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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26] 명절 차례주2024-02-20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26] 명절 차례주


명절 차례주


술로 예를 이룬다(酒以成禮)’라는 말에서 보듯 유교를 국교로 삼았던 조선에서 각종 제례, 명절 세시풍속, 손님맞이에 술은 가장 중요한 음식이었다. 집집마다 필요할 때 술을 빚어 마시는 가양주 문화가 발달하였고, 집안만의 특색있는 술이 다양하게 존재했다. 마을 단위의 소규모 양조업이 성행했으나 술에 세금을 무는 정책은 시행되지 않았었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제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제일 먼저 시행한 것은 주세법이었다. 주세와 기본 제조량을 일반 가정이나 소규모조업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높여놓아 자가양조와 소규모 주류업체가 도태되도록 통제해갔다. 1916년에 더욱 강화된 주세령이 발포되면서 집에서 빚은 술을 친척이나 이웃에게 나눠줄 수 없었고, 자가면허 제조자가 사망했을 경우 상속인이 대를 이어 주류제조를 할 수 없게 금지조항을 만들어 이를 위반할 경우 이천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였는데, 당시 공무원 월급이 40원이었으니 술을 빚는 행위가 얼마나 엄격히 통제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러는 사이 일본자본으로 설립된 대규모 양조업체가 생겨나면서 일본식 주조법으로 빚어지는 청주와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되었다. 30만 호에 달하던 소규모 자가면허제조업자가 완전히 사라지게 된 1934년에 일본식 청주 제조공장이 우리나라에 121개나 되었다니 뽕나무밭이 바다로 변했다는 말은 이를 둔 말이었다. 부의주, 석탄주, 법주, 과하주 등 별도의 이름을 지니고 있던 우리술은 탁주, 약주, 소주로 획일화되어 오늘날까지도 누룩으로 빚는 우리술은 탁주와 약주로 분류되고, 일본식 입국(찐 쌀에 순수 배양한 누룩곰팡이)과 우리술의 고유한 발효제인 누룩을 전체 쌀양의 1% 미만으로 첨가물처럼 겨우 가미하여 빚는 일본 방식의 술은 청주로 분류되었다. 종래 탁하게 거른 술을 탁주라 하고, 맑은 술을 떠 청주라 부르던 우리술의 호칭을 약재를 넣어 빚은 술이 아님에도 약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아름답고 향기롭던 우리술이 몰래 불법적으로 빚는 밀주 신세로 전락해버린 100여년 동안 우리의 명절 차례상을 차지한 술은 바로 일본식 청주였다. 정종, 경주법주, 백화수복과 같은 술이다. 명절날 아침 차례상 앞에 놓여있곤 했던 갈색 됫병들이(1.8리터) 정종(正宗)은 원래 1840년 일본 효고현의 한 양조장에서 만든 술의 상표다. 1883년에 부산에 세워진 이마니시 양조장에서 최초로 정종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서울의 미모토정종, 부산의 히시정종, 마산의 대전정종 등 지역마다 정종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되면서 일본식 청주(사케)를 부르는 이름으로 보통명사화된 것이다. 한때 퐁퐁이라는 브랜드명이 주방세제 전체를 지칭하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위생적이고 과학적이며 맑고 투명한 색과 저온 살균기술을 통한 깔끔한 맛을 내세워 일본식 청주는 고급스럽고 귀한 술로 인식되었고, 반복된 풍속은 문화로 고착되어 우리 스스로 설날 차례상에 일본식 청주를 조상님께 바치는 서글픈 풍경을 직시하게 된 것은 불과 1990년대 후반 우리술에 대한 역사인식이 시작되던 시기부터였다.

 

전통주라고 부르는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주세법 이전의 누룩으로 빚는 가양주 방식의 술인가. 주세법 이후 100여 년간 일본식 양조법을 도입해 개량된 술이나 일본식 입국을 사용해 빚어 지난 세월 우리의 희노애락을 달래주었던 값싼 막걸리는 전통이 아닌가 물으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일본식 청주를 마시지 말자거나 차례주로 쓰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우리술의 역사를 길게 돌아본 이유는 차례주를 고르는 기준을 알고서 기호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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