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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1] 술지게미와 모주(母酒)2022-11-29

[유송이의 술과 함께 열두 달 11] 술지게미와 모주(母酒)

 술지게미와 모주(母酒)


을 짜내고 나면 홀쭉해진 밥알과 누룩 속 밀이 뭉쳐져 한 덩어리의 술지게미가 남는다. 밥알 뭉치에 누런 밀기울이 잡곡처럼 박혀 있는 모양새인데, 아무리 술을 야무지게 짜냈다 해도 술지게미에는 약간의 술과 전분, 발효 미생물과 영양성분이 남아있다. 입에 넣고 씹으면 술맛 나는 밥을 먹는 느낌이다. 술지게미는 술을 빚고 남은 마지막 형태의 부산물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역사를 지나온 부모님 세대에서는 술지게미에 대한 추억들이 많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지게미를 얻어다 끼니를 때웠다거나 술지게미를 먹다 술꾼이 되어버렸다는 어르신들의 회상 속에서 술지게미는 어린아이가 견뎌야 했던 배고픔과 힘겹게 살아냈던 지난 세월을 선명하게 소환시키곤 했다. 풍요가 절정에 달한 작금의 세상에서도 술지게미는 여러 쓰임새가 있는 식재료이다. 그중 대표적인 음식이 전주 콩나물국밥에 곁들여 마시는 해장술로 유명한 모주(母酒).

어머니의 술’, 모주의 유래는 조선 선조의 계비였던 인목대비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해군에 의해 인목대비는 서궁으로 쫓겨나고, 제주도로 귀향 보내진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 부인은 섬사람들에게 술지게미를 얻어다 물에 타서 재탕한 막걸리를 팔아 궁핍한 생계를 이어갔다고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대비의 어머니가 빚은 술이라 하여 대비(大妃)모주라 부르다 지금까지도 막걸리를 모주로 부른다고 한다. 당시의 모주가 술지게미에 물을 타서 부박한 막걸리로 재탕한 술을 의미했다면 근대의 모주는 술지게미를 뜨끈하게 끓여낸 술, 현대에 이르러서는 완성된 막걸리에 여러 약재를 넣고 끓이다가 흑설탕으로 가미한 알콜도수가 매우 낮은 음료로 변화되었다.

 

이것은 술 찌꺼기를 걸러 마시는 것이며, 술 중의 천품이며 빈곤한 자와 노동자의 반 양식으로 없어서는 안될것이다. 첫 새벽과 해질무렵에 이러한 사람들의 일등가는 큰 요리라 할 수 있다. 무청김치에 비지전골이 상등이고 고춧가루 섞은 소금은 혓바닥에 칠하는 안주인 것이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중>



 

1924년에 제작된 최초 컬러판 요리책인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기록된 모주에 대한 기록은 궁핍했던 당시 서민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술맛이 가장 떨어지는 술지게미를 거른 술이지만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끼니를 대신하는 양식이었고, 새벽 속풀이나 해질무렵의 한잔 술로 무청김치나 비지전골 안주나 있으면 다행이고 그도 아니면 고춧가루 섞은 소금을 안주 삼아 배고픔과 피로를 달랬던 장똘뱅이, 지게꾼, 날품팔이들에게 모주는 큰 위안이 되었던 음식이었다. 술을 빚고 남은 찌꺼기인 술지게미에서 탄생한 모주는 이렇듯 수백 년의 역사를 관통해 오면서도 서민의 삶과 함께해온 고마운 음식이다.

모주를 끓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계피, 생강, 대추를 넣어 끓여 우려낸 물에 술지게미를 넣고 끓이다가 흑설탕으로 단맛을 가미한다. 오래 끓이기 때문에 알콜은 대부분 증발하고 칼칼하고 알싸한 생강과 향긋한 계피향이 어우러져 남녀노소가 즐길만한 음료가 된다. 술지게미가 없다면 시중 막걸리를 같은 방식으로 끓이면 된다. 겨울엔 뜨겁게, 여름엔 차갑게 마시면 모주의 맛을 훨씬 더 즐길 수 있으며, 힘든 노동 후에 한잔 들이키면 최고의 피로회복제라 할만하다. 게다가 여기는 생강의 고장, 완주가 아니던가. 진한 향을 품은 토종생강 수확이 한창인 요즘, 우리 고장에서 키워낸 생강으로 모주를 뜨끈하게 끓여 늦가을의 으슬으슬한 추위를 견뎌봐야겠다.


/ 유송이는 전통주를 빚고 즐기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양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수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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