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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간 박군들<2>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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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간 박군들<2>


정말로 옛날 모습인 버스를 타고 포카라로 갔다 포카라는 한국의 부산 같은 곳이다. 그런데 너무 덥고 어지럽다. 버스에 에어컨이란 모습도 안보이고 그냥 고장난 선풍기만 있다 그리고 카트만두를 빠져나갈때 어느 고속도로가 있는데 그 고속도로는 고불꼬불 1시간으로 뻗어 있었다. 게다가 차가 막히고 정말로 불편했다 그리고 차가 고장나면 정말로 딱 멈춰서 자기가 고치기까지 한다 버스는 아니겠다고 생각했는데 버스까지 멈춰서 고친다 승객들은 익숙한지 가만히 앉아 그림 그리고 책읽고 한다. 그게 신기해서 뚤어져라 계속봤다. 6시간이 걸려서 포카라에 도착했다. 가장먼저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데 택시가... 그 옛날 작은 티코 같은 자동차네.. 인원이 가이드 까지 합쳐서 4명이었다. 가이드 아저씨는 앞에서 편하게 가고 우리는 꽉 꽉 껴서 갔다 20분 정도 걸려서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은 그냥 빌라 같은 한국이랑 익숙한 호텔이었다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갈곳이있어서 바로 나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을 다른 나라에서 보내다니.....


우리가 가는 곳은 그냥 걸어서 10분 안 걸리는 곳이다 그곳은 바로 페와 호수 파란색 물결이 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앞을 보니 발을 담그고 있는 예쁜 외국누나들이 있는데 나도 더워서 물에 담그자고 아빠한테 말하니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 그래도 눈으로 만 봐도 시원했다. 페와 호수는 산책길이 있어서 계속 산책길을 따라가니 어느 작은 시내같은 곳이 있었다. 그 시내에서 과일도 사고 짝퉁 네파 옷도 샀다. 그리고 포카라 야경을 보러 사랑곶 이라는 전망대로 갔다 거기까지 택시가 있어서 가격을 물어보는데 세상에 거기까지 5000루피(50000) 이라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그러자 우리가 따른 사람 알아보자고 했더니 손님 놓치기 아쉬운지 4000루피(40000)으로 갔다. 도착하니 조금 걸어야했는데 계단이 100계단정도 넘어 보였다. 그렇게 전망대에 도착하니 포카라 전체가 360도로 쫙 펴져 있었다. 환상적이었고 그리고 그 도시의 배경으로 안나푸루나와 마차푸차르의 히말라야 산맥이 쭉 펴져있었다. 그렇게 포카라 야경을 보고 내 생일 기념으로 어느 치킨시즐러 집에 갔다 거기는 약간 한국보다 초월하는 고급음식이었다. 게다가 치킨시즐러 대부분으로 600~700루피(6000~7000)이라서 가볍게 먹었다. 그렇게 호텔로 돌아와 양치를 하고 침대에 누워 잠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안나푸루나 트레킹의 시작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결국 깊은 잠에 들었다.


드디어 오늘이다 안나푸루나 트레킹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구운빵과 커피도 있었다. 그런데 네팔은 어린이들도 커피를 먹는지 내 자리에도 커피가 있었다. 그렇게 커피는 목말라서 한 목음만 먹고 자리를 일어났다.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안나푸루나 힐레 쪽으로 갔다. 이제 시작이다. 배낭을 메고 조심히 계단에 발을 놓는다. 처음엔 가볍게 걸었다. 오늘의 목적지는 올레라는 곳 처음 들었을때 올레tv가 생각났다 그리고 20분쯤 가다가 점심을 먹었다 우리가 먹은 점심은 파스타와 달밧 그런데 가이드 아저씨와 포터 아저씨는 식당 밖에서 수돗물로 양말을 빨고 있었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또다시 산을 올랐다 그런데 그때 우리의 최종보스인 5시간길이의 3000개를 가분히 넘는 대망의 계단지옥 나는 계단을 보고 갑자기 입이 떡 벌려졌다. 멀리서 볼 때 별거 아니겠지 생각했는데 이런 코스였다니 그런데 갑자기 생각났다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저기 계단 많아요” “저기 계단 많아요...” 그 말을 생각하니 더 안 좋았다 가이드 아저씨가 계단 많다고 했을 때 대장인 나는 바로 "ok! good!!" 이라고 했고 가이드 아저씨도 좋아했다. 가이드 아저씨를 실망 시킬 순 없다! 그런데 그 상황과 같이 더웠다. 아주 많이 심각했다. 한걸음 한걸음 갈때마다 발에 땀이 1L씩 나오는 거 같았다. 그런데 우리 걸음에 맟춰서 간다는 아빠랑 같이 온 일행은 저 위에 있고 가이드 아저씨와 포터아저씨랑 나만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가이드 아저씨가 나의 손을 꽉 잡으셨다.

