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장미경의 삶의풍경

> 이달 완두콩 > 장미경의 삶의풍경

도자기도 의식주도 자급자족하는 도공2024-03-14

도자기도 의식주도 자급자족하는 도공

도자기도 의식주도 자급자족하는 도공


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 두 번째 이야기

-소양면 화심도요 임경문 도예가


만덕산 자락 옛 가마터가 있던 자리. 옛 도공들의 영혼이 깃든 곳에 화심도요가 있다. 문화재 재현을 위해 도자기를 이루는 근본적인 흙을 포함한 자연을 찾아 이곳에 온 이들이다.

화심도요 옛 가마터에는 봄을 알리는 노란 복수초가 한창이다. 봄이 왔으니 겨우내 작업실에서 도자기 흙을 만지던 임경문 도예가와 도헌선생은 밭에 나가 거친 흙을 만진다.

 

봄이 되면 거의 농사와 병행해요. 새벽 다섯시가 되면 밭에 나가요. 쌀 빼고 다 지어먹어요. 작물이 30가지가 넘어요. 밭이 600평정도 되거든요. 씨 뿌려서 모종 키워 그것들을 다 밭에 심고. 그렇게 해야 맛이 좋아요. 온갖 것들을 다 심어요. 자급자족하기 위해서. 도자기도 그렇고 의식주도 그렇고 자급자족의 방식을 하고 있죠.”

 

도자기 만드는 손은 곱게 아꼈다가 도자기만 만들어야 된다는 나의 생각도 편견이었다. 이들은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내 몸을 아끼는 것 보다 생활을 스스로 해 나가며 힘을 키우는 고수들이다. 2012년 임경문 도예가의 고향 소양면으로 돌아와 이곳에 터를 잡을 때도 이들은 직접 손으로 집을 지었다.

 

이 집을 5년 동안 선생님이랑 선생님의 형님, 저 셋이서 지었어요. 크레인 두 번 부르고 바닥공사한다고 포크레인 세 번 부르고. 나머지는 우리가 다 직접 했어요. 전기, 용접, 타일 선생님이 다 직접 하셨어요. 원래 하실 줄 아셨던 것이 아니고 공사 하는 곳에 가서 어깨 너머로 보고 배우셨어요. 눈으로 보면 금방 손으로 하실 줄 아세요. 처음은 난장같은 곳에서 지내면서 제일 먼저 잠잘 공간 만들었죠. 힘들만도 한 데 그때가 제일 재미있었어요. 서로 애쓰니까 서로 격려하고 웃고 재미있게 집을 지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까 연구하면서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싸움이나 다툼 없이 서로가 측은한 마음이 많았죠.”

 

서로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에 어쩌면 부부의 인연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임경문 도예가가 스승이던 시절에는 기술을 알려주지 않는 스승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몇몇 제자들은 그 점을 답답하게 여겨 곁을 떠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도헌선생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는 약속도 없이 불쑥 도헌의 개인작업실에 나타나곤 했는데 그럴 때마나 늘 작업 중이던 도헌을 좋게 본 모양이다. 눈 돌릴 줄 모르고 욕심 없이 꿋꿋하게 작업하는 제자의 모습이 자신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도헌은 그런 스승의 모습에서 쓸쓸함을 봤다고 한다.

 

선생님이 부안에서도 10년 정도 계셨어요. 우동도요시절이었는데, 부안 살적에는 한 달 생활비가 15000원이었대요. 계란 한판, 밀가루 한 포대. 다시 멸치. 그게 살림의 전부였죠. 수업 받으러 부안 작업실에 한번 씩 가서 보면 사계절을 온기가 없는 방에서 사세요. 수업 끝나고 나서 선생님 열악한 작업실 생각이 나서 울었어요. 해질녁 불을 켰는데도 촉이 오래되어서 밝지 않는 형광등 불빛 밑에서 작업을 하시는 선생님을 봤을 때 너무 고단하고 외로워 보였어요. 그날 돌아와서 친구랑 술을 마시며 그런 사람도 있더라 이야기 하면서 울었죠. 아마 인연이 되려고 그랬나봐요. 그 쓸쓸함이 내 마음에 다 스며드는 순간이었어요.”

