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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할키타 로르나, 말리파윤 로르나!2019-05-03

마할키타 로르나, 말리파윤 로르나!

 

Mahal Kita 마할키타 로르나, Malipayon 말리파윤 로르나

필리핀 말로 마할키타는 사랑한다, 말라파윤은 즐겁다는 뜻이라고 한다


 

로르나를 인터뷰하기 전에는 그녀의 한국살이가 어떤지가 궁금했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쓰면서 문득 그녀가 살았던 필리핀의 고향마을이 더 궁금해졌다. 그녀의 고향은 필리핀 보훌섬 타크 빌라란시 루운 빅옷마을. 구글이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는 놀라웠지만 그녀의 고향마을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5분 만 걸어 나가면 바다가 보이는 전형적인 해안가 시골마을이라는 그녀의 설명을 상상해보며 비슷한 해안가 마을을 천천히 살펴봤다.


어렸을 때는 마을 바닷가에서 매일 놀았어요. 밥만 챙겨가서 바닷가 가서 직접 반찬을 구해서 바로 해먹는 거죠. 물 빠지면 물고기 그냥 건져서 먹기도 하고, 조개도 줍고, 미역도 따고요. 필리핀의 전통 집은 바하이 쿠보 Bahay Kubo라고 부르는데 나무 집이라고 볼 수 있어요. 대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야자수 잎, 코코넛 나무 잎으로 지붕을 만들어요. 덥고 습한 기후 때문에 바닥에 2미터 정도의 돌과 나무로 기둥을 세워서 집을 짓죠. 그 집에서 엄마, 아빠, 8남매 열 명이 함께 살았어요.”


 

로르나의 필리핀 고향마을 해변인 나포비치.


집에서 식구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모습.


로르나(로르나 유손 코리티코 Lorna Yuson Coritico 45)는 한국인들에게 제법 많이 알려진 세부(Cebu) 아래쪽에 있는 섬 보훌(Bohol)의 바다가 보이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27년을 살았다. 2002년 한국으로 이주해 지금 남편과 결혼했고 이왕형, 효형, 장형, 심형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 넷을 낳았다. 그 사이 완주군의 지역아동센터에서 영어선생님으로 일하기도 했고 2014년에는 기전대학교 언어교정과를 졸업했으며 6년 전부터 고산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그녀는 17년째 대한민국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국으로 가서 일하고 싶었어요. 마닐라에서 한국 가기 위해 교육을 받았는데 몇 달 있다가 갑자기 선을 보게 된 거죠. 근데 만나서 이야기 해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집에 인사시키러 갔더니 다들 깜짝 놀랐어요. 부모님도 처음에는 놀랐는데 남편 보더니 마음에 들어 하고 나도 그때는 나이가 많아서 알아서 할 나이이기도 하고 부모님은 제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결혼하게 된 거죠. 한국은 아직까지도 여자는 집에서 일하고 남자는 바깥에서 일해야 하는 거 조금 남아 있잖아요. 필리핀에는 그런 거 없어요. 여자 남자 같이 해요. 남자도 주방일 하고 함께 일해요. 처음에 우리 신랑이 한국에서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 그래서 무슨 말이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알았어요 라고 했는데 지금 그런 소리하면 내가 뭔 소리를 하냐고 그러죠^^ 같이 일해야 하는 거예요.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잖아요.”


 

일터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로르나.


솔직히 고백하자면, 먼 나라에서 이곳 한국의 농촌마을로 시집와 살고 있는 다문화여성들의 삶이 신산해 보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가부장 문화가 낯설었고 필리핀에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 차이가 별로 없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약간 겸연쩍었다. 젊은 나이에 낯선 나라 한국으로 일하러 가기로 한 것도, 결혼을 한 것도, 아이를 낳고 일을 시작한 것도 그녀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힘든 일도 많았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건 한국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 그래도 완주문화원과 고산농협을 오가며 한국말을 배웠고 지금은 누구와도 능숙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됐다.