같이 가요

그때 나는 너무 좋았다. 가이드 아저씨는 내 걸음에 맞춰주셨고 포터아저씨 또한 같이 맞춰주셨다. 그렇게 5시간이 걸려 드디어! 올레tv... 아니고 올레에 도착했다! 그런데 아빠가 “2시간 만 더 가자 우리 영준이 할 수 있잖아 그렇지!?” 헉 하고 생각했다 ‘5시간을 계단만 보고 왔는데 더 가자니 이건 말도 안돼!’

그런데 내일을 생각하고 2시간만 더 가기로 했다

2시간정도 가면 번탄티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 까지는 길이 편해서 가분히 갈 수 있었다. 그렇게 2시간을 더 가서 드디어 도착했다! 거기의 배경은 끝내줬다. 뒤에는 안나푸루나 산맥이 펼쳐져있고 앞에는 아름다운 초록나무들이 산을 가득 채웠다. 거기서 여유롭게 콜라를 마셨다. 도착지에서 먹는 콜라는 정말 맛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둘러 가득채웠다. 아빠는 내일의 상황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나 또한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저녁은 먹어야지 저녁을 먹고 난로에 몸을 녹였다 거기서 노래를 틀고 앉아있었다 거기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아빠는 가서 자자고 하는데도 나는 계속 있자고 했다 그런데 이제 잠이 오기 시작하자 나도 어쩔 수 없이 잠을 자야했다 하지만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

 

얼른 일어나서 옷을 입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머리가 아파온다 시간이 너무 느리다 아직도 1시간이 남아 짜증이 난다. 조금 지나니 숨이 찬다. 계속 찬다. 너무 짜증이 나서 아빠한테 말한다.

...빠 나.. 숨이.......”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아빠는 기분이 안 좋아졌다. 결국 목적지엔 도착 했지만 나는 병에 걸렸다.

고산병 두렵다 이병은 죽을 수도 있다 내 생에 위협적인 병 나는 결국 하산을 결정하고 아빠는 잠깐 방에 나가고 짐을 챙기러 갔다 그런데 난 아빠가 나간후 이유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계속 나왔다

여기는 2600m가 넘는 곳 고산병이 걸릴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곳이다 나는 배낭을 메고 조심히 밖을 나온다. 그런데 아빠랑 나만 간다. 나는 우리의 목적지에서 조금 떨어졌을 때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는 이렇게 말한다.

다음에 할 수 있잖아

그런데 아빠가 여권을 놓고 와 다시올라갔다. 그런데 거기서 좀 쉬고 내일 갈려고 했는데 내 고산병증세는 더 안 좋아 졌다.

결국 천둥번개 치는 밤 우리는 늦은 하산을 결정했다.

우리는 가이드 아저씨 아빠 나 만 가기로 했다

비가 와서 우리가 온 길은 물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발을 헛디뎌 넘어 질 뻔했지만 그때 가이드 아저씨가 내 손을 잡았다.

