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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고 누워보세요” 몸과 맘이 재충전되는 시간 1초 2013-08-05

“눈을 감고 누워보세요” 몸과 맘이 재충전되는 시간 1초

 

화산 봉황마을 느티나무 아래에서 이영근·신춘화씨 부부가 더위를 식히고 있다.
 
 
나무, 마을을 품다
 
오래된 나무는 긴 세월의 풍진을 이겨낸 생명의 애옥살이는 물론이고, 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조상의 정신과 나무에 기대어 살아 온 많은 이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완주에도 장구한 세월을 이겨낸 보호수 54그루와 노거수 24그루가 있어 인간에게 곁을 내준다.
 
 
 
2-봉동 장기리 느티나무 전경.jpg
봉동읍 장기리에 있는 느티나무 숲은 완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쉼터이다. 느티나무 등 9그루가 보호수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눈을 감고 누워보세요” 몸과 맘이 재충전되는 시간 1초
 
노거수 아홉그루 넉넉한 품… 바람한점 없는 날도 시원해
 
 
 
봉동 장기리 느티나무 숲

옛말에 잘 자란 느티나무 한 그루에는 무려 500만 장의 잎사귀가 돋아난다고 한다. 느티나무 그늘은 그냥 시원한 게 아니다. 500만 장의 잎이 모였다 흩어지며 그늘을 지었다가 햇살을 담기를 되풀이한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 느티나무 그늘은 지친 몸뿐 아니라, 번잡한 마음까지 평안에 들게 한다.
 
봉동읍 장기리 만경강 뚝방 언덕에 있는 수령 30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느티나무와 팽나무 아홉 그루가 커다란 나무그늘을 만들어 낸다. “우리 마을에서는 이 나무 그늘이 제일 시원해. 우리 집은 저 위에 있는데, 더워 견딜 수가 없으면 여기로 나오지. 바람 한 점 없는 날에도 여기는 시원하거든.”
 
그늘 아래서 쉬고 있던 이춘금(76) 할머니는 긴 무더위에 대한 푸념을 그렇게 털어놓았다. 열아홉에 이 마을로 시집 와서 산다는 할머니는 정자로 쓰는 느티나무야 곳곳에 많이 있겠지만, 장기리 느티나무만큼 좋은 나무는 없을 것이라는 자랑이 이어진다.
 
“안 아픈 데가 없어. 이 나이 되면 다 그렇겠지만, 온몸이 다 쑤시고 아파. 나무야 나보다 많이 살았지만, 저리 튼튼해 보이잖아. 하긴 나무가 아픈지 아닌지 내가 어찌 알겠어?”
 
건강 체질로 보이는 할머니지만, 그 나이쯤의 노인들에게 자연스레 찾아오는 잔병 치레로 고생이 많은 모양이다. 허리도 꼿꼿하고, 음성도 강렬하고, 귀나 눈도 전혀 어둡지 않다. 그리고 가만히 나무를 쳐다보며 마치 ‘나무는 아프지 않아 좋겠다.’고 말을 건네는 듯했다.
 
장기리 느티나무는 300살을 넘긴 늙은 나무다. 키가 25~30m나 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둘레도 5m에 이르는 나무는 나뭇가지도 무척 넓게 펼쳐져 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제 품에 너끈히 품어 안을 만큼 넉넉하다.
나무라고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어디 아픔이 없었을까만, 겉으로는 할머니처럼 건강해 보인다. 나무는 때때로 통곡의 울음 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가 아파했던 것은 대개의 큰 나무들이 그런 것처럼 6·25전쟁처럼 나라에 큰 일이 벌어지던 때였다. 나무 그늘에서 자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에 일어나는 불길한 일을 나무도 아파했다는 이야기다.
 
2-쉬고있는 사람들222.jpg
점심 때가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이 봉동읍 장기리에 있는 느티나무 숲 나무 그늘로 모여 든다.
 
