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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마을은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 2013-03-18

먹방마을은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

 

봄 판공이 열린 2월 27일 오후 3시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 백석마을 공소에서 신자들이 줄을 서서 고백성사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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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방마을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피해 숨어살 던 곳
대둔산 자락의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 서북쪽에 조그마한 마을이 하나 있다. 행정구역상 정식명칭이 완주군 운주면 구제리 먹방마을인 이곳은 전체 주민 3명이 거주하고 있다. 지난 2000년대 초 시멘트 포장이 되기 전에는 마을로 통하는 변변한 길도 없어 개울을 거슬러 올라 다녔다고 한다.
먹방마을은 묵방리, 먹뱅이, 먹방이등의 이름으로 불리웠다. 이는 먹을 한자로 쓰면 묵(墨)이 되므로, 이곳에서는 묵방골을 먹방골이라고도 하는데, 먹방이란 먹을 만드는 곳이고, 먹방골이란 먹방이 있는 골짜기라는 의미다.
소나무를 태운 그을음을 이용하여 먹을 만드는데(송연흑), 이 골짜기에 소나무가 많아서 먹방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마을에서의 생계수단은 먹을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유지했으며 대구를 거쳐 부산, 일본에까지 판매를 했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이곳에서 생산되었던 먹은 상당히 우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먹방마을의 첫 시작은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이었다. 예전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잡으러 왔다가 계곡사이로 발자국도 남기지 않고 숨어버리는 까닭에 그냥 돌아가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실제 1890년까지 기록에 나오는 고산 지방의 공소는 저구리, 넓은 바위, 다리실(천호), 차돌박이(백석), 되재를 포함하여 57개나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 고을에는 심산유곡의 어디에나 천주교 신도들이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1884년~85년 기록으로는 69명의 신자수가 있었고 점차 늘었다가(기록이 정확하지 않음) 1896~97년 24명의 신자수가 마지막 기록이다. 현재로썬 팔순의 할머니 세분이 천주교 교우촌 먹방마을을 지키는 마지막 신자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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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공소
2월 27일 오후 3시 운주면 구제리 백석마을 공소. 노인 등 주민 10여명이 고산성당 신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승합차 한 대가 공소 마당으로 들어오자 황급히 종을 쳤다. 이른바 판공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백석 공소의 판공은 봄 판공과 가을 판공해서 한 해 2번 열리는데 이날 봄 판공이 열린 것이다. 고산성당 신부가 방문해 직접 판공을 진행한다.
먹방마을 주민 3명도 모두 공소에 나왔다. 판공이 시작되자 미사포를 쓴 신도들은 고백(판공)성사를 할 쪽지를 들고 줄을 섰다. 고백성사는 독립된 방에서 신부가 신도들의 고백성사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먹방마을 할머니들은 “마음이 심란할 때 신부님을 뵙고 나면 편해진다”며 “특별할 것은 없고 아주 소소한 일상적인 것들을 고백했다”고 말했다.
공소에서는 신도들의 고백성사뿐만 아니라, 마을 대소사도 결정한다. 의사결정권을 가진 공소는 드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석 공소는 1820년 대 후반에 들어선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백석마을 천주교 신도는 주변까지 포함 300여명이 넘을 정도로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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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제마을 돌탑... 정월대보름 마을안녕 기원제 올려
먹방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구제리 원구제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마을 한 가운데에 큰 돌탑이 있다. 사람들은 이를 그냥 탑이라고 부른다. 누가 언제 왜 쌓았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고 있는 것 만 알고 있다.
탑은 둘레가 대략 10~12m, 높이가 2m 정도 된다.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탑에서 마을의 안녕과 평온을 기원하는 제를 올린다.
행정구역상 같은 구제리인 먹방마을과 원구제마을은 종교적으로는 상당히 차이가 있다. 원구제는 토속신앙을 믿는 이들이 많고 먹방은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인 까닭이다. 한 달 전부터 음식장만하고 제를 올릴 사람을 뽑아 한두 달 정도 몸을 정갈하게 하고 있다가 제를 올렸다고 한다.
본래 탑은 지금의 위치에서 50여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있었다. 그런데 새마을운동 기간에 마을을 정비하면서 일부 주민들이 탑을 없앴다. 하지만 주민들은 15년 뒤 지금의 위치에 다시 탑을 쌓았다.
한번은 한 외지인이 감을 따기 위해 탑 위에 올랐는데 좋지 않은 일이 생겨 음식을 장만해 제를 올린 적도 있다고 한다.
구제리 이장 이경호씨는 “언제 누가 그 탑을 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돌탑에 마을과 주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며 “은연중에 우리 마을의 수호신 같은 존재가 됐다”고 말했다. 원구제마을에는 30여 가구 5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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