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앗이 칼럼

  • 이달 완두콩
  • 품앗이 칼럼
  • 지난 완두콩

품앗이 칼럼

> 시골매거진 > 품앗이 칼럼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25] 소망을 담아 올해도 축배를!2024-02-02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25] 소망을 담아 올해도 축배를!



소망을 담아 올해도 축배를!


2023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LG 트윈스가 KT 위즈를 4-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1994년 우승 이후 29년 만의 통합우승이었다. 전체 열 팀 중 상위 다섯 팀이 우승을 두고 진검승부를 벌이는 가을 포스트시즌에 LG 트윈스가 오를 때마다 술렁술렁 세간에 회자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아와모리 소주다. 과연 올해에는 딸 수 있을까.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엘지 구본무 회장이 1994년 일본 오키나와 전지훈련캠프를 방문했다가 선수들과 오키나와의 지역주인 아와모리 소주를 마시고, 우승하면 아와모리 소주로 다시 축배를 들자고 했다 한다. 그해 LG는 거짓말처럼 우승했고, 구 회장은 내년에도 우승하면 이 소주로 축배를 들자며 아와모리 소주 세 단지를 사다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려 29년 만에 소주의 봉인이 풀린 것이다. 29년이라는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 동안 LG 팬들은 소주가 다 날아가 빈 통이더라, 식초가 되었더라는 등의 소문부터 포스트시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우승이 좌절될 때마다 소주의 저주 때문이라는 등 엘지의 실패는 애꿎은 소주로 향해지곤 했다. 엘지가 우승하고 미디어의 모든 관심은 아와모리 소주와 구본무 회장이 최고수훈선수에게 주라 했다던 당시 시가 8천만원 짜리 로렉스 시계에 쏠렸다. 엘지의 팬은 아니지만, 소주 단지를 개봉해 축배를 드는 선수들의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나는 감회가 벅찼다. 한 대기업 회장의 호쾌한 이벤트가 만들어낸 아와모리 소주의 드라마틱한 운명의 순간을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니. 세상의 수많은 술 중 하나일 뿐인 아와모리 소주가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그것도 생뚱맞은 프로야구장에서 이렇게 멋진 스토리텔링으로 태어나고 완성되는가를 지켜보면서 만든 이의 손에서 떠나 스스로 살아 움직인 술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29년의 염원이 농축된 술맛은 어땠을까. 실제 엄격하지 않았을 긴 보관 과정에서 술맛이 어떻게 변했을지는 알 수 없으나 축배의 술은 달콤했을 것이고, 술은 소망을 담아내기 좋은 도구임을 여실히 보여준 장면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집안의 애경사가 급히 닥치거나 빚어둔 술이 갑자기 변질되거나 떨어진 상황이 생기면 저장시설이 없어서 빨리 빚어 마셔야 하는 술을 빚기도 했다. ‘계명주(鷄鳴酒)’는 술을 빚은 다음 날 새벽닭이 울면 마시는 술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에도 일일주’, ‘일야주’, ‘삼일주’, ‘급주등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시급히 빚어 마셔야 했던 술인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은 청주, 탁주와 같은 발효주도 와인처럼 오랜 숙성을 거친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소주와 같은 증류주는 오래 숙성될수록 맛이 부드러워지기 때문에 긴 숙성과정을 거친다. 문배주, 이강주, 송화백일주, 계룡백일주 등 장기숙성을 강조하는 술의 명성만 들어도 시간의 가치가 술에 얼마나 녹아있는지 알 수 있다. 좋은 술을 얻으려는 양조업자의 기다림의 시간에는 자신의 술이 마시는 이의 행복한 순간과 함께해주길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다. 새해를 앞두고 크고 작은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술을 빚었다. 간절한 만큼 더욱 정한 마음가짐으로 말이다. 올해도 기쁨이 찾아드는 모든 순간에 축배를 들리라. 그러니 반갑게 오라, 2024년이여!

 

<술과 함께 열두 달>이 어느덧 3년째 이어진다. 우리술을 빚는 재료와 방법, 역사와 문화, 술빚는 일의 즐거움, 우리 술이 지닌 맛과 멋을 전해 드리려 갖은 애를 쓰느라 서둘러 늙어버렸다. 올해도 우리술에 관한 열두 가지의 이야기를 찾아 고통스럽지만 행복하게 늙어가겠다. 서툰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과 완두콩에 항상 감사드린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게시글을 구글로 북마크 하기 게시글을 네이버로 북마크 하기
이전글
[농촌별곡] 여럿이 모이면 농사도 놀이
다음글
[매일설레] 55. 분리주의
코멘트 작성 ※ 최대 입력 글자 수 한글 120자 (255 by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