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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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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고마울 따름

 

눈을 들어 산허리를 둘러보면 듬성듬성 콩고물을 뿌려놓은 듯 뭉게구름이 떠 있다. 밤꽃이다. 숱한 시인들이 밤꽃 피는 6을 노래했지. 결코 예쁜 꽃은 아니나 저마다 사연을 담은 노래.

하지만 벼농사를 짓는 이 고장 농부들에게 6월초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기만 하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모내기 철인 까닭이다. 사실 이 글 쓸 시간을 챙긴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모를 내는 일 자체도 큰일이긴 하다. 온 마을이 모내기 두레를 짜 새벽부터 저물녘까지 매달리던 시절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앙기를 쓰는 요즘도 우리 고산권벼농사두레의 경우 꼬박 네댓새가 걸린다. 물론 이앙기를 모는 일이 녹록지는 않지만 힘을 쓰는 건 결국 기계이니 고단함으로 치자면 준비작업이 훨씬 더하다.

먼저 예초기를 돌려 논둑 풀을 치는 일. 논갈이와 로터리-써레질을 제대로 하자면 꼭 필요한 작업이다. 휘발유 엔진의 회전력과 진동을 견뎌내며 작업봉을 내젓는 일이 쉬울 리 없다. 숙달된 농부라도 기껏해야 하루 네댓 시간, 열 마지기를 넘기기 힘들다.


그 와중에 논물을 잡아야 한다. 관개시설이 잘 구축된 논이야 어려울 게 없지만 경지정리가 안 된 곳은 보통 일이 아니다. 풀뿌리가 얽히고 토사로 쌓인 도랑을 치워 물길을 내줘야 하고 물꼬를 만들어야 한다. 가물기라도 하면 물을 찾아 저수지와 농수로를 헤매야 한다. “물 모자란다는 로터리 작업자의 지청구를 피해갈 수 없었다.


논둑치랴, 도랑치랴, 물 잡으랴... 이리 닫고, 저리 닫는 와중에 생각지도 못한 사고까지 터져 그야말로 멘붕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우리 벼두레 회원이 짓는 논 가운데 양수기로 물을 대는 곳이 있는데, 배전반을 함께 쓰는 마늘 농가의 양수기가 가동되는 바람에 수확기에 이른 마늘밭이 온통 젖어버린 것이다. 이리되면 기계로 수확을 할 수 없고, 그 상태도 놔두면 마늘이 썩어들어가는 상황. ‘당사자를 특정할 수 없는 사안인데 책임문제를 따지자면 끝이 없을 테고, 그 사이 마늘이 상하기라도 하면 피해 농가는 더 큰 손실을 입고, 마늘값 변상문제로 일이 커질 게 불을 보듯 뻔한 일. 고심 끝에 결국 마늘부터 구하기로 하고 벼두레 회원들에게 마늘 캐기 일손돕기를 호소했다. 이 바쁜 와중에, 그리고 불볕더위 아래 열 댓이 모여들었다. 사람 손이 무섭다고, 일꾼 여섯이 하루 걸려야 한다는 일을 세 시간 만에 해치웠다. 그저 꿈만 같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래저래 체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모판 나르기 두레작업이 펼쳐졌다. 모내기 공정 가운데 가장 고된 작업이다. 일반 농가의 경우 논배미마다 작은 규모로 못자리를 만들거나 농협 등의 육묘장에서 사 쓰는 게 보통인데, 우리 벼두레 경작자들의 경우 작은 한 두 배미를 짓고 멀리 흩어져 있어 못자리를 한 곳에 집중해 만든 뒤 트럭에 실어 나르는 방식을 쓰고 있다.


아쉽게도 올해는 모판 나르기 참여 인원이 지난해보다 줄어 걱정이 컸다. 그런데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쓱 나타나 문제를 풀고 바람처럼 사라지곤 하던 맹수 씨가 해결사로 나섰다. 전기업을 하면서 고산 멕가이버로 통하는 맹수 씨는 이날 고공 전기공사에 쓰는 사다리차(일명 스카이’)를 몰고 나타났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모판을 나르는 대신 사다리차로 슈웅 날라 트럭 짐칸에 실을 수 있게 한 것.

그게 바로 어제 일이다. 오늘부터는 모내기가 시작된다. 파김치가 되어 쓰러졌다가 새벽잠 설치고 쓴 이글, 제대로 손도 못 본 채 논배미로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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