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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 모락모락 모두의 목욕탕 2018-08-06

우정이 모락모락 모두의 목욕탕



우정이 모락모락 모두의 목욕탕

고산읍내 현대장 주인 구광임씨

 


어렸을 때 나에게 공중목욕탕은 무서운 곳이었다. 그 무서움의 서사를 되짚어 가다보면 엄마의 억척스러움이 있다. 그 억척스러움을 생각해보면 녹록지 않던 시절이 떠오른다. 여름에는 고무대야에 받아 놓은 물 한바가지 뒤집어쓰면 된다지만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씻는 일이 큰 일이 된다. 늦잠자기 좋은 일요일 아침, 등짝을 몇 대 맞고서야 간신히 일어나 삐쭉 내민 입을 하고서 엄마 뒤를 따라간다. 목욕탕 안에는 이미 끌려 들어온 꼬마동료들의 절규가 울려 퍼지고 있다. 전운이 감돈다. 엄마는 일단 온탕으로 나를 유인한다. 때를 불리려는 속셈이다. 도망 다니다 늘 그렇듯 조그만 목욕탕의자에 앉아 때밀이 형벌을 당했다. 가끔 오는 목욕탕이니 엄마는 억척스럽게 그 동안 묵힌 때를 벗기곤 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꼬마들을 달래는 것은 언제나 바나나우유였다. 냉탕에서 몸을 식히며 구경하는 목욕탕 풍경은 기묘했다. 어른들은 왜 뜨거운 물을 시원하다고 할까. 숨 막히게 더운 사우나 방에 앉아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할까.



 


2018년 한 여름, 아무도 없는 시골의 작은 목욕탕 안으로 들어섰다. 더운 공기가 얼굴에 닿는 순간 80년대의 동네 목욕탕 풍경이 생생하게 겹쳐져 보인다.

 


고산 읍내의 유일한 모두의 목욕탕

90년대. 명동에 사람 많듯 고산읍내에도 그렇게 사람이 많았다. 현대장은 그 무렵에 지은 공중목욕탕이다. 집집마다 목욕탕 사정은 마찬가지였을 때니 쉬는 일요일이면 행사 치루 듯 모두 목욕탕으로 향했을 것이다. 목욕탕 시작한지 2~3년 후에는 옆에 살림집을 헐고 건물을 세워 여관을 지었다. 목욕탕과 여관 건물이 생김새가 달라 각기 다른 건물처럼 보이지만 1층으로 들어가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여관의 2층은 일반 숙박객들이 머물고 3,4층은 주로 장기 숙박객들이 머무는 곳이다. 목욕탕의 1층은 여탕, 2층 남탕, 3층은 주인네가 사는 집이다.



 


흥하던 세월이 지나고 사람이 빠져나간 시골 읍내의 목욕탕은 잠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2014814일 구광임씨(60)가 현대장의 새 주인이 되었다. 친언니가 운영하던 목욕탕과 여관을 인수해 새롭게 문을 연 것이다. 처음 1~2년은 고생이 심했다. 타지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겪는 텃세였다. 화산이 고향이지만 익산 왕궁으로 시집가서 그곳에서 아이 낳아 키우고 농사짓고 축사에서 돼지 키우며 청춘을 보내고 말년에 다시 돌아왔으니 아는 사람도 없었다.

 

텃세가 참 무섭데.. 처음에 장사 시작하고 한 6개월은 엄청 힘들었어. 불만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이야기 하면 좋겠는데, 이야기가 돌고 돌아서 안 좋은 이야기로 나한테 흘러 돌아오는데, 그것이 참 힘들더라고. 내가 성격이 화통한데 그걸 참고 사니 살이 쫙쫙 빠지더라고. 참으면 내가 병나겠다 싶어서 한 판 붙었지. ‘고산바닥에서 무서운 사람 못 본 모양인데 어디 한번 해보자! 나 무서운 것 없는 사람이야!’ 질러 버렸지.”



목욕탕 내부



자동 안마기



요금표



손님이 왕이라는 말도 옛말이다. 요즘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갑질 하는 사람들 소식에 속 시끄러운데 구광임씨의 대처법이 한 여름 소나기처럼 속 시원하다. 화통한 성격만큼 뒤끝도 없다. 그 뒤로 어떻게 되었을까.

