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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 아래, 구이 상학마을] 최월임 할머니2023-05-16

[모악산 아래, 구이 상학마을] 최월임 할머니

"고생은 실컷 했어도 애들 키울 때가 좋았어"


마을을 찾은 첫째 날 오후, 길목에서 붉은색의 4륜 전동차를 탄 어르신이 회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올해 여든 셋의 나이로 큰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최월임(83) 어르신은 항상 미소를 띠고 있는 선한 인상이다. 그의 얼굴에는 지난 세월을 그려내듯 선한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어르신의 눈가에도, 입꼬리에도 자주 짓는 미소를 따라 곱게 주름져있다.

 

늘 밝게 웃는 월임 어르신의 인생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그 시절 누구나 그러했듯 그의 인생에도 굴곡이 있었다. 서른넷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자식들을 시어머니와 함께 키웠다. 집안일은 시어머니가 도와줬지만 돈벌이는 온전히 월임 어르신의 몫이었다.


시방 우리 막둥이가 돌이었을 때 돌아가셨으니까 올해로 딱 50년 전 일이야. 초상집에 갔다가 식중독에 걸려서 그만 돌아가셨어. 그래도 시어머니가 우리 애들 돌봐주느라 욕 봤지.”


그는 아들 둘, 딸 둘의 사남매를 키우기 위해서 그야말로 안 해본 일이 없다. 젊을 때는 전주 중앙시장에 나가서 건설 현장에서도 일했다. 시멘트를 등에 지고 5층을 오르내리고 타일 붙이는 데 보조를 서기도 했다. 산에서 고사리나 나물들 캐다가 팔고 병아리 장사도 했었다.


애들 갈칠라고 한 거지. 버스타고 1시간이면 중앙시장에 도착해. 일손 필요한 곳 가서 뒷모도(현장에서 잡일을 도맡는 일)하면서 시멘트 떠주고 구르프(헤어롤) 찍는 데 가서 구르프도 만들고. 로컬푸드 생기기 전까진 모악산 앞에서 노점해서 채소들도 팔았지.”


자식들은 중학교까지는 구이면에서 다니고 고등학교부터는 전주로 나갔다. 매일 4인분의 도시락을 만들고 수학여행도 한꺼번에 보내느라 목돈 마련하기도 쉽지 않았다. 하루하루 버텨냈던 그 시절. 그럼에도 월임 어르신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그때로 꼽는다.


편안하긴 지금이 편하지만 난 애들 키울 때가 제일 재밌었어. 일과 끝내놓고 방에다 애들 뉘어놓고 새근새근 자는 모습 보면 얼마나 귀여웠는지 몰라. 난 그때가 행복했어. 고생은 실컷 했어도 애들이 착해가지고 잘 되는 모습 보고 사는 게 진짜 행복이지.”


현재 월임 어르신 곁에는 큰아들이 있다. 어르신은 아들과 함께 700평 규모의 밭에서 난 채소들을 로컬푸드 직매장에 판매 중이다. 일머리가 좋아 수익을 잘 높이는 아들을 든든해하며 어르신은 아들 자랑도 슬쩍 내비췄다.


컴퓨터에다 심는 거, 수확하는 거 다 적어놓고 때에 맞춰서 해. 어느 때 무슨 비료를 주고 약을 주는지도 척척 다 알아서 동네 사람들도 우리 아들한테 물어봐. 머리가 영리해가지고 농사를 잘 해. 농사박사야 박사(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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