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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9] 백번 씻어 향기로운 술을 얻다2023-07-25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9] 백번 씻어 향기로운 술을 얻다

백번 씻어 향기로운 술을 얻다


좋은 쌀과 누룩, 물이 준비되었다면 술 빚기는 쌀을 씻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술을 빚기 위한 쌀 씻기를 백세(百洗, 백번 씻는다)라고 한다. 밥 지을 때의 쌀 씻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밥 지을 쌀은 양분이 빠져나가지 않게 설렁설렁 씻는다. 술을 빚을 쌀에는 쌀의 고른 영양성분보다는 효모라는 미생물이 먹이로 삼게 되는 전분이 주로 필요하다. 칼슘, 단백질, 지방, 무기질, 비타민 등 다양한 영양성분은 주로 쌀알의 겉면에 분포되어 있고, 전체 영양성분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탄수화물, 즉 전분은 쌀알의 내부에 있다


일본은 양조용 쌀의 도정률에 따라 술 등급이 나뉠 정도로 도정과정에서 술에 불필요한 양분을 제거한다. ‘쥰마이 다이긴죠(純米大吟釀)’로 불리는 일본주의 최고 등급은 쌀의 50~60%를 깎아낸 좁쌀만 한 크기의 쌀로 술을 빚기 때문에 한 병의 술을 얻기 위해 엄청난 양의 쌀이 손실된다. 우리의 가양주 빚기에서는 그러한 도정과정을 대체하기 위해 쌀 씻기(백세)에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


쌀을 물에 담그면 금세 수분을 빨아들이는데 백세 시간이 오래 걸리면 물에 불은 쌀이 깨지기 쉽다. 깨진 쌀이 많으면 온전한 쌀알보다 발효가 먼저 일어나 균일한 발효에 방해요인이 되어 술맛이 조화롭지 않고 맑지 않다. 성급히 발효가 되다 보니 신맛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쌀이 불기 전에 마무리하려고 서두르다 쌀을 맑게 씻지 않으면 쌀에 있는 지방이나 단백질 성분이 많이 남게 되어 완성된 술 표면에 옅은 기름띠가 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소량의 지방과 단백질은 분해과정에서 술의 방향(芳香, 아름다운 향기)을 만드는 성분이지만, 많이 남아 있으면 꿈꿈한 냄새를 일으킨다. 조금은 남아 있어야 하되 많이 있지 않아야 한다. 백세를 대충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술을 빚는다는 것은 긴 과정 내내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도의 어느 지점을 찾아내는 일의 연속이라는 박록담 선생님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에게서 배운 백세 방법은 이렇다. 손바닥을 펴서 빠른 속도로 원을 돌리며 회오리 물살을 만들어 휘젓는다. 탁한 쌀뜨물을 네다섯 번 빼내고 나서는 반죽기를 돌리듯 말이 백세이지 오백세는 되게 손바닥을 휘젓는다. 손바닥 힘은 부드럽게, 휘젓는 속도는 빠르게 하여 물살의 힘으로 쌀과 쌀을 마찰시켜 쌀뜨물이 빠져나오게 해 많은 양의 쌀을 최대한 빨리 깨끗하게 씻는 원리이다. 겨울이라도 미지근한 물을 쓰지 않는다. 쌀이 쉽게 깨지기 때문이다. 휘젓기를 끝내면 되도록 쌀에 손을 대지 않고 물길로만 쌀뜨물과 쌀눈, 잘게 깨져 떠오르는 싸라기를 흘려보낸다. 불순물을 흘려보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 맑은 물이 흘러나올 때 백세가 마무리된다


백세라는 말은 백번 쌀을 씻는다는 의미(百洗)와 그만큼 맑게 씻는다(白洗)는 의미로도 이해하면 좋겠다. 백세는 술빚기의 중요한 기본이지만, 사소하다 여겨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술 빚는 요령이 익숙해지면 어느새 백세를 더러 대충하게 되는 것이다. 제자들이 빚어온 술을 맛보고 박록담 선생님은 자주 백세의 오류를 지적하였는데, 맑고 아름다운 향의 술을 얻기 위한 가장 기본을 지키지 않는 술 빚는 이의 성급한 자세를 탓하곤 하셨다. ‘맑고, 향기롭고, 맛있는 술을 빚는 비결이라면 좋은 재료를 고르고, 각각의 재료를 적절하게 다루는 데에 있다. 비결이란 결코 거창한 곳에 숨겨져 있지 않다. 작은 일에도 한결같이 정성껏 행함에 있음을 쌀을 씻을 때마다 생각한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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