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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추억 만들기2024-04-18

[이종민의 다스림의 음악] 추억 만들기


추억 만들기



김애라의 [4월 어느 날]

 

4월 어느 날... 그 날은 바람이 불고 추웠던 날입니다.

4월 어느 날 오후... 그렇게 우리는 만났습니다.

그 날은 바람이 불고 추웠던 그런 날이었습니다.

세상에 모든 일들이 우연처럼 다가오지만

사실은 필연이기에 우리들 만남이 소중합니다.

 


김애라의 해금과 노영심의 피아노가 만나 4월 어느 날 필연으로 다가온 만남의 추억을 서정적으로 그려주고 있는 곡입니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추억 한 자락쯤은 있을 것입니다. 아름답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한. 그렇지 않다면 퍽퍽한 삶의 여정이 먼지만 풀풀 날리는 사막을 터덕터덕 걸어가는 꼴 되기십상입니다.

기다림이 미래의 막막함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추억은 망각의 늪으로 변해버리기 쉬운 과거를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의 산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의 무시무시한 파괴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기다릴 거리를 가능한 많이 마련하는 한편 추억할 거리도 놓치지 말고 챙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처음 분위기가 마이클 호페의 [기다림]과 많이 흡사합니다. 비가 내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소리가 우리들 기억의 신경을 자극합니다. 여린 피아노 연주가 추억의 문을 살짝 열어젖히면 농익은 해금연주가 우리들 심금을 마음껏 휘젓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주고받는 피아노와 해금의 소곤소곤. 직접 보지 않아도 봄비 내리는 창가에 마주앉아 나누었을 천진한 연인들의 사랑이야기쯤 손에 잡힐 듯 그려낼 수 있습니다. 아직 손조차 잡지 못한 그 순수한 설렘, 세속에 달아 아주 잊어버렸나 했는데 이 곡 듣고 있자면 보란 듯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김애라의 첫 번째 해금 앨범 추억(In Loving Memory)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 정수년, 강은일 등과 더불어 해금의 폭넓은 연주 영역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김애라는 무형문화재 제 17호 이수자로, 현재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해금 수석연주자로도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으며 중앙대학교 등에서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2003년에 나온 이 음반 말고도, 2004나의 이야기(My Story), 2006바람의 향기(Scent of Wind) 등이 있는데, 다양한 악기들과의 결합을 통하여 기존의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주로 시도하고 있습니다.

좀 더 과감하게 해금 고유의 창작곡에 도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습니다만 전통 악기의 대중화를 통해 우리음악의 영역을 넓혀가려는 의도로 양해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런 의도로 음반 제목도 영어로 고집하는 가 봅니다.

동영상에 나오는 사진들은 오래 전인 2006년 봄 북한 개성 나무심기에 참여하면서 찍은 모습들입니다. 당시 북쪽의 산천은 많이 스산했습니다. 산은 거의 민둥산이었고요. 당시 안도현 시인과 북한에 사과나무보내기운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운동 홍보용 사진을 확보하기 위해 꽤 묵직한 사진기를 가지고 갔었습니다.

그때 살펴본 개성 향교와 선죽교의 모습, 이제는 가슴 먹먹한 추억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초병이 중앙에 위치한 사진을 찍었다고 사진기를 압수당할 뻔 하다가 사죄문까지 쓰고 가까스로 풀려나왔으니 저에게는 더욱 생생한 사건입니다. 이제 다시 가볼 수 없게 되어 더 소중하고 안타깝기도 하고요. 다음 해 평양 아래 능금군에 심은 사과나무는 잘 자라고 있는지? 북녘 어린이들의 허기를 조금이라도 달래주고 있는지!

기다림이 없다면 내일이 막막하고 추억거리가 없다면 어제가 허허롭습니다. 삶은 분명 오늘의 일이지만 어제와 내일이 만나 오늘을 이루는 만큼 그 어느 하나도 가벼이 할 수는 없습니다

이 곡 들으시며 아련한 사랑의 추억 하나 떠올려보시지요. 분주함을 핑계로 내팽개친 그런 추억거리 하나 붙잡아 되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이 환한 봄날 새로운 추억거리 하나 일부러라도 마련하시고요.



/ 이종민은 40여 년간 지켜온 대학 강단에서 물러나 고향 완주에서 인문학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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