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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궁금한 日月星의 내력2022-03-17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궁금한 日月星의 내력

주방에서 선 정인철 사장. 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 사장님은 주방 들어갈 때는 꼭 흰 와이셔츠를 입는다. 저녁에 깨끗이 씻고 아침에는 꼭 머리를 감는 것도 쭉 지켜 온 철칙이다.



고산면 정인철. 고명순 부부이야기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고산우체국 골목에 있는 중화요리집 일월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가야 했던 아끼고 아끼던 취재원이었다.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선 日月星이라는 한자로 써진 가게 이름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잡채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림표에 새겨진 글씨가 손글씨인지 컴퓨터 글씨인지도 궁금했고 주방에서 일하시는 사장님이 왜 꼭 하얀색 와이셔츠를 고수하는지도 궁금했다.(짜장면 가격이 4천원인 이유는 궁금하지만 묻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바쁜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이 뜸한 오후 3시에 일월성의 정인철(72), 고명순(63) 사장님 내외를 만났다.


 


일월성, 세상 만물을 담아낸 이름이지요

가게 이름은 내가 지었어요. 하나의 해와 하나의 달 그리고 수많은 별, 세상 만물 아니야. 그것이면 족하지요. 가게 이름을 정하고 내 나름대로 가게를 상징하는 멋있는 간판을 달고 싶더라고요. 수소문 끝에 그 당시에 대아리 음수동 마을에 살고 계셨던 서예가 금영(錦影) 이영철 선생님을 찾아갔지요.(일본 동경대에서 강단에 섰던 금영 이영철 교수. 서울대 출신. 동양철학의 석학으로 일본, 프랑스와 영국 등 유럽 쪽 학계에 이름이 더 알려짐) 무릎을 몇 번이나 꿇었는지 몰라. 처음에는 선생님이 내가 간판쟁이냐며 화를 내셨어요. 그래도 계속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부탁을 하니까 나중에는 물어보시더라고요. 왜 일월성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는지. 그래서 내가 뜻을 말씀드렸더니 그 말이 마음에 드셨는지 글씨를 써주셨지요.”


   


고산 읍내가 고향인 정인철 사장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가 중국요리집에서 일을 배웠다. 나무로 틀을 짠 무거운 철가방을 들고 배달일부터 시작해 그릇을 닦고 양파를 썰고 수타면을 뽑고 요리를 할 수 있는 불 앞에 서기까지 어느 계단 하나 허투루 거르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씩 올라섰다고 한다. 그렇게 평생의 일을 배우고 아홉 살 터울의 아내를 만나 천호동에 구일관이라는 중국요리집을 내기도 했지만 30년 서울살이를 접고 80년대 중반에 고향 고산 읍내로 다시 내려와 지금의 일월성을 시작했다.

 

고산 내려와서 처음에는 영 미용실 옆에서 8년 정도 장사를 했어요. 그때도 이름이 일월성이었지요. 그땐 용담댐에서 일하는 건설회사 직원들이 많이 왔었어요. 이 시골에 중화요리 안주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우리 집을 자주 왔었지요. 고급안주를 내가 잘 만들었거든. 그 당시 장사가 잘 됐어요. 저녁 늦게까지 장사를 했더라면 돈도 많이 벌었을 거야. 그런데 나는 가족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내가 우리 애들 등하교를 전부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그랬지. 큰 애는 익산에서 교사하고 작은 애는 서울시 공무원이고. 고맙게 애들이 알아서 잘 컸어요. 그때만 해도 소고기 파는 가게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외식할 곳이 중국요리집이 유일했으니 장사가 잘 됐지요. 그때만 해도 재료가 비싸지 않아서 요리도 많이 했어요. 삭스핀도 팔고 해삼탕도 팔고 그랬지요. 지금은 재료 가격이 너무 올랐어요. 예전처럼 다양한 요리를 하기 힘들지요. 95년도에 이 자리로 옮겨서 지금까지 일월성을 운영하고 있어요. 요즘은 탕수육, 잡채밥, 짜장이 제일 맛있다고 해요. 그래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일 잘 나가는 메뉴는 짜장면, 짬뽕이지요. 쌀쌀할 때는 짬뽕이 더 잘 팔리고요.”

