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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낡은 수첩2014-04-23

할머니의 낡은 수첩

960번 도전 끝에 운전면허 딴 차사순 할머니

빼곡히 써 내려간 낡은 수첩엔 오롯한 삶의 흔적이..

 

 

완주 화심을 지나면 진안으로 가는 옛날 길, 모래재의 길목이 나온다. 그곳에서 소양천을 따라 신촌리로 구불구불 들어가는 길 곁의 기운 좋은 산들은 푸진 봄을 품고 있었다. 진안에서 이어지는 호남정맥이 지나는 곳 아래, 차사순 할머니(73세)의 작은 집이 있다.

 

앞마당에는 애기상추가 자라고 있고 집 옆으로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고 있다. 담 위의 고양이는 사람 말을 알아듣는 건지, 할머니 말상대를 하고 있다. 툇마루에 앉으면 눈앞에 산이 펼쳐진다. 할머니와 앉아 곰티재를 한참을 올려다봤다.

 

 

차사순 할머니는 이미 유명하신 분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차사순이라는 이름을 쓰면 ‘960번의 도전으로 운전면허증을 따낸 의지의 한국인’이라는 타이틀로 각종 뉴스가 검색된다. 바깥세상은 빠르게 돌아가고 할머니가 모르는 인터넷세상의 한 켠에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득이다.

 

차사순 할머니는 여전히 곰티재 아래, 시집올 때부터 살았던 그 집에 살고 있다. 그 사이 단칸방이었던 집에 부엌이 생기고 방 몇 개가 덧대어지고 아들딸들은 이 집에서 고물고물 자라났다.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밤이 적적해 공부를 시작했다. 전주와 소양을 오가며 간호학원, 미용학원, 홈패션학원을 다녔다. 5년 동안 운전면허 공부를 했고 2010년에는 운전면허증도 생겼다.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동차도 생겼다. 몇 번의 봄이 오고 갔는지. 세상은 빠르게 변해도 오래전 우리네 할머니들이 그렇듯이 차사순 할머니는 봄이 오면 봄나물을 캐다가 시장에 내다 판다. 그리고 여전히 곰티재 아래, 그 집에 차사순 할머니가 산다. 

 

 

 

배우고 싶어도 옛날에는 가르칫간이

 

“바깥양반 돌아가시고 나서 공부를 시작했지. 한 이십년 됐는 갑네. 혼자 사니까 적적하잖아.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를 했지. 이것 좀 배우면 다른 거 또 배우고 싶고 그러데. 지금도 영어 학원 다니고 싶어. 안 배우면 깝깝하니께.. 배우면 돈도 많이 벌잖아. 뭐시든지 배워야 좋지. 옛날에는 배우고 싶어도 부모들이 가르칫간이. 공부도 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못했어. 시집오기 전에 고생 많이 했지. 지금은 나 혼자니까. 우리 애들 다 키워놓고 보니까 학원 다니면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

 

전남 장성이 고향인 차사순 할머니는 당시 소양에 있던 학교 선생님 사모님의 중매로 이곳까지 시집을 오게 됐다. 이런 골짜기에 사람이 사나 싶었단다.

 

농사지을 땅이 없어서 어떻게 사나 걱정을 했는데 지천에 산이 있으니까 맨날 산에 가서 나물 뜯고 시장 나가서 그 나물을 팔았다. 그 후에는 형편이 좀 나아져 남의 땅을 얻어서 농사를 시작했다. 담배농사도 짓고 복숭아 과수원농사 짓고 틈틈이 농사지은 것들을 중앙시장으로 들고 나가 팔았다.

 

사람들은 예전에도 일을 했고 지금도 일을 하며 살아간다. 현재의 젊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을 한다. 감정노동을 하는 이들도 있고 컴퓨터 앞의 일이 대부분일 테다. 이런 노동을 하는 나로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살았을까. 아마도 그들은 몸 쓰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게다. ‘땅을 일구고 열매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또 다른 일을 하면 된다.’ 간단하지만 가볍지 않는 삶의 철학. 비단 차사순 할머니만의 인생철학은 아닐 테다.

 

연필을 들고 천천히 적어내다

 

앞서 몇 번을 이야기 했지만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한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두려울 게 없는 세상이다. 가방 속에 메모할 수 있는 수첩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다. 잠들기 전 오롯이 앉아 연필을 들고 노트를 펼쳐 자신의 하루를 적어 본 적이 언제인가.

 

하루 일과를 끝내고 주로 밤에 공부를 하신다는 차사순 할머니의 침대 머리맡에는 요즘 한창 공부하고 있는 내비게이션 안내 책자와 낡은 수첩이 놓여 있었다. 내비게이션 책은 이미 스무번이 넘게 연필로 줄을 그어가며 읽어서 너덜해진 상태이다. 할머니의 수첩에는 운전면허시험 공부한 흔적과 글자 연습한 것 외에 여러 가지 메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연료계, 연료파이프, 유량계, 유압경고등, 오일펌프’ 등과 같은 생소한 자동차 관련 용어들을 반복해서 연필로 쓰면서 손으로 익히고 머리로 이해하며, 자동차의 단면을 그림으로 그리기도 했다. 소리 나는 대로 쓰신 메모가 재밌어서 물었더니 마을에서 일 해주고 받은 돈을 적어 둔거란다.

 

 ‘고추 딴 품싹 3,000원 /꽃 밭 맨 품싹 3,000원 / 고추 딴 품싹 안바듬 /고구마 맨 품싹 4,000원’

 

“저녁에 주로 공부를 하는데 그러다가 잠 오면 자고 그렇지. 내가 글씨를 못 써. 글씨를 써보덜 안했으니까. 장삿글씨라 아무렇게나 막 써버렸어. 그러니까 글씨가 안 되지. 잘 써야 하는데. 그래서 맨날 글씨 연습하는 거야.”

 

차사순 할머니의 성씨는 한자로 수레 차(車). 그래서 자동차와 인연이 있나 보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더니 수줍게 웃으신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셨다.

 

“포기 할만도 한데 그만두지 않은 것은 끝까지 배우면 뭐이든지 다 알겠다 싶어서… 그래서 끝까지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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