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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맛 수다... "요즘 사람들 그 맛 알랑가 몰라" 2013-01-23

어르신들의 맛 수다...

 

축제나 잔치에 빠질 수 없는 게 음식이다. 완주와일드푸드축제나 비빔밥축제처럼 음식을 주제로 한 축제도 상당하다. 최근 한 연구기관이 외국인의 관광수요를 조사했는데 1위가 쇼핑, 2위가 식도락 여행이었다. 맛과 추억이 돈이 되는 시대다. 맛은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이다. 그것엔 문화적 역사적 배경과 함께 개인사가 담겨있다. 우리 모두 ‘밥심’으로 산다지만 맛으로 시대를 추억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생존 이상의 의미다. 문득 어르신들의 옛 맛이 궁금했다.
 
10월 7일 삼백 수십 년 된 나무아래 원용복마을 어르신 몇 분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잽싸게 끼어 앉아 노트북 전원을 켰다. “어르신들 옛 주전부리(간식)는 뭐 였어요?” 해가 막 산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추억에 젖기 좋은 시간이었다.
 
지봉철(65)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엔 정말 먹을 게 없었다고 했다. “가까운 만수동 계곡에서 뱀장어를 잡아먹었던 기억이 나네. 뱃속에 기름기가 없어서 먹으면 바로 설사해서 많이 먹지는 못했던 것 같아. 그땐 거기(만수동)에 기(민물 게)도 많았지.”
“그래. 그때 물가에 나가면 얼마나 기가 많았던지 바께스(양동이)로 한 가득씩 잡기도 했어.” 남용우(75) 할아버지도 거들었다. “물고기도 정말 많이 잡아먹었어. 여기저기 냇가에 깔렸었거든. 내가 알기로 물고기는 밤에 밖으로 나오는 성질이 있어서 횃불로 불을 밝혀 고기를 잡았던 기억이 나. 겨울에는 얼음을 깨서 잡기도 했고. 참 옛날 음식이 좋았어.”
고향이 배산 근처였다는 이정순(67) 할머니는 군것질로 하지감자 아니면 고구마를 많이 먹었다. 그나마 부잣집이어야 여유 있게 먹을 수 있었다고 할머니는 덧붙였다.

“봄에 산에 가서 낫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었던 기억이 나요.” 상대적으로 젊은 류철호(50)씨도 추억의 맛 여행에 동참했다. “나무에 물이 오르면 제법 단물이 나왔거든요. 배가 고프니깐 뭐든 맛있을 때였고요. 그런데 소나무 껍질은 이상하게 오래 씹으면 빡빡해져서 안 넘어갔던 것 같아요.”
 
 
국동순(75) 할아버지는 군것질거리는 아니지만 지울밥(밀 껍질로 만든 누룩원료)도 많이 먹었다고 했다. “거기 나이로 봐서는 상상도 못할 음식이지.”
옛날에는 장어도 많이 먹었다. 피목리 같은데 많았는데 메기는 지금도 많이 나온단다.   
대추나 감, 밤도 주요한 군것질거리. 지봉철 할아버지는 “여긴 다른 과실나무는 없었고 대추, 감, 밤나무가 많아 그런 것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그것도 새복(새벽)에 일찍 나가야 하나라도 더 주웠어. 우선 배가 고팠으니깐 부지런해야 했지.”
 
목화는 어땠을까. 어린 목화는 씹으면 단맛이 난다. 국동순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에피소드 하나를 기억해 냈다. “집에서 목화 농사를 했는데 누가 목화를 그렇게 훔쳐가서 밤에 활을 만들어 보초를 섰어. 그러던 어느 날 이골 저골 다니면서 밤에 목화를 훔쳐가는 놈을 봤지. 그때 활로 쐈는데 고놈 머리에 맞췄던 것 같아. 다음날 머리에 뭐라도 싸매고 다니는 놈이 도둑이겠거니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았는데 결국 못 찾았어.” 국 할아버지는 유년시절 어느 날 속에 있었다.
“목화 겁나게 맛나지.”
 
6일 봉동주공 경로당에서 만난 할머니들도 목화예찬에 목소리를 높였다. 어르신들에게 목화는 아주 친근한 간식거리였다. 손가락 한마디만한 목화를 따서 오래 씹으면 그렇게 달수가 없더란다.
 
