아줌마는 자신이 말띠여서 집에서 쉬며 아플 팔자라고 하신다. ‘동원상회’라는 문방구는 어쩌면 말띠 아줌마가 세상과 소통하는 해방구, 혹은 숨통 같은 곳이지 않았을까.
 
동원상회 아줌마는 말띠의 질주본능을 해소하기 위해 요즘 복숭아 과수원 일에 전념하고 계시다. 문방구 장사 접으면서 생긴 스트레스를 과수원 일하면서 푼다고 한다.
 
 “나무에 대해서 책도 보고, 공부하지. 열성으로 해야 마음이 좀 풀리지 죽은 듯이 가만히 있으면 가슴에서 불이 난다니까. 뭐시라도 할라고 노력을 하는 거지.”
 
교전상회 할아버지에게는 간간히 반가운 손님이 방문한다고 한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청년,  다 큰 어른들이 쭈뼛거리며 방문하곤 하는데 그들 대부분은 고산초등학교 졸업생이라고 한다. 그들의 어린 시절 학교 앞 문방구는 그대로지만 서서히 바래지고 있고 그곳을 지키던 아저씨는 이제 할아버지가 되었다. 
 
교전상회의 할아버지와 그 곳에서의 추억을 찾아온 이들. 어린 시절 숨겨놨던 먼지 가득한 보물 상자를 찾았을 때, 추억을 회상하며 눈물 흘리는 장년의 소년이 생각났다.   /글·사진=장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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