 


처음 한국에 와서 5년 정도는 참 힘들었어요. 돈 벌고 싶었는데 집에서 농사만 지으니까 많이 답답했죠. 지금도 집안에서만 일하면 답답해요. 나는 바깥에서 일하는 게 적성에 맞아요. 몸은 힘들어도 바깥에서 사람만나고 막 돌아다니는 일이 나한테 맞아요. 보통 아침 6시에 일어나요. 살림하고 일하고 저녁에는 좋아하는 배구도 해요. 내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주말리그도 다녀요. 원래 필리핀에 있을 때도 농구 배구 잘했어요. 오히려 운동 안하면 몸에 힘 빠져요. 낮에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 운동하고 스트레스 풀어요. 완주 주말 리그는 413일에 시작해서 곧 다가올 68일 삼례초등학교에서 경기 있어요. 팀 이름은 다문화 팀이에요.”

 

로르나는 밥하고 빨래하고 시어머니 돌보고 일하고 또 좋아하는 배구도 하면서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참 바쁘게 산다. 필리핀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농사도 짓는다. 나락, 고추, 양파, 마늘을 심어서 팔기도 하고 먹기도 한단다. 완주 주말리그에 참여하는 다문화배구팀 회장, 완주 다문화 필리핀 연합 회장, 전라북도 필리핀 연합 총무라는 직함도 그렇게 해서 하나씩 늘어난 그녀의 일들이다. 너무 밝고 씩씩한 그녀에게 그래도 힘든 것이 있는지 물어봤다.

 

지금도 좋아하는 거 있고 싫어하는 거 있고. 똑같이 있어요. 좋아하는 것만 있으면 이상해요. 싫어하는 것도 있는 거예요. 힘든 것도 있고 편한 것도 있고, 좋아요도 있고 싫어요도 있고, 나 모든 감정 다 있어요. 좋아요만 있으면 힘든 일이 올 때 당황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좋고 싫은 것들을 늘 생각해요. 그래서 힘든 일 있고 스트레스 받아도 아, 내가 지금 힘들구나 그냥 생각하면 그게 휙 지나가요. 어려운 일 닥쳐도 나 괜찮아요. 견딜 수 있어요.”

 

대답을 듣고 괜한 질문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이토록 낙천적인 성정을 만들어준 필리핀의 섬마을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곳 다갓(바다)에서 씨앙(조개), 릿똡(꼬막), 로못(미역)을 건져내며 놀았던 로르나. 다갓에서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들은 그냥 생으로 먹어도 맛있고, 우리네 초무침처럼 식초와 야채 썰어 넣고 버무려 먹기도 한다. 고향음식을 설명하는 로르나는 먹고 싶어서 침이 나온다며 환하게 웃는다.

 

“2010년 지진 때 걱정 많이 했어요. 사람만 안 다치면 되요. 집은 언제든지 지을 수 있으니까. 우리 집도 그때 다 무너졌는데 그래도 가족은 무사했어요. 2~3년에 한 번씩은 고향에 가려고 해요. 농협과 군청에서 모국방문 지원받아서 갔다 왔어요. 식구들과 함께 고향 갔을 때도 주로 바다에서 놀았어요. 내가 놀던 바다에 아이들 함께 갔어요. 2013년부터 고산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일하면서 한국말 많이 늘었어요. 다양한 사람 많이 만나니까 서로 대화하면서 말 잘해요. 이제 손님들 얼굴 다 알고 언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친해지면서 서로 장난하는 사람들 많아졌어요. 나 장난 좋아해요. 나 한국말 중에 즐겁게라는 말을 제일 좋아해요.”

 

로르나의 남편이 가장 자주 하는 필리핀 말은 Mahal Kita 마할키타(사랑한다)라는 말이고, 로르나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말은 즐겁다(Malipayon 말리파윤)라는 말이라고 한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좋아하는 말처럼 그녀의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마할키타 로르나, 말리파윤 로르나!




다문화 배구팀 수시모집

문의 로르나 010-6225-4743

연습시간/장소: 일요일 6~8시 완주중학교 강당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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