큰일 날 뻔했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해 문을 두드렸다. 그런데 문을 열지 않았고 우리는 좀 더 나오는 곳으로 가야했다. 겨우 어느 할머니가 우리를 받아주었고 우리가 오자마자 비에 젖은 겉옷을 벗겨 주시고 난로를 때주셨다. 그러고 난 그 앞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었다 밖에 나와서 밥을 먹었다 메뉴에 신라멘 이라는게 있어 그걸 시켰더니 정말 한국에 신라면 이었다 그런데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 우리는 다시 배낭을 메고 산을 내려간다. 아빠가 아쉬운지 계속 산을 쳐다본다. 나는 아빠를 보고 슬펐다. 아빠가 기분이 안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계속 내려가 보니 한국어로 한국라면 네팔라면 한국소주 네팔

소주라는 곳이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풉 하고 웃었다.

나는 계속 내려갔고 드디어 1일차에서 잤던 번탄티에 오게 되었다 번탄티 아줌마는 우리를 반겨주셨고 우리는 거기서 콜라를 마시고 또다시 내려갔다. 좀 더 가다 보니 우리가 출발했던 올레에 도착했다. 올레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가 처음에 시작했던 힐레로 갔다. 우리는 또 그 계단을 내려가야 했고 거기서 나의 영어실력을 알았다.

나는 외국 아저씨한테 헬로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아저씨도 헬로 하와유?”

이건 3학년때 배운거다. 안녕 기분어떠니? 라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해피라고 말했고 그러자 외국 아저씨가 굿 이라고 말했다.

좀 더 가다보니 어느 한 부부가 산을 오르다가 내려오는 우리를 보고 여기서 고라파니까지 갈려면 얼마나 걸려요? 라고 말을 하자 갑자기 떠올랐다. 고라파니는 내가 고산병이 걸린곳이다 나는 한 5시간정도 걸린다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가다가 번탄티에서 자고 가야한다고 그렇게 말하자 외국 부부는 오케이 하고 산을 올랐다.(고라파니 파이브 아우어, 번탄티 슬리핑)

그렇게 외국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보니 힐레에 도착했다.

힐레숙소에서 영어로 내가 방을 빌리고 내가 다했다.

그러곤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다 우리는 내려가서 포카라로 가서 좀 쉴 계획이다. 내가 생각해봐도 너무 아쉽다.

계속 내려가고 그러다보니 고라파니에서 촘롱으로 간 우리의 일행 중 아줌마 그리고 가이드 아저씨 포터아저씨가 문자로 말했다 우리 촘롱에서 하루 더잡니다

그러자 아빠가 말했다. 우리 다시가자 나는 당연히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작했다. 트레킹을 일단 짚차를 타고 시부야쪽에 갔다. 시부야는 약간 중간 크기의 시골인데 거기서 짚차 사기를 당했다. 왜 사기를 당했냐면 짚차 아저씨가 걸어서 30분 되는 걸이에서 딱 멈춰버렸다. 거기까지 가야하는데 딱 멈춘 것이다 아빠는 그걸 알고 온갖 욕을 다했다.(내 앞에서)

그리고 우리의 재도전 첫 목적지에 도착했다 거기서 어느 외국 가이드, 포터 그리고 할머니 그렇게 셋이서 온 것 같다. 그런데 가이드 아저씨 포터아저씨 할머니가 나를 엄첨 좋아했던 것이다. 나는 영어로 그 가이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고 우리 아빠도 그 포터, 가이드, 아줌마와 같이 술을 먹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문자가 와있다

촘롱에 포터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걸 듣자 우리는 바로 짐을 챙기고 출발했다

