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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리 883] ①'The Beginning'2019-06-05

[구암리 883] ①'The Beginning'


구암리 883 ‘The Beginning’


가볍게 놀러왔다 머물고

하나 둘 모여 집을 짓는다

 

여행은 가볍다. 처음 삼례에 올 때의 마음 역시 가볍기만 했다. 박스 10여개와 매트리스 하나, 식탁 하나로 짐을 꾸렸고, 여행인 덕에 큰 고민없이 여러 사람을 만나며 일을 벌였다. 작년 초, 함께 집을 짓고 살자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나는 여행 중이었다.

내집을 가지는 일은 너무 무겁기만 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면서도 고민 한 번 해본 적 없었다. 물론 그럼에도 월세 생활은 피로한 일이어서 전세금 정도 모아 옮겨 다니며 살자 싶었다. 엄마의 말따나 편하게 살려는, 세상 이기적인나는 집을 가진다는 말이 가진 무게로부터 평생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사는 곳이 가볍다는 뜻은 아니었다. 자취를 고민하던 학생 때부터, 자립하고 싶던 직장인 시절에도 주거(住居)는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바탕이었다.

때문에 놀러 왔던 삼례의 골목길이 인생행로의 대로가 된 지금, 정주(定住)하겠다는 생각은 수없이 곱씹어 차근차근 준비해야하는 일이었다. 한데 집을 지어 아웅다웅 살아보자는 말에 나는 내게 물었다. ‘괜찮을까?’ 묻지 않았다. ‘어떻게?’ 였다.

 

친구 백발과 함께 온 삼례에서 처음 만난 사람은 광열형님이었다. 그를 부르는 이름도 여럿 이었는데 누군가 광열형님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이 동네 아브라함이라고 설명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실상 맺어놓은 인연을 보면 사람을 낚게 된 베드로일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산다는 일은 누군가의 지지가 있을 순 있지만 결국 본인의 선택인 일이다. ‘삼례 관계도는 누구 때문에 왔다는 설명이 아니라 처음 삼례를 알게 된 경로를 조사하여 만든 인포그래픽이다.

 

완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던 사람들이 머무르게 된 그 시작점에 광열형님이 있었다. 그 집은 사람이 오고 가는 교차로 한 가운데 있는 듯 누구나 어울리다 가는 곳이었다. 그 집에서 차례로 지금 함께 집을 짓는 친구들을 만났다. 결국 낯선 친구들과 만나 음악을 듣고, 춤을 추고, 영화를 보고, 술을 마셨던 수많은 가벼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집을 지었다.

 

삼례에 오기 전 독립을 꿈꾸며 둘러 보았던 대안 공간들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와 알게 된 일이다. 중요한 건 누구와 살아가는 지였다. 이 단순한 사실을 몸소 느낀다.

 

 


누군가는 우리의 관계가 너무 끈끈해서 부담 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너희처럼 개인주의자들이 모여서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는 일이 허황되었다고도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듣는 와중에 귀 얇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리고 이 무거움에서 도망가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그 때마다 지금의 친구들과 쌓은 한 가지 신뢰를 떠올려 마음을 가라앉힌다. 서로의 모 난 모습을 에이 저 미친년웃으며 넘어가줄 수 있다는 신뢰이다.

나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고집스럽고 조금은 눈치없으면서 예민하게 굴텐데.

타고난 대로 살 수 있을거라 기대하며 집의 평면도를 그리고 벽을 세우고 지붕까지 올리는 결심을 했다.

제각각인 친구들과 무슨 음악을 듣게 될 지, 어떤 춤을 추게 될 지 매일 상상한다.

상상하며 개인적으로는 구암리 883이 나의 광장이며 나의 밀실이 되길 바란다.






/ 강소연

*** ‘구암리 883’은 완주에 귀촌한 예술가들의 마을 공동체입니다. 공동체의 구성원 한 명씩 매 달 글을 쓰며 함께 마을을 만드는 이야기를 알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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