 

지금도 그렇지만 젊었을 땐 멋쟁이였어요

벌써 10년 가까이 일월성에 드나들었지만 주방에서 일하시는 사장님을 자세히 살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주방과 홀 사이에 난 작은 문틈으로 불 앞에서 부지런히 웍을 돌리는 사장님은 언제나 하얀색 와이셔츠 차림이었다. 가끔 오후 두 시 너머 점심 장사를 마치고 가게 입구 옆 볕 좋은 계단 참에서 쉬고 계실 때도 표정 없이 맞은편 지붕 위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지금은 생활인으로 살고 있는 무림의 숨은 고수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제는 그러지도 않아요, 옛날 말대로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거 같아요. 흰 셔츠는 깔끔해 보이려고 입어요. 나는 항상 위생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녁에 깨끗이 씻고 아침에는 꼭 머리를 감아요. 그건 꼭 지키려고 하지요. 주방 들어갈 때는 꼭 흰 와이셔츠를 입어요. 겨울에는 추우니까 검은색 조끼를 입고요. 나름 내가 고수하는 패션이에요.”


   


가만히 듣고 계시던 부인 고명순씨도 한 마디 거든다. 젊었을 때부터 옷도 잘 입고 멋있는 사람이었다고. 그 당시에 백바지 입었으면 말 다한 것 아니냐며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해주신다.

둘이 만나 40년이 넘도록 함께 손발을 맞추며 한 길을 걷고 있다. 늘 하던 일이지만 주방에 들어가면 늘 긴장 상태가 된다고 한다. 7~8킬로 되는 웍을 한 손으로 휘둘러야 하고 칼 다루며 재료를 썰어서 순서대로 조합해서 볶아내야 하니 다른 생각 할 틈이 없다.


 

손님들이 맛있게 드셨다면 그걸로 족해요

고산에서 점심을 먹을 때면 늘 다니는 몇 군데 식당이 있다. 칼국수가 맛있는 집이 있고, 백반 반찬이 마음에 드는 집이 있고, 뼈다귀탕이 얼큰한 집도 있다. 그리고 일월성에 오면 열에 아홉은 잡채밥을 먹는다. 저마다 식성이 달라서 뭐가 제일 맛있다는 말은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나는 불맛이 그윽하게 배어 있는 일월성 잡채밥을 최고로 친다. 마지막 질문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하고야 말았다. 음식 값이 너무 싼 것 아니냐고.


   


짜장면 한 그릇이 4천원이니까, 우리집 가격이 이십 년 전 가격이에요. 우리 집 오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둘이 와서 자장면 두 그릇 시켜놓고 그마저도 좀 깎아달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손님이 있는 반면에 여러 사람이 와서 음식 많이 시켜 드시고 가격이 이거밖에 안 나왔냐고 놀라는 사람들도 있어요.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고 갑니다, 하고 인사해 주시면 힘이 나요. 그래도 장인이라는 소리는 대단한 사람에게나 하는 소리인데, 나는 그쪽에는 못 들어요. 그런 소리는 여기다 내놓으면 골치가 아파요. 하하. 나는 뭐 그저 평범하게 시골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지요.”


 

어린 아이가 겁도 없이 기차를 타고 용산역에 내려서 처음 배운 기술이 중국요리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흔이 넘도록 불 앞에서 요리를 만들어 낸다. 이 정도면 장인 아닐까? 호들갑스럽게 장인 이야기를 꺼냈다가 괜히 꾸지람을 들었다. 오랫동안 장사해달라고 부탁하는 단골손님들이 많다고 한다. 어쩌면 특별한 장인보다는 평범한 시골 중국집 사장님으로 우리 곁에 남아있는 것이 일월성을 오래도록 드나들 수 있는 길이겠다. 정인철 사장님의 마지막 말이 근사해서 한 줄 남겨 본다.

 

어느 당신이 되었든 간에 당신이 잘 먹었으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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