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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식탐이로다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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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가루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 봄은 고양이로다. 이장희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홍이’는 요즘 같은 봄날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나른한 봄 햇살자리를 찾아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긴 잠을 자곤 한다. 고양이는 겨울의 문턱을 넘어온 부드럽고 순한 햇살에 몸을 부비며 봄이 왔음을 느낀다.

 

그렇다면 고양이가 아닌 인간들은 봄이 왔음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무거운 겨울 잠바를 입고 나갔다가 사람들의 옷차림과 다름을 눈치 챘을 때, 이불을 옥상 빨랫줄에 널어 먼지를 털어내고 싶을 때, 머리를 산뜻하게 자르고 싶을 때, 오래도록 문을 닫아 놨던 골방을 청소하고 싶을 때, 충분히 잠을 자도 자꾸만 눈이 감길 때, 봄꽃이 만개한 상황이라면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기꺼이 봄을 찬양하고 있을 테다.

 

나에게 봄은 식탐이다.


평소에도 늘 먹을 것에 대해 생각하지만 유난히 맛있는 것에 집착하는 시기가 오면 ‘아. 봄이로구나.’,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뱃살걱정일랑 뒤로 하고. 봄의 식탐은 한 해를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래서 봄의 식탐은 특별하다. 봄에만 먹을 수 있는 것은 유난스럽더라도 기꺼이 찾아서 먹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쑥이 가장 먼저 난다는 통영의 봄은 쑥으로 시작해서 도다리로 끝난다고 한다. 오죽하면 통영사람들은 도다리쑥국을 먹지 않고서는 봄이 왔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있겠는가.

 

완주사람들은 어떤 봄 음식을 탐하며 한 해를 버틸 힘을 비축하고 있을까?

 

추위를 이겨낸 달큰하고 고소한 봄동겉절이와 막 지어낸 밥에 달래장을 넣고 쓱쓱 비벼먹어도 훌륭할 테다. 연한 쑥을 뜯어 된장 풀어 끓인 쑥국. 향긋한 취나물.

 

서툰 살림살이 5년차인 내가 직접 해먹을 수 있는 건 이 정도이다. 다양한 봄 음식이 먹고 싶을 땐 딸기 한 박스 사들고 부모님 댁에 놀러가 엄마의 음식 솜씨를 찬양하면 그만이다. 그럼 저녁 밥상에는 참기름 넣고 조물거린 것부터 된장으로 버무린 다양한 봄나물. 그리고 삶은 쭈꾸미와 초고추장으로 버무린 쭈꾸미무침이 올라온다.   

 

만개한 봄꽃이 예쁜 건 당연하지만 봄 들판에 쪼그려 앉아 봄나물을 캐는 여인네들의 뒷모습도 봄꽃 못지않게 예쁘다. 봄날, 535번 버스를 타고 고산으로 향할 때는 길 가의 연두 빛 들녘에 시선이 머문다. 너른 들녘에 뭔가 고물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져 자세히 바라보면 어김없이 바지런한 여인네가 봄나물을 캐고 있다. 보약 같은 여인네의 봄날 밥상, 상상만 해도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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