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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꾼’ 2013-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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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딸, 중학생 아들을 둔 도시여자 희주씨. 사흘 동안 여기에 머물다가 지난 일요일 돌아갔다. 그냥 바람 쐬거나 쉬러 온 게 아니라 고된 농사일을 자청했고, 실제로 내내 그리 지내다 갔다.

 

그러니까, 그 일주일 전 쯤 뜬금없는 카톡 메시지가 떴더랬다.

 

“실례인 줄 아는데, 일주일 쯤 빡세게 일할 데 없을까요? 농사일 말이에요. 갑자기 잠수탈 일이 생겨서…."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보다 싶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거리를 찾아봤다. 우리집은 실상 벼농사가 전부고, 벼베기를 앞둔 때라 그닥 할 일이 없었다. 밭농사가 제법 되는 분토골 주란 씨한테 얘기했더니 반색을 한다. 그러잖아도 일손이 모자랐는데 참 잘됐단다. 그 며칠 뒤 희주 씨는 서너 시간 차를 몰아 이 곳에 왔다.

 

희주 씨하고는 그야말로 ‘일면식’ 밖에 없는 사이였다. 귀농 희망자와 귀농인이 함께 모인 행사에서 한 차례 의견을 나눴을 뿐이고, 그 인연이 ‘페친’(페이스북 친구)으로 이어졌던 터다. 귀농이 꿈이라지만 기껏해야 ‘로망’ 수준. 중학생 아들을 농사짓도록 ‘꼬드겨서’ 함께 귀농한다는 얘긴데, 그게 참…. 도시에서 나고 자라 농사일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데도 빡세게 일하겠노라 나섰으니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 했으니 농가에서는 찬밥, 더운밥 가릴 게재가 아니다.

 

그 이튿날부터 고된 일꾼의 하루가 이어졌다. 수확을 끝낸 고춧대를 뽑고 나일론 끈을 사려 묶는 일부터 두둑 사이 풀매기, 들깨 털기까지 빡센 일거리가 끊이지 않았다. 좀 틈이 난다 싶으면 뒷산에 올라가 밤을 주웠다.
“농사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언니가 어쩌면 그리 일을 잘 한대요~!”

 

내내 같이 일하며 지켜보아온 주란 씨는 혀를 내둘렀다. 희주 씨 나름으로는 일하는 동안 잡념도 사라지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노라고 기꺼워했다. 비록 덤불에 살갗을 긁히는 통에 ‘풀독’이라는 달갑잖은 질환이 생겼지만 그거야 덤으로 치면 그만이고. 어쩌다보니 그 사이 주변경치를 둘러볼 짬도 못 내고, 떠나기 전날에야 이 고장 별미 민물매운탕 저녁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느닷없었던’ 그 사흘이 새삼 많은 걸 떠올리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바쁜 철에 홀연히 나타나서 일손을 덜어준 고마움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화두는 역시 귀농일 수밖에 없다. 귀농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곤 하지만 노령의 기존 농촌인구도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농촌으로 돌아와 자연생태계를 살리고, 깨끗한 먹거리를 만들어낼 사람은 아직도 크게 모자란다. 

 

그러니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시골체험은 몹시 중요하다. 몸소 겪어본 농사일과 시골살이, 바로 옆에서 지켜본 선배 귀농인의 삶은 이들의 귀농의지를 북돋을 수도, 꺾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희주 씨의 지난 사흘이 귀농하고픈 간절한 꿈을 이루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차남호 고산 어우리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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