 

할 말은 해야 병이 안나. 처음 6개월 진짜 힘들었다고 했잖아. 그때는 목욕탕 들어가지도 않았어. 근데 푸닥거리 한 번 하고 나니 마음도 편해지고 그 이후로 지금껏 아침마다 어울려서 목욕해. 아침 530분에 문을 여는데 5시도 안 되서 손님들이 와. 허물없이 들어와서 먼저 씻고 있는 거야. 자기 집처럼. 목욕하러 오는 사람들 보통 2~3시간은 기본이야. 그런 것을 혼자서는 못해.. 여럿이 어울리니까 하는 거지. 내 몸 씻는 것도 있지만 사실 손님들이랑 친해지려고 함께 하는 거야. 서로 속도 알고 마음을 여는 거지. 우리 목욕탕 손님들은 피부가 아주 난들 난들해. 같이 목욕하면서 화장품 뭐가 좋더라 치약 뭐가 좋더라 비누는 뭐가 좋다 그런 것들을 공유하는 거지. 서로 마사지 하는 재료를 만들어 와서 함께 발라주고.”


 

아파트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장기숙박객 만들어준 열쇠걸이. 열쇠를 매번 소쿠리에서 찾는것이 불편해 보였는지 직접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린 시절 바나나우유를 마시며 구경하던 목욕탕의 기묘한 풍경. 경쟁하듯 열심히 때를 벗기고 사우나에 들어가 오래도록 앉아 있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서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어른들. 나 역시 어른의 나이가 되어 그들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집에 와서 편안하게 자고 씻고 가시길

목욕탕에 들어서며 기억과 몸이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느낌을 나만 느낀 것은 아니었나 보다. 내년이면 환갑을 맞이하는 구광임씨는 믿어지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는다. 19살 시절이 어제 일처럼 생생한데 말이다. 20살이 되어 고향을 떠나 무작정 부산으로 갔다. 분유깡통 만드는 공장에서 힘들게 일해 번 돈으로 화산 고향집에 땅을 사드렸다. 23살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고산 화장품 대리점에 취직해 방문판매하는 일을 했다. 자전거를 타고 화산 골짜기 안 다닌데 없이 3년을 쏘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걸 어떻게 했나 싶어.. 그때는 비위도 좋았어. 처녀 시절에 숫기 없기 마련인데 나는 돌아다니면서 사람만나는 게 좋았어. 모르는 집도 막 들어가서 화장품 설명도 하고, 아낙들한테 화장품을 팔아야 하는데 여자들이 집에 있간이, 다 밭으로 나가서 일하는 거지. 밭까지 따라가서 일 도우면서 화장품 팔았지.”

 

사람이 좋아 찾아다니는 일을 했던 젊은 시절이 지나갔고 이제 그에게 정겨운 목욕탕과 여관이 있다. 그곳으로 사람이 모인다. 고산에 이주민이 늘어나는 것과 현대장의 장기숙박팀이 늘어나는 현상에는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장기 숙박팀이 많아. 작년까지 동우리치 아파트 공사하는 사람들이 1년 있었고 수로 공사하는 사람들, 봄철에는 대파, 양파 작업하는 사람들. 와일드푸드축제, 승마 축제 등 행사 관계자들이 숙박하지. 3년 동안은 정신없이 바빴지. 우리 여관이 잘 된다는 것은 고산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해. 사람 살라고 아파트도 생기도 축제도 하고 그럼 사람이 들어와 살고. 우리 집에 손님이 많으면 주변 식당에도 손님이 많다. 슈퍼마켓, 편의점부터 식당 소개, 주변에 좋은 먹을거리 볼거리 그런 것들 다 소개해주니까 관광안내를 역할을 하는 거지.”


 

주인장 구광임씨가 목욕탕 매표소 앞에서 웃고 있다.



여름에는 여관서 벌고 겨울에는 목욕탕에서 벌어서 산다는 구광임씨. 솜씨 좋은 남편(소병윤씨)이 더운 여름 내 고생한 목욕탕 수리가 곧 끝나간다. 목욕탕 언제 여냐고 손님들이 자꾸 카톡을 보낸다고 한다. 820일 다시 시작한다. 더위가 쉽게 가지 않을듯하니 칠석 날 지나 동네목욕탕 냉탕으로 피서 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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