 
점심 때가 지나면서 마을 사람들이 마치 약속한 것처럼 나무 그늘로 모여 들었다. “잠깐만 밭에 나가면 힘들어 죽는다 하다가도 나무 그늘에만 들어오면 신기하게도 모두가 편안해져요. 원체 시원한 그늘이니까 그런가봐요. 누가 막걸리라도 가져오는 날이면 나무 그늘이 근사한 잔치판이 되죠.”
 
논에 물꼬를 보러 나갔다 잠시 들른 할아버지부터 어린 손녀를 포대기에 안고 나온 할머니까지 어느새 장기리 느티나무 그늘은 마을 사랑방으로 변했다. 물끄러미 나무를 바라보던 한 할아버지는 “느티나무의 잎이 예쁘게 잘 돋아나면 풍년이 들고, 잎이 잘 나지 않으면 흉년이 들 것을 점쳤다”고 말했다.
 
오랜 경험을 통해 이뤄진 믿음이겠지만 과학적으로도 근거가 있는 이야기다.
 
느티나무에 잎이 나는 계절은 농사를 시작하는 때다. 느티나무의 잎이 무성하게 돋아난다는 건 곡식의 씨앗이 뿌리를 튼튼하게 내릴 수 있을 만큼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다. 풍년을 예감할 수 있는 기미다. 그래서 이 같은 이야기는 장기리 뿐 아니라 큰 나무가 서 있는 농촌 마을에서라면 흔히 찾아볼 수 있다.
 
한쪽 나무 그늘에 새 손님이 찾아왔다. 매우 다정해 보이는 노부부는 휴대용 라디오와 돗자리를 따로 준비했다. 지나다 들른 것이 아니라, 아예 작정하고 이 나무를 찾아온 것이다.
 
 “짬만 되면 일부러 여기 와서 쉽니다. 봉동 읍내에 이만큼 시원한 곳이 없어요. 두어 시간씩 쉬고 돌아가면 찌뿌드드했던 몸과 마음이 몰라보게 상쾌해져요.” 지루하게 이어지는 병환에도 나무가 있어 유쾌하게 지낼 수 있다며 그는 나무 줄기를 그윽히 바라봤다.
 
나무를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온 마을 노인에서부터 스쳐 지나는 중년의 부부, 생로병사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병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누구라도 품어 안는다. 무더운 여름 한낮, 봉동 장기리 느티나무는 모두의 쉼터가 되어주고 있다.
 
2-느티나무 안.jpg

 
※ 왜 심었을까  “고증 자료 없지만 홍수 막으려 조성”
 
누가, 언제 이곳에 나무를 심었는지의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마을 어르신들의 말로는 본래 이곳은 과거 고산으로부터 유입된 물로 인해 홍수가 일어나 많은 피해를 입어 제방림으로 조성했다는 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여그가 쪼매난(조그만) 방천인디 비 많이 나리믄(내리면) 살 수가 없어. 나 일곱 여덟 살 땐가 멍애방천이 터져갖고 초가집 싹 쓸어가고 들판 덮어불고 혔어. 사람들이 전주 가서 시위해 갖고 일본사람들이 방천을 막아줬제. 장마철마다 비 쪼까(조금) 올라고허믄  밤낮으로 징 치고 나발 불고 물난리 난다고 피해라고 혔제. 마을 토박이 이용구(75) 할아버지는 “그런게 시방처럼 냇가 가차이에 마을이 없었다”며 “산 욱으로 올라가 있었다”고 했다.
 
예전에는 더 많은 정자나무가 있었지만 수해로 많이 떠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정자나무 세 그루 남으면 마을이 떠내려간다”는 말도 있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칠월칠석에 느티나무에서 동제를 올렸다. 작년(2012년) 10월10일에는 당산제 제단을 새롭게 설치했다. 제단에는 당산제 유래가 기록되어 있는데 장마철 홍수가 언급 되어 있다. 홍수로 인해 죽은 영혼을 달래고, 제방을 다지기 위해서 당산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특히 2009년 10월10일 봉동읍 인구가 2만 명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발전의 전기로 삼고 있다. 이날을 읍민의 날로 변경하고 당산제도 새롭게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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