삼례읍 덕천리에서 자란 김순례(77) 할머니는 일곱살 쌀이 귀할 때 쌀 껍질에 붙어있던 쌀겨를 먹고 설사를 자주 했던 기억이 있다. 왜정시대였다. “그걸 먹으면 어지러웠던 것도 같고.” 김 할머니는 골맹이(골뱅이)도 많이 먹었다. 비온 뒤 논에 나가보면 지천으로 깔린 게 골맹이었다. “삐비도 그렇게 많이 먹었어. 봄은 먹을 게 없을 때라서 친구들하고 들녘을 돌아다니며 많이 뽑아 먹었지.” 깻묵과 메뚜기도 많이 먹었다. 메뚜기는 잡아 병에 넣어 집에 가져온 뒤 소금을 넣고 볶으면 두~ 두~ 두~ 하고 막 뛰었다. ‘땅구’라고도 불렀다고 김 할머니는 덧붙였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무렵 고소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명절 때 부친 전이 경로당 점심상에 올랐다. “아이고 맛나 것다.” 둘러앉아 뚝딱 식사를 마친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정읍 산내에서 자란 김영임(78) 할머니는 외국에서 온 밀 종자인데 호밀밥을 많이 먹었었다고 기억했다. 김 할머니는 “하지감자니 옥수수니 감이니 하는 건 흔한 간식거리였다”며 “콩도 많이 구워 먹었다”고 덧붙였다. 임동근(75) 할머니는 어릴 때 칡뿌리를 많이 캐드셨다. 전주 노송동에서 태어났는데 산 속에서 가재도 많이 잡아먹었다. 민물가재는 지금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귀한 몸이 됐다.
 
김순례 할머니는 다래도 많이 따 드셨다. “몰래 따서 감춰놓고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어. 봄에는 포리똥(보리수)도 흔했지. 집이 섬진강에서 멀지 않았는데 돼지감자도 많이 먹었어. 논 갈아엎은 뒤엔 올망대도 자주 먹었던 것 같아.”

할머니들의 맛 여행은 끝없이 이어졌다. 익산 춘포가 고향인 이승례(80) 할머니는 논두렁 사이 조그마한 수로에서 새비(새우)를 많이 잡아 드셨다. “망태로 수로를 훑으면 새비가 드글드글 했어. 그걸 시래기 넣고 지저 먹으면 좋았제.” 할머니는 메기며 가물치며 빠가사리도 많이 드셨다.
0) 할머니는 논두렁 사이 조그마한 수로에서 새비(새우)를 많이 잡아 드셨다. “망태로 수로를 훑으면 새비가 드글드글 했어. 그걸 시래기 넣고 지저 먹으면 좋았제.” 할머니는 메기며 가물치며 빠가사리도 많이 드셨다.
 
할머니들은 왜정시대 일본사람들에게 나락(벼)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땅에 묻었던 얘기도 들려줬다. “심지어는 산에 묻어둔 사람도 있었지.” 그럼 일본 사람들이 고놈 찾으려고 꼬챙이로 막 찔러보고 다녔다. “이만한 꼬챙인데 땅을 파 묻었던 곳은 물러서 푹푹 들어갔거든.” 할머니들은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직도 포한이 이는 듯 했다. 
 
화산면에서 만난 박명기 할아버지(화산농악단 대표)는 수확을 앞두고 약간 덜 익은 보리를 많이 구워먹었다. “어른들이 벼농사를 위해 산에서 베어 논에 깔아놓은 풀을 몰래 걷어다가 보리를 굽는 땔감으로 썼지. 흔히 바닥풀이라고 하는데 보리 굽는 데는 최고였어. 그래서 보리타작이라고 하거든.” 그렇게 먹고 나면 입 주변이 꺼멓게 변하곤 했다. “다 배고플 적 이야기지.” 늦가을에는 논바닥에 자라고 있는 콩대를 뽑아다가 구워먹었다.
 
“옛날엔 소죽 끓이는 부뚜막이 많았지. 큰 가마솥에 소죽을 끓였는데 땔감은 모두 벼 껍질인 왕겨를 썼어. 소죽을 끓이고 난 뒤 불이 사그라지기 전에 고구마를 넣어 두면 그렇게 잘 익을 수가 없었지.” 맛도 제대로 였다.

구이에서 만난 김정기(67) 할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마당이나 텃밭에 묻어뒀던 무를 기억했다. “긴 겨울밤에 배가 꺼져 허기지면 무를 캐다 먹었어.” 또 아궁이  잔불에 통마늘을 구워먹었다. “요즘 그 맛을 알라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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