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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좋아 산 아래 살게 된 사람2018-12-04

산이 좋아 산 아래 살게 된 사람



산이 좋아 산 아래 살게 된 사람

- 은천마을 검은별농장 김동현 유순례 부부

 


늦가을의 동상면 깊은 산골에는 일찌감치 겨울이 앉아 있다. 동상의 산골로 향할 때 마다 아득하고 아늑함을 느낀다. 대아저수지를 끼고 구불구불 길을 휘돌아 가다보면 떠나온 곳도 가야할 곳도 아득해진다. 이내 깊은 산으로 쑥 들어가게 될 때 묘하게 편안해진다. 여름의 푸른 산도 좋지만 낙엽 떨어진 늦가을의 산은 묵직하고 고요하다. 깊은 산 은천마을의 김동현, 유순례 부부를 찾아가는 길이 그러했다. 점심을 거르고 찾아간 나에게 따뜻한 밥상을 먼저 내어 준 그들이다. 산과 땅에 기대어 먹고 사는 사람 집이 그러하듯 채취한 작물들을 갈무리해 말려둔 것들이 집안 곳곳에 있다. 일찌감치 영업 시작한 난로 옆에는 빚어둔 메주가 고이 모셔져 있다. 고로쇠 물로 조만간에 장을 담을 계획이란다.


저 너머로 보이는 장군봉. 고로쇠, 약초, 싸리버섯 능이버섯을 채취하기 위해 오르는 산




 



11년 전 김동현, 유순례 부부는 평생 살던 경기도 부천을 떠나 동상 은천계곡에 터를 잡았다. 농사지을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니었다. 그저 산이 좋아 산 아래에 살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어엿한 농장을 운영하는 삶을 살고 있다.


 

은천마을 검은별농장 전경



흙 한번 파본 적 없는 농사 풋내기가 산 속이 좋아 귀농을 했다!!’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검은별 농장의 온라인 카페 소개 글이다.

느낌표가 두 개나 붙은 이 문장에서 11년 전의 초심이 느껴진다. 김동현씨도 그 당시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몇 마디의 말을 건넨다. 그 동안의 삶이 켜켜이 쌓여서 지금의 산속으로 자신을 끌어 들인 것 같다고.

 


산 좋아 하던 회사원 등산용품점 사장이 되다.


흙 한번 파본 적 없는 이들 부부는 어쩌다 산골에 살게 된 것일까. 따뜻한 난로가에 앉아 이들 부부의 삶의 서사를 들어본다. 부천에 살았던 청년 김동현씨는 가구회사에서 일을 했다. 회사 다닐 때에도 산에 미쳐 있던 사람이었다.

 

나는 해고 순위 일순위였지. 그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일을 했거든요. 근데 나는 주말근무를 해본 적이 없어요. 야근도 안했고. 산에 가야 하니까. 금요일 회사 갈 때 아예 배낭을 메고 가요. 퇴근하자마자 밤에 산을 가서 일요일에 집에 왔죠. 안 가본 산 없이 다 다녔죠.”

 

90년대 초반 회사사정이 좋지 않아 다른 일을 찾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92년 등산용품사업을 시작한 계기이다. 처음에는 등산용품 수입하고 영업하는 일을 하다가 부천에 청봉산악회라는 이름으로 멀티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거대한 기업이 독식하는 구조가 아니라 매장 사장이 직접 여러 업체의 등산용품들을 선택해서 구비해 놓기 때문에 획일적이지 않고, 사장의 개성 있는 취향을 엿 볼 수 있는 가게들이 많았다. 지금의 등산용품점과는 다른 손님과의 유대관계도 깊었다. 손님으로 온 사람이 함께 산을 타는 동료가 되고 친구가 되는 것이다. 주말마다 산을 오르던 회사원 김동현씨는 이제 등산용품점 사장이 되었다. 직접 사용해보고 장단점을 알아야 용품들을 잘 팔수 있으니 가게를 운영하면서도 주말마다 산으로 향했다. 북한산 인수봉에서 암벽 타는 친구들과 살다시피 보낸 끈끈한 시절이다.

