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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씨가 가을이면 바빠지는 이유2022-02-03

존경씨가 가을이면 바빠지는 이유

존경씨가 가을이면 바빠지는 이유

-운주 중촌마을 이존경 이야기

아이걸음으로 한 시간씩 걸어서 학교를 다니던 나는 13살 무렵 산골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갔다. 아파트와 자동차들 보다 낯설었던 것은 사람들이 시장에서 돈을 주고 감을 사먹는 모습이었다. 아니, 감을 돈 주고 사먹다니! 내가 살던 산골 동네는 지나가는 개들도 감을 물고 다닐 만큼 감나무가 많았다. 가을철 동네 애들이 먹을 수 있는 건 감 뿐이었다. 몰려다니며 대나무로 감을 따는 것이 일종의 놀이였다. 하루 종일 감나무에 매달려 있던 아이들이 땡감을 따오면 어른들은 소금물이 담긴 항아리에 감을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추운 겨울이 되면 하나씩 빼먹곤 했는데 나는 그것이 먹기 싫어 제발 과자 좀 사달라고 칭얼대다가 잠들었던 것 같다. 감 농사짓는 집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경씨도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을까? 당연한 듯 늘 옆에 있는 감들이 질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직도 감이 맛있어서 하루에 세 개씩은 꼭 먹는다고 한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존경씨를 만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덕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까맣게 잘 마른 곶감을 내려 크기대로 선별하고, 포장하고, 납품하느라 한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을 테고, 설 명절을 앞두고 열릴 운주곶감축제를 준비하느라 아침저녁으로 바빴을 것이기 때문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곶감축제가 열리지 않게 된 틈을 타서 어렵사리 운주 중촌마을 곶감 덕장에서 일하고 있는 존경씨(이존경 42)를 만날 수 있었다.


제가 29살에 농사짓겠다고 다시 운주로 왔을 때만 해도 운주 곶감이 크게 유명하진 않았어요. 어렸을 때 집에서 짓던 곶감 농사도 선물용보다는 외부에서 들어온 상인들이 배추 밭떼기 하는 것처럼 덕장별로 매입을 했었죠. 곶감축제가 시작되면서 운주 곶감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한 거 같아요. 운주 곶감은 완주 흑곶감, 대둔산 곶감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죠. 왜 흑곶감이냐면 햇볕으로 자연 건조해서 까만색이 도는 거예요. 그래서 당도가 높아요. 그리고 품종이 상주 곶감이랑 틀려요. 상주곶감은 둥시라는 품종이고 완주곶감은 두레시라는 품종이죠.”

 

다시 돌아온 고향, 여전히 곁에 있는 감나무

존경씨는 운주 태생이고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는 운주에서 다녔지만, 고등학교는 충남 논산으로 다녔다. 20살부터 다른 지역으로 나가 직장생활 하다가 29살에 다시 고향 운주로 돌아왔다고 한다. 멀쩡하게 직장 다니던 아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짓고 살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선뜻 그렇게 하라고 동의해 주셨다고 한다. 어린 시절 감식초 통 나르고 감 딸 때 뒤에서 돕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이제 부모님의 동업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운주 토박이시고 농사로 자수성가하신 분이셔요. 농촌에서 부모자식 간에 함께 농사짓는 집 중 안 싸우는 집이 거의 없죠. 갑자기 돕겠다고 찾아온 자식들이 새로운 방식을 배워 와서 마음대로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까. 저도 물론 가끔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기도 하고 그랬죠. 왜냐하면 농사일이 손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일이 생소하잖아요. 그래도 벌써 10년이 넘었어요. 처음에 29살 무렵 고향 왔을 때,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대둔산 입구에 올라가서 관광버스 주차장에서 구운 밤도 팔고, 감도 팔고 그랬었죠. 다 집 주변에서 딴 것들 가져다가. 나가서 판매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었죠. 가만히 있으면 누가 저한테 안 오잖아요. 용기내서 나가보니까 진짜 장사가 잘 되더라고요. 저한테 장사하는 거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죠. 단기간에 조금 하다가 농사일을 늘리게 되면서 그 장사는 접게 된 거죠.”

