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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8] 나의 애주(愛酒), 애주(艾酒)2023-07-25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 두 달 18] 나의 애주(愛酒), 애주(艾酒)

나의 애주(愛酒), 애주(艾酒)


쑥은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한자 (쑥 애)로 표기한다. (; )(; 베다, 다스리다, 어질다)가 합쳐 이뤄진 한자이다. ‘베어내는 풀’, ‘질병을 다스리는 풀’, 사람을 이롭게 하는 어진 풀’, 어떤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한 쑥에 대한 설명이 글자 속에 들어있다. 한 번 뿌리 내린 자리에서는 매해 쑥이 번성한다


쑥의 미덕은 누가 애써 키우지 않아도 어디든 자라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점에 있다. 들길, 산길, 바닷가 언덕배기, 도심 하천 변에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쑥이 자란다. 한국의 거의 모든 길은 봄에 유행을 타듯 쑥으로 옷을 입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 추위가 가시지 않은 3월에 마른 검불 속에 빼꼼히 나오는 그 해 첫 초록이 쑥이다.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지닌 풀로 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바구니와 칼을 들고 나서게 하는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쑥은 다른 어떤 식물도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향을 지녀 한 움큼 코에 대면 머릿속이 이내 맑아지고 겨우내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진다. 우리 민족의 기원이 담긴 단군신화에도 쑥이 등장한다.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은 곰이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아 한민족을 오늘날까지 번성케 하였으니, 쓰디쓴 쑥을 먹을 줄 아는 우리 민족의 쑥 사용법은 다양하기도 하다.


막 나온 어린 쑥은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거나 쑥 튀김을 해 먹기 좋다. 4월 중순이면 쑥은 10~20cm 정도 쑥쑥 자라는데 여전히 연하고 향은 더욱 진해진다. 이때부터는 쑥을 캔다기 보다는 뜯는다는 말이 적절하다. 손으로 툭툭 뜯어 쑥버무리, 개떡, 쑥 인절미 등을 해 먹는다. 4월 말쯤의 쑥은 향이 더욱 진해지고 줄기에 제법 살이 오르는데 이때 뜯은 쑥으로 쑥차를 하거나 술을 빚는다. 5월이 넘어 더워지기 시작하면 잎에 벌레들이 찾아와 알을 실어놓으니 떡이나 차, 술을 할 요량이면 그 이전에 채취해야 한다. 7~9월 사이에 쑥은 아이 키만큼 자라고 꽃이 피는데 쑥대는 단단해져 낫으로 베어야 한다. 쑥대는 잘 말려 누룩을 띄울 때 초재로 쓰거나 여름밤 시골집 마당에 모깃불로 때기도 한다.


쑥을 넣어 빚는 애주라는 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속으로 약간 비웃었더랬다. 적어도 매화, 국화, 진달래, 연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를 담고 싶은 꽃 정도는 되어야지 그 흔한 풀인 쑥이라니 말이다. 쑥의 쓴맛과 독특한 향이 술과 어울릴 수 있을까도 의아했었다. 대전에 사는 강미선 씨는 십여 년 전에 함께 술빚기를 배웠던 동기인데 그녀는 술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매우 열정적으로 술을 빚었었다. 어느 날 그녀가 내민 애주를 처음 맛보고 나의 편견은 깨지고 말았다. 맑은 청주는 매혹적인 푸르스름한 초록빛을 띠고 있었고, 술의 단맛 속에 쌉싸름한 쑥의 맛과 향이 조화되어 매우 기품있는 맛을 품고 있었다. 꽃으로 빚은 여러 가향주(加香酒)를 맛보았지만, 쑥은 화려한 향과 색을 지닌 어떤 꽃들에도 손색없는 존재감으로 술에 녹아들어 있었다. 강미선 씨의 애주는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주최한 ‘2010년 국선생 선발대회막걸리 부문에서 심사위원 최고점을 받았다. 개인 사정으로 시상식 당일에 참석하지 못해 대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그해 그녀가 빚었던 애주는 내게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술로 남아 있다.


올해도 애주를 빚었다. 펄펄 끓는 시퍼런 쑥물로 쌀가루를 익혀 차게 식힌 후 누룩을 넣어 밑술을 빚는다. 밑술을 빚은 지 3일째 찹쌀을 맑게 씻어 물에 불렸다가 고두밥을 찌는데, 뜸 들일 때 고두밥 위에 쑥을 얹는다. 차게 식힌 고두밥을 빚어 놓았던 밑술과 함께 섞어 따뜻한 온도에서 3~4일간 발효시켰다가 술독을 차게 식혀 50~60일 정도 숙성시킬 예정이다. 초여름 무더위를 지날 일이 걱정이지만, 산길에서 쑥을 보았을 때처럼 올해의 애주를 만나볼 생각에 또 마음이 콩닥거린다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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