 

산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과정을 거쳐요. 나도 처음에 워킹산행을 했지요. 그러다가 리찌산행을 하지요. 능선을 넘을 때 바위를 많이 밟게 되는데 거기에서 스릴을 느끼면 암벽으로 빠지게 되요. 저도 그런 과정을 거친 거죠. 암벽등반 하는 팀에 가입하려면 등산학교를 다녀야 해요. 암벽등반은 교육을 사주동안 받고 전회원이 만장일치로 오케이 해야지 가입할 수 있어요. 조건이 까다롭죠. 암벽등반은 내 목숨을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거거든요. 내가 올라갈 때 내 줄을 잡아 주는 파트너하고 항상 교감이 되어야 해요.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을 못 믿으면 암벽등반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등산학교 암벽팀으로 졸업한 사람들은 평생 같이 가요. 끈끈한 무언가가 있지요.”


 

캠핑 동호회 회원들이 만들어 준 문패



판매하던 등산캠핑용품들을 지인들에게 다 넘겨주고 간직 중인 석유랜턴



김동현씨의 안목과 취향으로 알뜰하게 채워진 가게도 대기업의 물량공세에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97년 즈음 계속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했던 오토캠핑장비를 일본에서 수입하기 시작했다. 수입해서 한국에서 비슷한 모델로 직접 제작하고 판매하는 매장을 운영했다. 우리나라 캠핑 1세대이다. 만명정도의 회원들이 활동하는 온라인 카페의 대장역할도 했다. 그 당시 그의 닉네임은 하얀선, 아내 유순례씨는 까만 선. 이십년지기 캠핑 동지들은 주말이 되면 여전히 하얀선, 까만선이 사는 동상 오지 산골로 찾아온다.

 


산에서 먹고 사는 일

십여년 전 동상의 3, 봄이 무색하게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는데 그것도 참 좋았단다. 지인들과 우연히 캠핑을 했던 곳, 은천계곡 산골에서 살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내 유순례씨가 더 적극적이었다.

 

부천에서 살 때 캠핑장비 수입하면서 월말 되면 결제하느라 바쁜 거에요. 말일이 되면 스트레스가 심했죠. 캠핑을 다니면서 캠핑장을 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동상 들어오는 길도 좋고 조사해보니 전북에는 사설로 하는 캠핑장이 없었어요. 7천 평이 넘는 땅을 둘이서 2년은 죽어라 청소만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캠핑장이 전라북도 1호 오토캠핑장이었지요. 그 당시 지역 방송국에서 촬영도 오고 꽤나 유명했었죠. 처음에 이 산골짝에 캠핑장 한다고 하니까 이 동네 분들이 미쳤다고 했어요. 그 당시에 겨울 동상 산속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근데 캠핑장을 하니까 겨울 산골에도 사람들이 계속 들어온 거지요. 그러다 보니 다른 캠핑장들이 많이 생기게 되고 우리는 점점 농장 일에 전념하게 되었지요.”


 

올해는 감 흉년이 들어 곶감 수가 줄었다.



올해 처음으로 5천평을 빌려 배추농사를 지었다.



김동현씨는 이제 산을 졸업했다고 말한다. 지금 오르는 산은 먹고 살기 위해 오르는 산이다.

 

산이 좋아 산 속으로 들어왔으니 산에서 먹고 사는 일을 해야죠. 지금은 감 작업하고 2월 중순 되면 장군봉 올라가서 고로쇠 채취하고 봄 되면 고사리, 산나물 채취하고 양봉하고 여름에는 펜션장사 하고 가을에는 약초 캐고, 능이, 싸리 버섯 따고. 내가 채취해오면 아내가 갈무리 하죠. 둘이 손발이 잘 맞아요. 저는 귀농을 한 것이 아니라 캠핑장으로 장사를 하러 귀촌 한건 데 자연스럽게 산에서 나는 것들을 채취하면서 귀농의 삶으로 전환 된 거 같아요.”


 

나는 난로다 행사장에서 군밤파는 김동현 유순례 부부의 모습.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주운 밤들이 저장고에 가득이다. 올해 완주의 축제장에서 군밤 파는 이들 부부를 목격한 이들이 꽤 있을 거다. 아껴둔 밤을 가지고 12월에 열리는 운주 곶감축제에서 부부군밤장수로 활약할 예정이니 꼭 가보시길.





딸이 저장고에 벽화를 그려놓았다. 자신과 오빠의 모습과 집에 키우는 하얀 개 봄이와 까만 개 뽀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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