 

존경씨는 연시, 곶감 등 감 농사 외에도 콩 농사, 묘목 농사를 지으면서 조금씩 일을 키워나가고 있고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소나무 재선충 방재작업 같은 산림조합 일도 하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름 바쁘게 살고 있다고 한다.

 

“2월 전에 감나무 거름을 줘요. 그리고 감나무 가지치기. 순을 잡아줘야 하니까. 6월부터 8월까지는 감나무 방역 시기여서 한 달에 한 번 간격으로 살충제를 줘야 해요. 외래종 벌레가 많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수확은 각 농장마다 다 다른데 저희는 연시용 감은 추석 전에 수확해요. 색깔은 붉은 색이 돌고 아직 단단할 때 해요. 곶감용 감은 10월 초부터 1025일 전까지는 수확해요. 더 늦게 따면 감이 물러지니까요. 전 과정에서 제일 힘든 과정은 감 수확할 때죠. 그때 일손이 제일 필요한데 요즘에는 인력 구하기도 힘들고요. 가을철 떫은 감을 수확할 때가 제일 힘들죠. 제가 좋아하는 계절은 봄 이예요. 봄은 일단 바쁜 일이 드물어요. 가을에 단풍 구경을 해본 적이 없어요. 감 구경하기 바빠서요. 그냥 집 밖에 나가면 보이는 나무 보는 게 단풍구경인거죠. 그나마 봄이 좀 편안하죠.”

 

예측할 수 없는 일들


이제는 작업동료가 된 아버지와 아들


10년 동안 땅을 일구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농사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자신이 부지런히 움직인 만큼 정직한 수익이 생긴다. 하지만 최근에 변수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 대의 농사짓는 법과 지금의 농사는 기술도 환경도 많이 달라졌지만 가장 어렵고 힘든 문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라고 한다. 존경씨는 몇 해 전 거짓말처럼 따뜻했던 겨울 풍경을 덤덤하게 이야기 했다.

 

추워야 할 때 따뜻하고 따뜻해져야 할 때 갑자기 추워지니까 나무가 얼어 죽고 냉해가 심해지기 시작했어요. 5년 전이었나. 겨울에 눈 한번 제대로 안 내리고 포근했던 해가 있었어요. 그때 곶감을 건조하는 과정에서 엄청 큰 피해를 봤죠. 곶감이 건조되기 전에 걸려있던 곶감들이 다 바닥으로 쏟아졌어요. 그런 일은 처음 있었던 일이예요. 그 당시 일이 신문에도 나고 그랬죠. 그때 저는 무덤덤한 편이었는데 아버지가 많이 놀라셨어요. 눈앞에서 곶감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덕장 앞에서 하루 종일 바라보기만 하셨죠. 평생 곶감 농사지으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셨다고 해요.”

 

기후변화가 가져오는 불확실성을 사람들의 노력과 새로운 기술로 온전히 극복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과거의 오래된 농사 기술과 지혜를 갖고 있는 아버지 세대와 새로운 지식과 기술로 무장한 아들 세대가 힘을 합쳐 농사짓는 다면 희망은 있지 않을까? 존경씨 말대로 일단은 부지런히 정직하게 땀 흘리며 하던 일을 해 나가는 것이다.


   


오일장마다 화려한 빛깔을 뽐내던 대봉시들이 들어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연륜 있는 곶감이 등장한다. 나처럼 어린 시절 동네에서 감을 따먹고 곶감을 만들던 추억이 있는 친구들도 그 시절이 그리운 모양이다. 그들을 위해 해마다 완주곶감을 명절 선물로 보내곤 한다. 드디어 호랑이도 무서워 할 만큼 무섭게 맛있는 완주곶감을 선물로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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