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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휘돌아 마을 한 바퀴2024-04-18

[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휘돌아 마을 한 바퀴

[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휘돌아 마을 한 바퀴

[봉실산 너른 품에, 신봉마을] 휘돌아 마을 한 바퀴


휘돌아 마을 한 바퀴


벚꽃 만발하던 시기가 지났는가 이제는 꽃비가 되어 흩날린다. 어느새 생명의 기운이 움트는 4월의 포근한 기운이 산과 들에 스며든다. 봉실산의 품에 안겨있는 봉동읍 신봉(新鳳)마을 사람들도 바깥에 나와 마을 곳곳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농부들은 꽃샘추위가 지나고 본격적인 봄을 맞이해 농사 준비에 바쁘다. 밭에 거름을 주고 땅을 갈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분주하게 봄을 알리는 주민들의 발길


따스한 봄의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동네 한 바퀴가 순식간에 지나간다. 봄이 허락하는 풍요로움이다. 곳곳에 떨어지는 꽃들을 눈에 담았다면 씨앗을 뿌리는 농부들의 모습에서 신봉마을의 계절을 느낄 수 있다. 생강밭에 100포대의 퇴비를 주고 있는 구자예 어르신은 이른 아침 나와 늦은 오후까지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날이 좋으니까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이 밭에는 토종생강을 심으려고. 이번에는 생강이 좋아서 맛있을 거 같아.”

신봉마을은 생강, , 고추 등 다양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곳곳에 밭에 나와 있는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집 앞에 밭이 있는 이순주(77) 어르신은 팥을 심고 있었다. 순주 어르신은 이제 슬슬 뭐든 심을 때야. 남편은 뒤에서 토란이랑 깨를 심으려고 준비하고 있어. 요새는 이렇게 씨를 심는다고 정신이 하나도 없어.” 남편 이병교(80) 어르신은 오늘은 거름을 주고 땅을 매고 있어 땅이 좋아야 작물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거든.”

옆 밭에서는 고길예(81) 어르신이 밭이랑에 나 있는 풀을 뽑고 계셨다. 고추를 심기 전 땅을 고르게 하는 작업이다. “풀은 뽑고 뽑아도 자라. 그래도 해야지. 주말에는 자식들이 와서 도와주기도 해서 수월해.” 잠든 흙을 깨우는 주민들의 손길로 신봉마을은 봄을 맞이하고 있다



마을여자들의 탈출구, 삼바우정 당산제


나무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풍경이 눈앞에 나타난다. 푸르른 병풍처럼 펼쳐진 봉실산과 옥녀봉 아래 자리잡은 신봉마을이다. 마을 초입에는 커다란 바위 2개가 놓여 있는데, 서편에 단독으로 놓인 바위까지 통틀어 주민들은 삼바위 또는 구바위라고 부른다. 별자리 같은 120여 개의 성혈이 새겨진 삼바위는 아주 오래전부터 신봉마을 사람들에게 중요한 존재다. 특별한 날이면 삼바위 근처에서 마을 사람들이 제를 올리고 풍물을 치곤 했는데 그 장소를 삼바우정이라고 한단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고귀례(92) 어르신은 삼바우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동네에서 당산제라고 치성을 드리는 행사가 있었지. 떡시루와 술 등을 장만해서 주로 여자들이 지냈어. 재깨골, 당산나무, 바우정에서 당산제를 지냈지.”

귀례 어르신은 결혼 안 한 젊은 여자들도 따라 나와서 막걸리 마시고 놀고 그랬다며 당시의 기억을 떠올렸다.

농사, 살림, 육아의 숨 가쁜 굴레 속에서 당산제는 마을 여성들의 일상탈출구였던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산제는 마을 여성들을 연결하는 단합의 장이기도 했다.

구연순(90) 어르신은 여기 토박이나 나처럼 시집온 사람들이나 다 거기서 만나 놀았다며 당산제가 마을 여성들의 야유회였다고 설명했다.



그땐 다들 마루 아래 생강굴 하나씩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벚나무 옆 마을회관 입구가 저마다 다른 색깔의 유모차(실버카)로 북적북적하다. 신봉마을 어르신들이 각자 점심을 먹은 후 하나둘 마을회관으로 모인 것이다. 마치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마을회관의 사랑채는 어르신들로 꽉 채워진다. 7~9명의 어르신이 한데 모여 색칠 공부를 하고, 수다를 떠는 모습이 화기애애하다.

유순임(89) 어르신은 우리 마을은 여자들이 제일 건강하고 오래 살아서 지금도 우리끼리 재미나게 잘 지낸다며 우정을 자랑했다.

어떻게 우정을 나눴는지 묻자 이경자(80) 어르신은 동지 때 마을 사람들이랑 다 같이 손수 찹쌀을 빻고 새알심을 동글동글 빚어 팥죽을 쒀 먹었다며 팥과 쌀을 한 되씩 걷어서 끓여 먹었던 팥죽 계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봉마을 사람들은 이처럼 특별한 날에 먹는 음식이 아닌, 자주 만드는 반찬도 나눠 먹는 정겨운 사람들이었다.

경자 어르신은 내가 겉절이 새로 하는 날에는 밥을 많이 지어야 했다. 맛있어서 다들 밥을 많이 먹었다며 웃었다.

손수 고추를 갈아 김치를 만드느라 손이 욱신거리고 매워도 가족들과 주변 이웃들이 잘 먹었다고 배를 두드리면 그만큼 뿌듯한 게 없었다고 한다. 먹고 남은 음식은 함박에 넣고 뚜껑을 덮어 생강굴에 보관하면서 꺼내 먹었다.

임소순(85) 어르신은 그땐 다들 마루 아래 생강굴이 하나씩은 있었다며 생강 농사를 짓던 마을 사람들이 생강굴을 지금의 냉장고 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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