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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동 상장기공원의 일상] 길고양이 집사 조상희 할머니2022-12-27

[봉동 상장기공원의 일상] 길고양이 집사 조상희 할머니

낼 모레 구십, 행복한 냥집사


니야옹~

만경강 둑방길 바로 아래에 위치한 조상희(87) 어르신의 집이 눈에 띈 것은 다름아닌 집 앞을 지키고 있던 고양이 때문이었다. 햇살을 찾아 나른하게 누워있던 이 고양이 세 마리는 3일 전 상희 어르신 집을 찾아왔다.


며칠 전에 보니까 애미가 새끼를 떼놓고 갔어. 불쌍하잖아. 죽일 순 없으니 밥을 챙겨줬어. 근데 사료를 줘도 먹질 않고 생선을 구워서 줬는데도 안 먹대. 그래서 우리 아덜이 오늘 간식을 사왔어. 한번 먹여볼라고. 짐승이라고 죽일 수는 없잖아. 이것들도 생명인데.”

처음 본 객도 춥겠다며 냉큼 집으로 들이는 상희 어르신은 예전에 키운 고양이 미니가 집을 나가고 헛헛했던 그 마음을 끄집어낸다.


“‘미니라고 괭이 새끼를 얻어다가 8년을 키웠는데 언젠가부터 안 들어와. 죽었나봐. 이 동네 저 동네 우리 아덜이랑 손주랑 찾으러 다녔는데 결국 못 찾았어. 묻어주려고 찾으러 다녔는데 그것도 못 찾았어. 그게 마음에 걸려. 지금 집에 있는 노란괭이 새끼보고 우리 손주가 미니라고 부르더라고. 옛날 그 괭이랑 이름이 똑같아.”


고향이 서울인 상희 어르신은 구이가 고향인 남편과 함께 58년 전 이 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서울에서 방직공장을 다니며 멋진 커리어우먼의 삶을 살던 여성이었다.

열일곱 정도에 일을 시작해서 스물여섯까지 일했어. 웬만한 남자보다도 돈을 더 벌었어. 직장 다니는 재미로 시집갈 생각도 없었지. 근데 친정 고모가 우리 아저씨를 중매 선거야. 우리 아저씨 인물이 반지르르해서 고모가 놓치기 아깝다고 중매를 섰어.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갔어. 그땐 다들 스무살이면 시집갔는데 난 스물일곱에 갔어. 골드미스라고 했지.”


스물아홉에 첫 아기를 낳고, 정신없이 일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나가던 버릇이 인이 박혀 지금도 새벽 4시면 눈이 떠진다.

새벽 두세시면 일어나서 애들 먹을 밥해놓고 빨래 해놓고 일하러 갔어. 그땐 세탁기가 있간. 빨래터에서 빨래해놓고 간거지. 그러다 일하면 어둑해져서 집에 와. 남 논밭에 나가 일하고 온 거지.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 그땐.”

고생만 하다보니 세월이 흘렀다. 이십여 년 전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지금은 큰아들과 손주와 함께 산다. 적적하지 않아 좋고, 착한 자식들 덕에 웃으며 산다.


옛날엔 행복했던 적이 없었던 거 같어. 자식들 가르치느라 일 진짜 많이 했어. 첫 애기 낳고도 누가 나 밥 해줄 사람이 없어서 애기 낳은지 4시간 만에 부엌으로 나갔어. 나 먹을 밥 하려고. 근데 큰딸이 12살이 되니까 엄마 내가 밥 할게라고 하더라고. 큰애가 지 동생들을 키웠어. 없는 살림에 자식들 고등학교 졸업도 간신히 했는데 그때 생각하면 속이 아파. 그래도 지금은 다 잘 살아. 손자도 공부를 잘하거든. 내가 복 받은거지.”

상희 어르신이 사는 집은 그가 58년 전 마을에 정착했던 집 모습 그대로이다. 오래된 옛날 집. 낡고 좁은 집이지만 이곳엔 어르신이 살아온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지은 건 아니고 만들어진 집에 들어온거야. 그때도 만든지 솔찬히 됐으니까 지금쯤 100년은 넘지 않았을까? 봐바, 집이 다 허물어지잖아. 아들들이 주공아파트로 가자고 해도 내가 싫어. 이 동네를 떠나기가 싫더라고. 한평생 살았으니 서운하지. 동네 사람들도 나 가지 말라고 잡아. 이 마을이 인심이 좋은 곳이야.”


점심식사로 아들이 사온 김밥을 먹었다는 상희 어르신과 따뜻한 이불 아래서 이야기를 나눈다. 큰 소리로 틀어놓은 텔레비전은 쉴 틈이 없다.

우리 집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놀러와. 이 동네에 늙은이들은 대여섯명밖에 안돼. 죽는 건 장담 못하잖아, 언제갈지 모르니까. 나도 낼 모레 구십이야. 나이를 먹으니 아픈건 어쩔 수 없더라고. 우리 자식들은 건강해야지. 그게 내 소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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