외국 가이드 아저씨, 포터 아저씨, 아줌마는 우리보다 좀 늦게 출발했는데 걸음 속도가 빨라서 우리보다 먼저 갔다. 그렇게 촘롱에 도착하니 저기 아래에 우리보다 먼저 간 가이드 포터 아줌마가 보였다. 우리 보다 먼저간 것이다 우리는 거기서 포터아저씨를 만나고 이제 얼마 안남은 재도전 두 번째 목적지에 도착했다 목적지가 같았던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와 아줌마는 안보이고 우리만 있었다. 빨리 도착해서 거기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더 가는 것을 결정했다. 3시간쯤 가자 어느 숙소에서 우리보다 먼저 간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 아줌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더 갈려던 아빠를 붙잡고 여기서 자자고 말했다. 아빠는 당연히 오케이 했다. 왜냐하면 내가 대장이니까 거기서 또 가이드 포터아저씨 아줌마와 얘기를 나누고 편하게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다 똑같이 빨리 일어나 빨리 아침을 먹고 출발했다.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 아줌마는 아직 주무시나 보다

그리고 고산병이 걸릴 확률이 있는 2600m가 넘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곤 또 다시 출발하고 또 그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 아줌마는 우리보다 먼저 갔다. 우리는 세 번째 목적지인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거기에 높이는 3300m 나는 숨도 안차고 마음이 편했다.

데우랄리에 도착하자 우리의 일행이 우리를 마주했다. 가이드 아저씨는 나를 안아주고 아줌마도 나를 않아주셨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10시간을 넘게 걸었다. 이런 내가 대단하다.

그런데 우리숙소 바로 아래에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 아줌마가 있어서 우리는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데우랄리에서 5시간을 가면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베이스캠프다.

그쪽은 우리랑 계획이 같은 새벽에 출발한다고 했다.

우리는 내일을 기다리며 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나의 종아리를 가득 채우는 눈이 길을 막았다.

아빠는 하산을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결국 목적지인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못하고 하산이다. 그래도 괜찮다. 이미 나의 최고 높이에 있으니까

우리는 내려가고 11시간을 걸어 촘롱에 도착했다.

그런데 촘롱에서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와 나는 이야기 좀 하고 오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게 마지막 만남이다. 외국 가이드 포터 아저씨 아줌마는 다른 곳으로 가고 우리 또한 정반로 가야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고 함께 술을 마셨다. 나는 콜라를...

그렇게 우리는 원래 숙소로 갔고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굿바이 씨유

 

다음날이다 우리는 이제 더 내려가면 짚차를 탈 수 있는 곳으로 간다. 거기는 3시간 밖에 안 걸려 가볍게 갈 수 있다. 말을 안한게 있는데 거기에 200m가 넘는 다리가 서 있다. 나는 그 다리를 재도전 할때 한번 건너 봐서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아빠는 여전히 무섭다고 한다.

이제 다리를 건너고 1시간만 더 가면 도착이다 하얀 설산은 점점 없어지고 데우랄리도 안 보인다 나는 다시 오겠다고 산에게 말하고 이렇게 말한다.

산아 안녕 다시 올게 그리고 거기에 만난 모든 사람들! 모두 사랑해!”


[영준이 엄마 생각]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아직 어리고 위험해보이고 아직은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아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 네팔에 데려가겠다고 하는 남편이 이상해 보였다.

우리 아들은 아직 한참 어린데...왜 자꾸 그러는지

그런데 3학년이 된 영준이가 아빠와 히말라야를 가고 싶다고 했다.

본인이 가고싶다고하니 이제는 보내야 하나...

20192월 아들과 남편은 커다란 짐을 싸들고...언제 돌아오겠다는 일정도 없이 그렇게 네팔로 갔다.

여행 내내 카톡과 전화로 연락을 주고받으니 별로 불안하지 않았다.

그런데 안나푸르나로 트래킹을 시작하면서 잠시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얼마 뒤 연락이 왔는데...충격이었다

아들이 고산병으로 하산을 했다고...

영준이가 쓴 글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표현은 할 수 없었고 마냥 마음이 아팠다.

건강하게 돌아와 준 지금은 대견하다.

어떻게 이렇게 컷는지 모르겠다.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조금은 소극적인 아이였다.

그러나 아빠와 여행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졌고 이번 네팔여행 후엔 먼가 모를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았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우리도 많은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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