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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면 복지매장 최기연 이야기2022-10-24

고산면 복지매장 최기연 이야기

고마웠어요, 오래된 가게의 작별인사


고산면 소재지는 화산, 비봉, 운주, 경천, 동상 등 완주군 북동지역 6개 면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규모는 작지만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어지간한 가게들은 다 있다. 방앗간이나 철물점처럼 오래된 가게들도 많고 문을 연지 몇 해 안된 청년들의 작은 책방이나 카페도 제법 많다. 꽤 오랫동안 옥환상회가 자리했고 몇 년 동안은 은혜슈퍼로 불리다가 지난 25년 동안은 복지매장이라는 간판을 달고 장사를 했던 고산의 오래된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한다. 문을 닫기 전 감사세일을 열고 있는 고산복지매장에서 최기연(52) 사장님을 만났다.

 

“112일이 우리가 가게를 운영한지 딱 20년이 되는 날이에요. 아기 아빠가 이 가게에 물건 납품하면서 가게 주인과 친해지게 되면서 인수하게 된 거죠. 복지매장이라는 이름은 바로 전 주인이 지었던 이름이에요. 이 가게를 거쳐 간 주인이 많아요. 이 가게 터에서 가장 오래한 가게는 옥환상회에요. 옥환상회 전에도 가게를 했다고는 하는데 그건 하도 오래 전 이야기라서 기억하시는 분이 없고 제일 이름이 알려진 게 옥환상회죠. 그 가게가 30년 정도 운영을 했고 그 다음이 은혜슈퍼가 7년 했다고 하고 그 다음 복지매장으로 이름을 바꿔서 5년 하다가 우리가 인수해서 20년 동안 지키고 있었던 거죠.”

 

개미터 가게의 계보

어르신들은 이 가게의 터를 개미터라고 부르셨다고 한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돈을 많이 버는 곳이라는 뜻이다. 개미터라는 이름대로 이 곳에서 가게를 하신 분들은 다들 일도 많이 하고 돈도 제법 벌었다고 한다. 특히 30년 넘게 운영되던 옥환상회에 대한 이야기는 재미있는 일화들이 많았다.

이 자리는 예전부터 가게 자리였던 거 같아요. 어른들은 개미터라고 부르더라고요. 부지런히 움직여야 돈을 많이 버는 터래요. 옥환상회가 장사가 잘 되서 그 주인이 이 자리에 75년쯤에 새로 지금 건물을 지었다고 해요. 그 분은 전설이에요. 그 당시는 은행이 없었으니까 돈을 마대자루에 보관해놓고 아무데나 던져놨데요. 동전만 머리맡에 두고 주무시곤 했는데 도둑이 들어서 그 동전만 훔쳐갔데요. 지폐가 마대자루에 담겨져서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나봐요. 그리고 또 유명한 전설이 5톤 차에 가득 실려 있는 콜라를 이틀에 한번 꼴로 팔았데요. 옥환상회가 어느 정도였나 하면 직원을 여러 명 두고 6개면에 자전거로 물건을 배달하러 다녔다고 그래요. 작은 구멍가게에 물건 납품을 한 거죠. 여긴 엄청 큰 도매집이었던 거에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메이커를 통해서 들었어요. 50년 넘게 일하신 메이커들이 우리 집에 납품하면서 알려 준 이야기들이에요.”



 


최기연 사장이 가게를 찾아 온 오랜 단골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랜 단골들은 20년 동안 보고 지낸, 서로의 이름만 모를 뿐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이기도 하다.


메이커가 뭐냐고 물었더니 롯데제과, 해태제과 같은 회사들의 대리점에서 가게에 물건을 납품하는 영업사원들을 일컫는 용어라고 했다. 사장님의 남편도 가게를 인수할 당시 그 메이커들(생활잡화) 중 하나였고 남편을 마음에 들어 한 전 주인의 제안으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원래 잘 되는 가게 자리는 친척들한테도 잘 안주거든요. 전에 있었던 분들도 5~7년 씩 짧게 하고 넘긴 이유는 장사가 잘 되던 때라 잠깐 해도 많이 벌었었데요, 우리도 5년만 하려고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죠. 새벽 6시에 문을 열고 밤 12시에 문을 닫던 시절이었어요. 처음 장사할 때 제가 가게에 하루 종일 있어야 하니까 어머님이 아이들 케어해주시며 살림 도맡아 해주셨고, 아버님은 물건 진열하는 것을 도와주셨어요. 가게 뒤에 백년도 넘은 오래된 흙집이 있어요. 방 하나에 어머니, 아버지, 딸 둘. 한 쪽방에서 우리 부부가 살면서 장사했어요. 그 뒤로 고산 읍내에 방 구해서 이사 다니면서 살았고, 지금은 고산 성당 올라가는 길에 여관건물을 경매로 받아서 거기서 살아요. 그래도 15년간은 장사가 엄청 잘됐어요. 예전만 못해서 장사를 그만두려는 건 사실 큰 이유가 아니에요.”



 

20년 동안 감사했어요 수고했어요

20년 전에 비해 지금은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10년 전만 해도 그렇게 잘되던 대형 유통매장도 지금은 쉽지 않다고 한다. 온라인 쇼핑과 프랜차이즈 편의점들이 오래된 가게들을 조금씩 대신해가고 있는 지금 시대에 소재지 한복판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서른둘에 시작해 20년 동안 청춘을 바친 이 곳을 정리하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매출이 떨어져서 그만 두는 것 보다는 뭐랄까 재미가 없어졌어요. 마음이 떠난 것도 있고 오래 하기도 했죠. 그래도 많이 고마워요. 여기서 아이들 다 키웠으니까요. 열심히 살았으니 후회나 미련도 없어요. 그만 두는 것이 신나요. 저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서 몇 년 전부터 장사 접자고 했는데 신랑과 합의를 본 게 6개월 전이었어요. 신랑은 그래도 20년을 채우고 가게를 정리하고 싶었나 봐요. 6개월이 인생에서 참 긴 세월이었던 거 같아요. 젊었을 때는 세월의 속도가 빨리 간다고 하는데 저한테는 6개월이 참 길게 느껴지더라고요. 마음으로는 단골손님들에게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어요. 사실 장사 접기로 마음먹었으면 이 물건들 반품처리하고 바로 닫아도 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열어놓고 작별인사도 드리고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감사세일 통해서 물건 싸게 드리고 싶고 그래요.”

 

계산대에서 마주보고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오래된 단골손님들이 드나든다. 20년 동안 보고 지낸 사이지만 서로의 이름은 모른다. 이름만 모를 뿐이지 많은 것을 귀담아 듣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관계다. 경천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게에 들른 손님은 계산이 끝났는데도 한참 가게를 서성인다. 노인이 되어가는 손님과 젊은 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사장이 나누는 대화가 한 편의 시 같다.

 

참 서글프네, 문 닫는다니. 자네도 여기서 청춘을 다 보냈네.”

그러게요. 벌써 청춘이 가버렸어요.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요.”

 

새롭게 문을 여는 가게들은 그간 많이 소개되어 왔지만 이렇게 멋진 퇴장을 준비한 최기연 사장의 20년 정리세일을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동네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세월이다. 올해 말까지 문이 열려있으니 더 늦기 전에 수시로 드나드시길. 오랜 세월 우리 곁에 있어준 가게에게 갈채를 보내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최기연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시길!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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