 

돈이 조금만 생겨도 늘 나무를 사서 쌓아 놓던 사람이다. 집에 쌀은 떨어져도 가마에 불 뗄 나무는 떨어지면 안 되는 사람이었으니 오죽했을까.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곤 해서 완주로 이주해 온 뒤 처음 몇 해는 매일 7첩 반상에 풍족하게 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도헌선생도 도자기에 빠져들며 처음에는 가스가마를 사용했는데 불 떼고 흙 만들고 천연유약만드는 비법들은 화심도요 시작하며 임경문 도예가에게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마에 불 떼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흡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 전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끔 미디어에서 하얀 한복을 입고 가마에 장작을 넣는 점잖은 도예가의 모습들을 보곤 했는데 그것은 일종의 보여지기 위해 만든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 년에 세 번 정도 가마에 불을 뗍니다. 봄 가을철에 56일 동안. 가마의 화도가 엄청 높아요. 1300도까지 오르거든요. 그러려면 40~50초에 한번 열 시간 넘게 계속 나무를 넣어줘야 해요. 나무가 탁탁탁 타는게 아니고 장작을 넣으면 파지직 하며 사라져요.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냥 하는 거에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정말 56일 잠을 못 자고 하는 거에요. 되게 절박하게 불을 떼요. 나중에 우리 둘을 보면 콧구멍 귓구멍 안 까만 곳이 없어요. 얼굴은 숯검댕이 되어있고. 저희는 잡목은 절대 안 떼요. 참나무 소나무 빼고 잡목은 일체 안 넣고 이 만한 티끌도 못 들어가게 하는데 삼겹살 같은걸 옆에서 굽는 쇼는 못하는 거죠. 잡목은 일절 안 되고 3년 이상 건조된 참나무와 소나무를 써요. 소나무 송진에서 철분 성분이 나와서 비취빛을 만들거든요. 그래서 고려청자 구울 때는 백프로 소나무를 떼요. 흙은 바탕이고 불하고 유약이 물감의 역할을 하며 같이 동화가 되는 거죠. 가마 안에서 불과 어우러지면서 다양한 색이 나오는 거죠.”

 

흙을 만들고 도자기를 빗어서 가마에 넣고 나무를 넣는 것 까지는 사람의 몫이지만 가마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제 불에게 맡겨야 한다. 56일의 전쟁을 치루고 온기가 빠져나간 가마 안을 빨리 들여다보고 싶겠지만 임경문 도예가는 그 순간을 가장 머뭇거린다고 한다. 어떤 때는 한 달이 지나도록 가마 문을 열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그 머뭇거림을 조금은 알 것도 같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한 컷을 촬영할 때 깊이 들여다보고 소중하게 셔터를 누르고 사진관에 맡긴 후 일주일을 기다리던 그 심정과도 비슷할까. 간편하고 획일적인 많은 것들이 너무 쉽게 손에 들어오고 쉽게 버려지는 세상 속에서 임경문 도예가와 도헌 선생은 자신의 속도대로 살아가고 있다.

 

편법들을 보게 되면 더 고집스럽게 옛날 방식을 고수하는 것도 있어요. 그러다 보니 더욱더 견고해지는 거에요. 주변이 어그러져 갈수록 내가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어서. 하나가 빠지기 시작하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거든요. 본인 스스로를 계속 각성시키시는 거죠. 좁지만 순수한 길을 찾아 가는 거죠. 일생이 도자기세요. 장애나 편견 없이 본인이 빛날 수 있는 것이 도자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글·사진=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정보] 화심도요 공식 인스타그램 @hwasimdoyo

▪ 완주군 소양면 상관소양로 838-20

▪ hwasimdoyo@naver.com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만덕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공
다음글
[장미경의 삶의 풍경] 고산에 고며든 맑눈광 선생님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